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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두현 서경한우 협동조합 조합장
    한우전문점 소들녘과 최근 미경산 한우사업 관한 MOU를 체결 윤두현 서경한우 협동조합 조합장 서경한우협동조합의 존재 이유를 ‘조합원의 행복’에서 찾는다. 이윤의 상당 부분을 조합원에게 환원함으로써 조합원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고, 이를 다시금 조합의 원동력으로 삼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서경한우협동조합의 정체성이다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소를 잘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잘 팔아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값 하락으로 어려워하는 조합원이 안정적으로 소를 키울 수 있고 잘 키운 소를 잘 팔아 줄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2023년 5월에는 서경한우를 더욱 가까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이천 관고시장에 직영판매장을 오픈합니다. 많이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현재 운영 중인 서경한우프라자 마장면 본점과 이천점, 양지점을 활성화하고 농협 하나로마트 8개소와 소들녘 등 유통업체 7개소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아울러 헬로네이처와 중소기업유통센터쇼핑몰, 미국 Hmart 등 소매 유통망을 다지고, 다른 온라인 쇼핑몰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화재 복구를 조속히 하는 것에 힘쓸 것이며,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암소브랜드로 우뚝 설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수도권의 고객분들이 이천 서경한우를 찾아와 이천이 한우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며, 한우 수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라고 포부를 밝히는 윤두현 서경한우 조합장.자체도축으로 지난해 1,500두를 가공 판매하였습니다.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서경한우 직영점과 함께 체인점이 서울 남대문, 안양 백미점, 시흥점, 동탄점, 용인점 등 5개가 있으며, 인터넷 사업을 확대하여 다양한 채널로 서경한우를 만나 볼수 있도록 하였습니다.또한, 서경한우는 올해 한우전문점 소들녘과 최근 미경산 한우사업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서경한우는 직영점인 서경한우프라자 뿐 아니라 소들녘을 통해서도 미경산 암소를 안정적으로 유통하게 된 것이다. 미경산 한우는 30개월 내외의 한우로 최상의 품질과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시중에서 새끼를 여러 번 낳은 암소 고기는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경산 한우는 매우 희귀한 고기로서, 사실상 서경한우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상품이다. 희소성 뿐 아니라 맛 또한 훌륭해 최고급 식재료와 품격을 모두 원하는 소비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하여 지역경제는 날로 추락하고 있고 각종 공과금을 비롯하여 금리인상, 물가 폭등으로 서민경제가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감안해 서경한우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최고품질의 암소 한우를 대폭 가격을 인하한 할인행사를 수시로 진행하고 있으며, 갈비탕, 곰탕, 육회비빕밥 등의 식사를 가격을 낮추어 7천원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조합의 이익창출도 중요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서민들이 어려울 때 함께 나누는 것이 서경한우의 경영철학입니다. 많이 이용해주시면 더욱 고마울 따름입니다. 대담:정봉영 발행인본지에서는 금주의 초대석을 기획시리즈로 연재 하고 있는 바 본지 하나로신문 발행인 정봉영과 윤두현 서경한우 협동조합 조합장과의 대담을 통해 윤 조합장에 대한 지도자 역량과 자질을 독자들과 시민들에게 올바른 평가와 검증과 사회봉사자로 정평있는 현 서경한우 윤조합장에 대한 견해와 활동상과 식견 이사회와 서경한우협동조합의 미래와 발전 방향 문제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듣고자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서경한우 존재 이유를 ‘조합원의 행복’에서 찾는다. 이윤의 상당 부분 조합원에게 환원함으로써 조합원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고, 이를 다시금 조합의 원동력 삼는 선순환 구조로 최고의 조합으로 발돋움시킬 터자체프로그램 중간 마진 최소화한 OEM 사료 생산 저렴한 사료 조합원에게 공급5월 서경한우 더 가까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이천 관고시장 직영판매장 오픈 1. 하나로신문 독자분들과 조합원을 위해서 간단한 인사를 전한다면?안녕하십니까 서경한우 협동조합 조합장 윤두현입니다.최근 본사와 가공공장 등이 화재로 전소되어 주위에서 우려해 주시고 아픔을 같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겠다는 신념하에 신속한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빠른 시일내에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2.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에 대해 간단히 소개 한다면 ?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은 농림축산식품부가 한우 전문 품목협동조합으로 인가하여 2012년 설립되었으며, 현재는 460여 조합원과 함께하는 중견급 조합으로 성장하였습니다. 50개월 이내 한우 암소를 유통하는 전문 조합으로서 자체 도축가공과 소매유통을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수도권 한우의 가치를 높이는 견인마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서경한우는 수도권 축산업을 지켜내며 농촌 발전에 크게 기여한 지역경제 버팀목이 되기 위해 ‘질 좋은 청정 한우 생산’을 목표로 조합원의 안정적인 소득향상과 바람직한 한우 먹거리 공급이라는 두 마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합원 임직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질 좋은 한우 암소 고기를 저렴하고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가격의 현실화를 이룩하였고 이와 함께 품질 고급화와 다양한 메뉴를 개발 공급하여 직영판매식당을 이용하는 고객 누구나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 좋은 결실을 얻고 있습니다.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은 금용사업을 하고있지 않고 있으며, 소를 어떻게 잘 팔것인가? 어떻게 잘 키울 것인가?에 집중하는 협동조합입니다3. 서울경기 한우협동조합 조합원들을 위한 혜택과 계획에 대해 밝힌다면 ?서경한우 자체프로그램으로 중간 마진을 최소화한 OEM 사료 생산하여 저렴한 사료를 조합원에게 공급하고 있으며 초음파 및 거세 지원 등 다양한 사양지도 사업 등으로 조합원분들이 한우를 잘 키우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우 지역 축산농가와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매년 자체도축 비율을 높여왔으며, ‘돌보미사업장’ 활성화를 통해 ‘대리 축산영농 시스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서경한우는 조합원의 소득 증대를 핵심 이념으로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왔습니다. 자체도축은 지난해 기준 833두이며, 올해는 약 50% 정도 늘어난 1,200두로 예상됩니다. 또 올해 이익은 5억 원 규모로 예상되는데요, 이중 2억 7천만 원은 배당금으로서 조합원의 몫입이다.”서경한우는 또 비대면 유통망 확충에도 힘 쏟고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온라인 판매 실적이 크게 향상되면서 온라인 마켓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4억 규모였던 매출액이 금년에는 무려 15억 규모로 성장했다.4.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 조합장으로서 역할과 운영방침 및 경영방침 계획에 대해 밝힌다면?윤 조합장은 서경한우협동조합의 존재 이유를 ‘조합원의 행복’에서 찾는다. 이윤의 상당 부분을 조합원에게 환원함으로써 조합원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고, 이를 다시금 조합의 원동력으로 삼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서경한우협동조합의 정체성이다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소를 잘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잘 팔아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값 하락으로 어려워하는 조합원이 안정적으로 소를 키울 수 있고 잘 키운 소를 잘 팔아 줄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5.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 조합장으로서 재직하면서 그동안 업적과 추진사항을 밝힌다면 ?자체도축으로 지난해 1,500두를 가공 판매하였습니다.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서경한우 직영점과 함께 체인점이 서울 남대문, 안양 백미점, 시흥점, 동탄점, 용인점 등 5개가 있으며, 인터넷 사업을 확대하여 다양한 채널로 서경한우를 만나 볼수 있도록 하였습니다.또한, 서경한우는 올해 한우전문점 소들녘과 최근 미경산 한우사업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서경한우는 직영점인 서경한우프라자 뿐 아니라 소들녘을 통해서도 미경산 암소를 안정적으로 유통하게 된 것이다. 미경산 한우는 30개월 내외의 한우로 최상의 품질과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시중에서 새끼를 여러 번 낳은 암소 고기는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경산 한우는 매우 희귀한 고기로서, 사실상 서경한우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상품이다. 희소성 뿐 아니라 맛 또한 훌륭해 최고급 식재료와 품격을 모두 원하는 소비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6.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 그동안 추진사항과 앞으로의 계획과 방침을 밝힌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화재 복구를 조속히 하는 것에 힘쓸 것이며,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암소브랜드로 우뚝 설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천지역은 지리적으로 매우 유리한 면이 많습니다. 수도권의 고객분들이 이천 서경한우를 찾아와 이천이 한우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며, 한우 수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7. 서경한우 직영 판매 식당에 대해 소개를 한다면 ? 부담없는 가격으로 프리미엄급 한우암소를 즐길수 있는 수도권 명소로 자리잡는 것을 비젼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고객분들이 이용해주셔서 나름 많이 알려졌지만 더욱 노력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2023년 5월에는 서경한우를 더욱 가까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이천 관고시장에 직영판매장을 오픈합니다. 많이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현재 운영 중인 서경한우프라자 마장면 본점과 이천점, 양지점을 활성화하고 농협 하나로마트 8개소와 소들녘 등 유통업체 7개소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아울러 헬로네이처와 중소기업유통센터쇼핑몰, 미국 Hmart 등 소매 유통망을 다지고, 다른 온라인 쇼핑몰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8. 서경한우 암소 브랜드와 체계적인 판로구축과 유통에 나아갈 지표를 제시한다면 ?고객의 관점에서 브랜드가 발전되어 가야 합니다. 고객 관점에서 생산, 유통시스템이 구축되고 발빠르게 대응해야 브랜드가 발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에 서경한우의 ‘한우 숙성기술 활용 저지방 부위 부가가치 향상 시범사업’에 대한 식미 평가를 진행했다. “자체 건식숙성고에서 다양한 기간 숙성을 진행한 결과, 최종적으로 40일 건식숙성이 최상의 맛을 끌어낸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최상급 한우고기를 선호하는 시장에서 2~3등급 저지방 한우에 대한 선호도는 매우 낮습니다. 그러나 드라이에이징 기술을 활용한다면, 깊고 뛰어난 풍미를 더할 수 있기에 독자적인 상품성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숙성(Aging) 이란 일정 기간 온도, 습도, 바람 등 숙성환경을 유지해 고기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키는 기술로 숙성방법에 따라 건식과 습식으로 나뉩니다. 서경한우의 뛰어난 건식숙성기술에 40일의 기다림이 더해지면 2∼3등급의 저지방 한우고기도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특유의 풍미와 감칠맛이 향상됩니다. 우리 조합은 앞으로도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최상의 조건을 찾아 서경한우만의 기술을 만들어갈 것이며, 이를 통해 지역 한우농가의 소득 향상에도 기여하겠습니다.9. 어려운 경제속에서 직영 판매식당의 가격 할인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 이유를 밝힌다면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하여 지역경제는 날로 추락하고 있고 각종 공과금을 비롯하여 금리인상, 물가 폭등으로 서민경제가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감안해 서경한우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최고품질의 암소 한우를 대폭 가격을 인하한 할인행사를 수시로 진행하고 있으며, 갈비탕, 곰탕, 육회비빕밥 등의 식사를 가격을 낮추어 7천원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조합의 이익창출도 중요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서민들이 어려울 때 함께 나누는 것이 서경한우의 경영철학입니다. 많이 이용해주시면 더욱 고마울 따름입니다. 10. 주민들과 조합원에게 당부 및 부탁이 있다면 ? 서경한우를 사랑해주시고 이용해주신 고객분들과 조합원들에게 감사합니다. 더욱 발전되고 좋은 서비스로 함께하는 서경한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초대석
    • 초대석
    2023-04-26
  • 황순철 모가농협조합장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과 조합원의 무한만족을 위한 친절봉사 및 조합발전을 위한 임직원의 창의적인 업무추자세를 확립하여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모가농협으로 발돋움시킬 터 황순철 모가농협 조합장 "조합원들 권익 보호와 농가소득 창출 최선의 노력 하는 조합장 될 터" 모가농협은 이천시의 중심지점에 위치하여 조합원과 지역주민들의 높은 농협 이용률 등 경쟁력을 바탕으로 농업 농촌의 발전과 조합원의 소득향상을 꾀하고 있습니다. 내 외부 감사를 통한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과 조합원의 무한만족을 위한 친절봉사 및 조합발전을 위한 임직원의 창의적인 업무추진 자세를 확립하여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모가농협을 만들겠습니다.모가농협의 운영방침과 경영방침으로 농협의 주인인 조합원들을 섬기며 조합원들의 실익과 권익을 보호하며 농가소득을 극대화시켜 조합원 모두 삶의 질 높은 생활을 영위 할 수 있도록 조합원을 위한 목적 아래 투명한 경영체제를 확립하고 임직원들의 능력과 취미 특기를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배치 업무능률을 최대한 극대화시켜 나가면서 평생직장이라는 자긍심을 심어 주고 누구나 수용 할 수 있는 공감경영을 실현시켜 나 갈 것입니다. 금년에는 조합원님들을 위한 복지 실익 위주의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코로나19 관련 지원 건강검진 지원 고품질의 쌀 생산을 위한 볏짚환원사업을 펼쳤으며 앞으로 젊은 조합원을 위한 신 소득 작목을 발굴 지원하여 농산물 소득 범위 또한 점진적으로 넓혀가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라고 포부를 밝히는 황순철 모가농협 조합장. 2020년 우리 모가농협은 조합원을 위하여 농협사업이용권 지급과 벼 수매가격 인상 배추 모종 마스크 지원 고령조합원 의료비 일부 지원 및 장제비 지급 건강검진확대실시 농기계 순회 수리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신규사업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내실 있는 경영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조합원 실익증진을 위한 사업을 전개할 예정에 있습니다. 많은 협조와 성원 부탁드립니다.또한, 초선조합장에게 거는 조합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실익증진 위주의 사업추진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최근 농어촌 발전 분야 경기도지사 표창을 수상하였으며 컨설팅 최고경영자 선정 등 여러 종류의 상을 수상 하였습니다. 또한, 조합원들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초심을 잃지 않고 오로지 모가농협 발전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이를 감수하면서 조합원들의 권익 보호와 농가소득 창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앞으로도 가시적인 발전 효과를 일으키기 위하여 농협경영에 최선을 다하는 조합장이 되겠습니다.다가오는 2021년 신축년에는 농업인을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으며 근면 성실한 자세로 모두가 만족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안겨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조합장이 되겠습니다. 다가오는 새해! 모두가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한 2021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담:정봉영 발행인 본지에서는 금주의 초대석을 기획시리즈로 연재 하고 있는 바 본지 하나로신문 발행인 정봉영과 황순철 모가농협 조합장과의 대담을 통해 황 조합장에 대한 지도자 역량과 자질을 독자들과 시민들에게 올바른 평가와 검증과 사회봉사자로 정평있는 현 모가농협 조합장에 대한 견해와 활동상과 식견 이사회와 모가농협의 미래와 발전 방향 문제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듣고자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신 소득 작목 발굴 지원해 농산물 소득 범위 또한 점진적 넓혀가도록 계획 농협 주인인 조합원 섬기며 실익과 권익보호 농가소득 극대화시켜 나갈터 1, 하나로신문 독자분들과 조합원을 위해서 간단한 인사를 전한다면?황순철 모가농협 조합장 인사드립니다. 코로나19와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산하여 발생되는 힘든 시기에도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든 시민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2021년 새해에는 건강하게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2, 모가농협에 대해 간단한 소개와 조합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인구 4,500여명 정도의 모가면에 위치한 우리 농협은 1,350여명의 조합원님들과 22곳의 영농회로 구성되어 있는 소규모의 조합이지만 조합원님과 임직원 지역주민들이 함께 노력하여 내실 있는 강소 농협으로 활발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모든 성과와 그에 따른 결과는 우리 조합원님들과 주민들의 협조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 하였던 것같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3. 모가농협 조합원들을 위한 혜택 및 계획에 대해 밝힌다면? 2020년 우리 모가농협은 조합원을 위하여 농협사업이용권 지급과 벼 수매가격 인상, 배추 모종 마스크 지원 고령조합원 의료비 일부 지원 및 장제비 지급 건강검진확대실시 농기계 순회 수리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신규사업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내실 있는 경영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조합원 실익증진을 위한 사업을 전개할 예정에 있습니다. 많은 협조와 성원 부탁드립니다.4. 이천지역 모가농협 조합장으로서 역할과 운영방침 및 경영방침 계획에 대해 밝힌다면? 모가농협은 이천시의 중심지점에 위치하여 조합원과 지역주민들의 높은 농협 이용률 등 경쟁력을 바탕으로 농업 농촌의 발전과 조합원의 소득향상을 꾀하고 있습니다. 내 외부 감사를 통한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과 조합원의 무한만족을 위한 친절봉사 및 조합발전을 위한 임직원의 창의적인 업무추진 자세를 확립하여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모가농협을 만들겠습니다.모가농협의 운영방침과 경영방침으로 농협의 주인인 조합원들을 섬기며 조합원들의 실익과 권익을 보호하며 농가소득을 극대화시켜 조합원 모두 삶의 질 높은 생활을 영위 할 수 있도록 조합원을 위한 목적 아래 투명한 경영체제를 확립하고 임직원들의 능력과 취미 특기를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배치 업무능률을 최대한 극대화시켜 나가면서 평생직장이라는 자긍심을 심어 주고 누구나 수용 할 수 있는 공감경영을 실현시켜 나 갈 것 입니다. 5. 초선 모가농협 조합장으로서 재직하면서 그동안 업적과 추진 사항을 밝힌다면? 초선조합장에게 거는 조합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실익증진 위주의 사업추진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최근 농어촌 발전 분야 경기도지사 표창을 수상하였으며 컨설팅 최고경영자 선정 등 여러 종류의 상을 수상 하였습니다. 또한, 조합원들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초심을 잃지 않고 오로지 모가농협 발전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이를 감수하면서 조합원들의 권익 보호와 농가소득 창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앞으로도 가시적인 발전 효과를 일으키기 위하여 농협경영에 최선을 다하는 조합장이 되겠습니다.6. 모가농협 그동안 추진 사항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힌다면? 금년에는 조합원님들을 위한 복지 실익 위주의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코로나19 관련 지원 건강검진 지원 고품질의 쌀 생산을 위한 볏짚환원사업을 펼쳤으며 앞으로 젊은 조합원을 위한 신 소득 작목을 발굴 지원하여 농산물 소득 범위 또한 점진적으로 넓혀가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7, 현재 농민 조합원들로부터 산물 벼를 수매하고 있는데 수매가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소신을 밝혀 달라?해마다 벼 수매가는 생산 농가와 농협 간의 입장 차이가 생기고 갈등 발생의 원인이 되는 민감한 사안입니다. 2020년에는 긴 장마와 일조량의 편차로 수확량이 전년 대비 감소한 상황에서 수매가격의 결정은 큰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줄어든 생산량만큼 소득보존의 일환으로 수매가격을 인상하여 서로의 입장에 만족할 수 있는 수매가를 형성시켰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벼 수매가격 인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 앞으로 임금님표 브랜드관리와 체계적인 판로구축과 유통에 대해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갈 지표를 제시한다면?“ 예전에는 농산물 관련 브랜드를 자산적 개념이 아닌 농산품 이름으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고 전문인력과 관리조직의 미흡 등으로 사후관리가 안 되어 브랜드화 효과가 저조하였지만, 임금님표의 철저한 브랜드관리를 통하여 생산 농산물에 대한 공통적인 품질관리 체계와 소비자 욕구에 맞는 다양한 포장 규격 및 감각적인 포장 디자인 개발 등 브랜드의 상품화 사후관리와 공동 홍보방안 마련 등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등의 수립으로 현재까지는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앞으로 지역과 상품의 인지도 명성도 생산의 지역적 유리성 특정기술도입 등의 여건을 고려해 세분화된 유형별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목표시장을 점차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9, 현재 코로나19로 인하여 지역 대표적인 축제 취소와 지역경제가 침체 되고 있는데 그 해결 방안과 정책 방향 그리고 조합원들을 위한 대책을 밝힌다면? 농촌경제연구원의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농업의 공익적 기능 식량안보 귀농 귀촌 증가 등 농업 농촌의 중요성이 부각이 되고 있습니다.이제까지의 농촌관광이 가족 친화나, 미식 여행을 주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면, 향후에는 농촌만이 제공할 수 있는 힐링 건강치유 심신 휴양 자연환경 및 생태환경체험 가족 친화 미식 여행 등의 여러 목적으로 세분화 및 확대 될 것으로 예측이 되어 추후 코로나19 종식 이후 농촌관광 수요 확대 및 마이크로 투어리즘 등 관광형태 변화에 대비하여 지자체에 농촌관광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추가로 지역경제 침체로 역경을 겪으시는 우리 조합원님들을 위하여 다양한 자금지원방안의 모색, 인력중개를 통한 인건비 절감 부가소득을 조성하기 위하여 작물 종자 및 모종 공급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10, 주민들과 조합원들에게 당부 및 부탁이 있다면?코로나19로 심리적,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우리 농업인과 이천 시민여러분께 당부 말씀 올립니다. 2020년은 지난날의 평온한 하루 한주 한 달 일 년이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일깨워주고 우리의 결속된 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언론에서 코로나19의 확진자가 증가하는 추세를 연일 보도하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불안한 마음이 크시겠지만 개인 방역수칙과 지자체의 안내에 성실히 따라주셔서 우리 이천시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리라 굳게 믿고 있겠습니다. 저 황순철 모가농협 조합장은 다가오는 2021년 신축년에는 농업인을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으며 근면 성실한 자세로 모두가 만족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안겨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조합장이 되겠습니다. 다가오는 새해! 모두가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한 2021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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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3
  • 친정집 가난 극복을 위해 논 닷 마지기와 맞바꾼 장님남편 선택 결혼
    2019/11/21 12:50 입력 모범시민 발굴 시상 희망의 등불인 아산재단과 고 정주영회장의봉사정신 효행상수상 본문은 본지 신선재 칼럼위원이 故 정주영 회장이 숭고한 봉사정신으로 우리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거나 효행 및 가족사랑을 실천하여 사회의 귀감이 된 인사와 단체를 발굴 표창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제정된 명망 있는 상으로서 1문1답 식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게재합니다. ㅡ편집자 주ㅡ 1.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수상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저는 이 상이 대통령표창 이상의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큰상을 받게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올바른 삶을 살아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 사회가 이를 인정해 준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하고 눈물이 납니다.저를 추천해준 이천향교에 감사하고 저 때문에 가슴에 응어리 졌을 어머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2.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과 친정 사정에 간단한 소개를 해 주십시오.저는 여주시 흥천면 문장리에서 1943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3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보따리 장사를 해가며 생계를 꾸려갔기에 굶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이러한 가정사정으로 인하여 문장초등학교를 입학졸업을 하였고 상급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어보고 포기한 체 사회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서울로 식모살이를 하며 생활해 왔습니다.3. 결혼을 하게 된 동기나 각오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제 나이 20살 되던 어느 날 시골의 고모부로부터 “인근동네 부잣집에 장님아들이 있는데 그 집으로 시집을 오면 논 닷 마지기를 준 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고모부를 졸라 댔습니다.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안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차라리 내가 물에 빠져 죽겠다”는 어머니를 간신히 설득하여 장님에게로 시집을 오게 되었습니다.당시 저는 가난이 너무 싫었고 친정도 살리고 또한 불상한 사람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고 보란 듯이 잘 살아보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4.결혼생활과 함께 그동안 가정생활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신다면? 1964년 12월 시집을 와보니 시댁은 비교적 부농으로 약7,000여평의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당시는 모든 농사가 기계화가 보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일이 사람의 힘으로 짓는 농사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밤낮으로 농사일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로 오죽하면 촌부자 일부자라고 일이 많았습니다. 식구로는 앞을 못 보는 남편을 비롯하여 환갑 된 시부모님 그리고 팔순의 시조부님이 계셨는데 시조부는 노환으로 치매까지 있으셨습니다. 3년여를 조석을 따로 차려 드리는 등 병수발을 들었고 1968년 시조부님이 돌아가시자 시어머님이 병을 얻어 몸져누우셨습니다.시어머니는 10여년을 해소 천식을 앓다 1979년에 돌아가셨고 이어서 이번에는 시아버님이 몸져누우셨고 아버님 역시 치매와 노환으로 15년간을 고생하시다 1995년 10월에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3년 친정어머님이 몸져누우셨습니다.나로 인한 평생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불쌍한 어머님을 편하게 보내드리리라 마음을 먹고 남편을 설득해 친정어머님을 모시게 되었는데 마지막 3년 전부터는 대소변을 받아내며 고생을 하시다 2017년 돌아가셨습니다.5. 슬하에 2남 2녀를 두셨는데 자녀 양육은 어떻게 하셨나요? 결혼 한지 14개월 만에 첫 아들을 낳고 10여년간 4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다행이 모두 정상아로 태어나 감사하나 “아버지가 장님인지라 다른 애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지나 않을까?” 늘 걱정이었습니다. 학교 가는 자녀들을 뒤 따라 가는가 하면 몰래 교실을 훔쳐보기도 하고 담임선생님을 수시로 찾아가기도 하고 선생님들을 집으로 초청해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내 집처럼 드나 들다보니 교장선생님께서 “부교사로 임명 해야겠다”며 1979년 어머니회장을 맡겨 그로부터 중학교까지 13년간 자모회 활동을 하였습니다.6.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시회봉사활동을 많이 하셨다고 하던데요?1969년부터 10여년간 이천군 생활개선회장을 비롯해 79년부터는 새마을부녀회장 10여년을 맡으면서 농촌부엌과 화장실개량 꽃밭, 꽃길 가꾸기 등 농촌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절미운동과 부녀회 공동밭 가꾸기 등 농촌계몽활동을 전개하고 여기서 발생한 기금으로 마을 어르신들께 수시로 (고유 명절이나 어버이날, 삼복 날 등) 식사를 대접하고 매년 효도관광을 시켜드리는 등 내 부모 모시듯 보살폈습니다.이밖에도 초, 중학교 어머니회장 13년, 자유총연맹 백사여성회장4년, 성균관 유도회 백사여성회장4년 등 40여년 간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봉사했습니다.7. 농사가 많은데다 앞 못 보는 남편은 일을 못하고 여자의 몸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하네요?1964년 시집왔을 때만 해도 시부모님과 같이 손 모내기 손 벼 베기 등 재래식 농업으로 부모님을 도와가며 농사를 지었으나 농촌도 기계화가 되고 부모님이 일을 못하시게 되자 여자의 몸이지만 농기계 작동 법을 배워 77년부터는 손수 경운기로 두엄을 나르고, 논을 갈고, 써리고, 이앙기 탈곡기 등 기계화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가하면 담배, 고추 등 특용작물 재배, 양돈 등 안 해본 농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건강이 있었기에 가능 했던 것 같습니다.8. 힘든 삶을 살다 보면 초심을 잃고 후회도 했을 텐 데 이를 극복 할 수 있었던 비결은?저는 일생을 살아오면서 가난에서 벗어나자! 불쌍한 남편을 살리자! 남에게 손가락 받지 말고 살자! 내가 택한 길 올바르게 남보란 듯이 살아보리라! 라는 신조로 살아 왔는데 끝까지 이를 지키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앞을 못 보는 장님의 특성이 남을 의심 하는 것이라 합니다.(특히 배우자) 어떤 때는 집안일을 팽개치고 사회활동을 위해 밖으로 나올 때는 마누라가 못마땅했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하고 격려해준 남편 덕에 감내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9. 그동안 생활을 해 오면서 감사와 전할 말이 있으시다면?첫째, 무엇보다도 내 옆에서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준 남편에게 감사하고요, 둘째, 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자녀로 남들에게 따돌림 받고 자격지심이 있었을 텐 데 이를 의식하지 않고 잘 자라준 자식들에게 감사하고, 셋째, 평산 신씨의 며느리로, 집안으로, 이웃으로, 받아주고 위로 격려하며 화목하게 살아가고 계신 조읍1리 주민들께 감사드립니다.끝으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며 타의 귀감이 되는 모범시민을 발굴해 시상해주는 희망의 등불인 아산재단과 저를 선정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초대석
    • 향기나는사람
    2021-01-03
  • 류형복 기자가 만난사람 양강숙 사랑의요양원 원장
    2017/11/07 11:00 입력 노래교실 문화공연 윷놀이 등 다양한 취미활동 여가프로그램 개발 운영 사랑의요양원 원장 양강숙 사회복지사로써 요양원을 운영하게된 계기는?웃음과 함께 행복한 보금자리와 삶의 질 높은 사랑의요양원 운영가을의 마지막 11월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참 세월이 빠르게 흘러 벌써 마지막 가을을 맞이하고 얼마 안 있으면 한해의 마지막까지 맞이하게 된다고 하니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저는 안산시 고잔동에서 사랑의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양강숙 입니다.요양원에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즐겁고 행복함을 느꼈기에 요양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현 사랑의요양원 원장으로 봉사활동내역을 소개를 한다면? 지난 8월 23일 사랑의 요양원과 밀리아나 경로당이 자매결연 협약 식을 가졌습니다.요양원을 운영하면서 갖게 된 어르신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지역사회에 계신 어르신들에게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자매결연을 추진 체결하여 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앞으로 밀리아나 경로당에 쌀을 정기적으로 후원할 예정이며 이에 그치지 않고 경로당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을 가질 것을 약속했습니다.더욱이 노인의 날 지역 어르신들 모시고 식사 대접해 드리는 자리에 참여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함을 느꼈습니다.앞으로도 꾸준히 할 생각이며 시간이 허락되면 생활이 어렵거나 독거노인 분들께 도시락 배달도 계속 참여할 생각입니다. 사랑의요양원의 조직과 구성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다면?저희 사랑의요양원은 19인 시설로 현재 어르신 19분이 생활을 하고 계시며 시설 규모는 생활실 6개 프로그램 실 물리치료실을 완비 어르신들의 체력과 기능을 향상 유지시키는데 힘쓰고 있으며 종사자들은 시설장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8명 조리원 2명이 위생 신체활동 정서적인 지원을 하며 어르신들의 팔 다리가 되어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의요양원 원장으로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지역 생활에 느낀 장, 단점과 원장의 역할에 대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현재 우리나라는 첨단과학문명의 발달과 의료기술로 인하여 수명이 연장 되면서 노인인구는 급속히 증가되는 반면 젊은 세대들의 결혼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맞벌이 부부들이 경제활동에 나서면서 자녀 출산에 대해 각종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으로 인한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출산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 인구의 남녀노소 균형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우리의 현실은 초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제가 생활을 하고 있는 안산시 역시 예외가 아닌 노인 인구가 매우 많이 있는 가운데 도시락 배달을 하며 같은 건물과 인근에 누구는 지원을 받고 누군가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봐 왔습니다. 이런 경우는 충분히 스스로를 돌볼 수 있기 때문에 도시락을 받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선별적인 복지라 하여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더욱 지원이 필요한 분들이 먼저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몰라서 신청을 못하시는 분들도 많고 갑작스럽게 건강상태가 나빠져서 지원이 필요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노인뿐 아니라 소외계층 모두가 혜택을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시설을 운영하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부분은 어르신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움을 제공하고 생활을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더불어 어르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능을 유지하고 발굴하여 향상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과정은 모두가 힘들지만 어르신이 점점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모두가 기뻐하고 행복함을 느낍니다. 사랑의요양원 원장직책을 맡고 있는데 앞으로의 운영계획과 방침을 밝힌다면?저희 사랑의 요양원은 무엇보다 불편한 노인 분들을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 되어 입소 노인 분들하고 임직원들이 일거수일투족 혼연일체가 되어 항상 즐거운 웃음과 함께 행복한 보금자리가 되어 높은 삶의 질을 만끽하시면서 편안한 생활과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설립이념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입소 노인 분들을 위한 치매예방을 위해 음악 미술 작업치료 웃음치료 등의 전문적인 치매예방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 하고 있습니다.또한 건강한 육체와 마음에서 건전한 생각을 갖고 생활을 할 수 있듯이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체조 수건체조 등 입소 노인 분들에 개별적으로 맞춤형 운동을 실시하는 신체기능강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풍요로운 여가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래교실 문화공연 윷놀이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가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고 특히 사회적응훈련프로그램으로 예배 이, 미용 생신잔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을 느꼈던 사례를 간단히 소개한다면?저희 사랑의요양원에 부부가 입소하셨는데 할머니께서 치매 증상으로 우울증과 폭언이 심하셨습니다. 우울감이 심한 날은 식사도 거르고 힘없이 누워만 계셔서 항상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걱정도 많이 하시고 힘들어 하셨습니다. 저희는 할머니가 식사를 거르시면 죽을 드리고, 간식을 여러 번 제공하였고 기분 전환 겸 밖으로 나가 가까운 시장에 모시고 가고 산책을 시켜 드리며 정서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할머니의 상태는 점점 좋아지셔서 폭언을 하는 날도 잦아들었고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아지셔서 부부가 함께 퇴소를 하셨습니다. 어르신들과 정이 많이 들었었지만 이때가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문제점과, 애로사항 있다면 소개를 해 달라?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합니다. 어르신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의 인격을 존중하고 우대하기 위해 힘쓰지만, 어르신이나 보호자들은 요양보호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은 아줌마라고 부르며 인격을 무시하고 사기를 격하시키며 자신들만이 만족 할 수 있는 시중과 서비스를 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과 인식 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요양보호사들도 이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고 더 나아가 다른 어르신에게 피해가 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상호간에 인격 존중과 원활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요양원에 대한 인식제고와 근본대책을 제시한다면?과거에 몇몇 안 좋은 요양기관들이 TV에 방영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요양원이란 곳은 비인격적이며 문제와 비리가 많은 곳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할 시·구청·보건복지부 국민보험공단에서 요양원에 대해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관에서는 지속적인 내부 교육을 통해 종사자의 전문성을 강화시키고 어르신들에게 최상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회의와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실무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많은 요양원이 투명성 있고 바른 운영을 하며 인식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요양원에 대한 색안경을 벗어주시고 열린 마음으로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초대석
    • 향기나는사람
    2021-01-03
  • 흙과불 도공의 혼 삼위일체 도자기 예술품
    로원도예 권태영 작가의 투각 청자 도자기에 혼을 넣는다. 이천을 대표로 하는 원적산 줄기에 이어진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원적로 133번길115에 위치한 로원도예(度希 권태영)가 조그마한 안내 간판만 우뚝 서 있는 가운데 예술감각이 숨쉬고 있는 로원도예 공방이 차지하고 있다. 도예공방에 들어서는 순간 벽에 걸려있는 낯익은 듯 한 외국인이 투각청자를 한국인에게 받아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는 사진은 다름 아닌 미국 카터 대통령과 연세중앙교회 윤석전담임목사님이 나란히 서있고 그 아래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청자 작품에 무언가의 글씨와 함께 자리매김 하고 있는 우화하고 청빈한 자태의 예술작품은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대통령에게 목사님이 전달한 로원도예 度希 권태영선생 작품이다.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과의 만남 도희(度希)권대영 선생은 약 10여년전에 한 사람이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서는 서성이다 공방으로 들어서면서 당시 전시장에 전시중인 청자 한 점을 가르치면서 가격을 물어와 100만원이라고 말하자 10점이 필요하니 가격을 싸게 해 달라고 요구해 1점당 10만씩을 깍아주겠다고 하니까 제작기간을 6개월로 하고 빳빳한 수표 2장을 계약금으로 내놓고 돌아가 반신반의 끝에 6개월의 납품기간을 약속하고 제작 작업에 돌입하였다. ▣청자투각작품이 마침내 백악관과 청와대에 입성하다. 하지만 뒤이어 도자기에 들어갈 문구가 영어로 쓰여 있어 자칫 실수를 우려 곧바로 전사업체에 의뢰하여 영문도 모르고 작품 활동에 심혈을 다해 제작 납품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뒤늦게 알게된 사실은 미국 백악관에 카터 대통령외 유명인사들에게 자신의 제품이 선물로 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이를 계기로 인연이 된 목사님과의 인연으로 인하여 청와대 이명박대통령 재임시절에 청자작품이 납품하였고 뒤 이에 박근혜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청자작품을 선물용으로 3점을 완성 2점을 전달 할 수 있는 영예를 얻었고 나머지 1점은 가보로 소장하고 있으며 항상 목사님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밝힌다. 박근혜대통령소장 도자기문구는 “선진들의 땀과 피로 세운 대한민국 배경 삼으시고 솔로몬의 큰 지혜로 국민통합이루시고 무궁화 꽃 활짝핀 통일나라이루소서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 연세중앙교회 담임목사 윤석전” ▣흙이 좋고 먹고 살기위한 작품 활동이 도자기 예술로 승화 度希권대영선생은 일찍이 도자기의 마을인 신둔면 남정리에서 출생하여 어린시절 부터 늘 가깝게 할 수 있는 흙으로 인해 흙과 친해졌고 이어서 먹고 살기위해 흙을 이용한 도자기 작품에 심취하여 무작정 도자기업종에 젊음을 받치며 나름대로 자신만이 독특한 작품을 예술성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연구 개발에 몰두하면서 비로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을 하였다. ▣도자기는 오묘한 흙과 불 도공의 혼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신비의 세계 도자기는 우연히 얻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단지 도공의 피나는 노력과 예술성 감각과 정성을 다한 혼을 작품에 불어 넣을 때만이 흙과 불의 오묘한 조화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진정한 도자기의 작품이 탄생한다는 신념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상업욕심에 의해 대량생산으로 작품을 생각한다면 이는 예술품이 아닌 단지 상품의 역할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저는 항상 도자기 작업을 하기위한 마음가짐 을 위해 무엇보다 욕심을 버리고 작품 한 점 한 점에 대해 순수한 자연의 섭리와 함께 최선을 다한 정성으로 내 자신이 예술품에 살아있는 혼을 불어 넣는다는 신념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자기는 양질의 재료와 함께 좋은 형태를 만드는 성형이 중요합니다. 형태가 나와야 형태에 따라 무슨 문양과 음각 양각을 넣을 것인가 결정이 되며 아울러 청자의 멋은 색 형태 조각으로 비취색이라 하는 신비스러운 색에서 우러나는 품위와 형태의 오명한 각선미가튼 신비함과 오묘함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상감청자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요즈음 작품의 고급화를 위해 이중투각 작품에 심취하여 짧게는 한 점에 1주일 길게는 2개월에서 3-4개월 걸리는 작품도 있고 좀 더 특색 있는 작품을 하려하면 재료를 제때 구하지 못해 6개월 1년을 걸리는 경우도 있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귀 뜸 한다. ▣비로소 도자기 도공으로 인정받다. 어린시절부터 흙을 좋아했고 더불어 생활을 하다보니 도자기 세계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80년도에 토정 홍재표선생님께 물레수업을 사사받았고 형태와 선에 대해 국민대 김익영교수님 지도아래 배웠고 유약은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를 수료하면서 많은 것을 깨우쳤습니다. 1980년도 도예입문하여 1988년제10회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출품 1989년롯데백화점3회개인전 1990년동경전시회 1993년 전국민예품전시회출품 1995년10월 마침내 로원요를 설립하여 2015년2월26일 한국예술문화 전통도예투각명인으로 한국예총명인협회로 부터 인증을 받았다. 2008년12월25일부터 29일 일본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전시 2009년 5월17일 제10회 클레이올림픽입선 9월23일부터28일 인사동서울미술관 전시전 12월 대한민국녹청자 현대도예 공모전입선 제14회 전주 전통공예전국대전입선 2010년 제15회전주 전통공예전국대전 특선 2011년제3회목포 도자기전국공모전 특선 2012년제17회전주 전통공예전국대전 특선 2013년 4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9월 서울경인미술관전시 2013년 제5회목포도자기전국대전 입선 2014년5월 제25회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대상 제35회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특별상2015년4월경기도기능경기대회은메달을 획득하였다./강민선기자
    • 초대석
    • 향기나는사람
    2021-01-03
  • 손끝으로 빚어내는 한국의 얼 손끝으로 빚어내는 한국의 얼
    대한민국 평화예술대전 국회의장상 한국석봉미술협회 대상 등 수상 도예인 자긍심과 2013/05/13 18:06 입력도천 서광윤 '서광윤요'대표 활활 타오르는 진홍빛의 강렬한 불꽃! 그 엄청난 온도 속에서 오늘도 한국 전통자기의 탄생을 알리는 생명의 소리가 도공의 인고의 열정과 함께 고고한 자태로 익어가며 서광윤 도예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이처럼 그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은 흙에서 도예가의 예술혼과 함께 결을 따라 빚어져 자기로 재탄생 되며, 15세 소년 서광윤 그의 가슴도 뜨겁게 매료시켜 지금의 도예가로 탄생시켰다.1970년 25세의 나이로 지순택요에 입문하여 10여 년 간의 배움의 열정으로 도림서원 성형장으로 6년, 신정희요 성형장으로 10년간의 도예인 으로서 입지를 다지며 1996년 지금의 이천시 신둔면 마교리에 위치한 서광윤요를 설립하는 가운데 현재까지 한국 전통 도자의 숭고한 맥을 이어오고 있다.한 덩이의 흙은 서 대표의 손길을 따라 물결처럼 흐르고 성난 파도와 같이 한 획을 이루는가 하면 때로는 잔잔한 호수와 같이 고요히 흐르며, 그의 매만짐 속에 절제와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도자로 피어나 솔 향을 머금을 장작가마 속 불꽃을 통해 영롱한 백자로, 한 점 한 점 차별화된 무늬의 매력을 지닌 진사로, 소박해보이지만 정갈하고 절제미가 있는 분청으로 물레질부터 성형, 조각, 유약 바르기, 장작가마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옛 전통방식으로 제작하고 잇다.특히 전통 장작가마 방식은 소나무 장작으로 몇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가마에 불을 지펴 1300도가 넘는 고온으로 한국도자의 견고함과 장인의 고집으로 더욱 차별화되고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도자를 제작하는데 핵심적이다. 겉모습을 비슷하게 모방 할 수 있겠지만, 장인의 손에서 더해지는 변치 않는 도자의 가치는 시중에 유통되는 일부 도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통을 이어가는 서 대표 만의 예술혼이 서려 있다.옛 전통을 이어감에 있어서 “요즘은 배우려는 사람도 드물지만, 대중의 관심은 생활자기를 비롯한 호기심에 그치고 있지 전통을 이어가려는 사람은 없다.” 라는 서 대표의 말속에 대중들은 며칠간 이뤄지는 축제의 퍼포먼스 처럼 여겨 소중한 우리 전통은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한편 이러한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서 대표는 전통을 지키면서 도자의 가치를 알리고자 더욱 다양한 작품활동과 대중과의 소통으로 연구 노력하는 가운데 지난 29일 한국신문방송기자연맹 주최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한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 전통 도예발전 공로에 있어서 대한민국 평화예술대전 국회의장상과 한국석봉미술협회 대상 등을 수상해 도예인으로서 자긍심과 위상을 드 높였다.또한, 일본 후쿠오카시 엘라홀 갤러리전과 장애인돕기 대구문화예술회관전, 장애우권익보호기금마련을 위한 도예장인전등 나눔을 통한 그의 행보는 도예발전에 기여하는 귀감이 되고 있다.앞으로도 서 대표는 아내, 자녀와 함께 꾸려가는 서광윤요를 “힘든 와중에도 조용히 도움을 주는 터전으로, 실력과 자부심을 가진 전통도예의 뿌리깊은 계승자로, 나아가 세계인의 중심에 선 도예장인으로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 전하며 “조금더 밝아질 도자미래는 애호가 뿐만 아니라 한국도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도자미래의 밑거름이 될 것임을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 초대석
    • 향기나는사람
    20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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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외국인들의 ‘아빠, 엄마’ 다문화센터 ‘행복한 이웃’ 이사장 박종일, 정미영 부부
    “혹독했던 지난 삶이 홀대받는 외국인들의 아픔 속으로 뛰어들게해...”“수단에는 ‘울지마 톤즈’이태석 신부, 한국엔 ‘막노동자’박종일 목사” 경기 광주 역동 8-10번지에 3층에 조선족 교회, 이 교회에서 5분 거리 역동 213-1번지 건물 2층에 외국인 이주민들(캄보디아, 미얀마, 조선족 등)을 위한 다문화 센터 사무실과 교회가 있고, 지하에는 미얀마인들을 위한 공동체가 있다. 조선족 40여명, 캄보디아인 40여명, 미얀마인 40여명이 주말이나 휴일에 모여 동족들을 만나 향수를 달래거나, 타국 직장생활에서의 어려움을 상담하고 해결을 받는 사랑방이기도 하다.광주는 공장이 많아 외국인들이 매우 많다. 근로자들이 1만 5천여 명에 이르고 다문화 가정이 2천여 세대에 이른다. 언제부턴가 광주의 외국인근로자들 사이에서 박 목사를 ‘아빠’ 부인 정미영씨를 ‘엄마’라고 부른다. 두 사람이 베푸는 도움이 못가진자에게 베푸는 선심차원이 아닌 친부모가 자식을 위해 자신들의 행복을 내려놓듯 박 목사 부부의 삶이 그러했기에 그들이 부르는 호칭이었다. “내려놓은 것은 헛된 욕심일 뿐 우리부부는 성공한 인생”실제로 필자가 보기에 박 목사 부부는 그들의 행복을 내려놓은 사람들이었다. 아니 어려운 외국인들의 형제가 되어주기 위한 인생을 살기로 한 것이다. 박 목사는 부인이 힘들어하지 않느냐? 는 필자의 질문에 활짝 웃으며 “자신은 물론 내 아내도 외국인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미싱(재봉틀), 한글을 가르치는 일들을 즐긴다. 그러니 인생을 포기했다 라기 보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가 포기한 것은 욕심이고 얻은 것은 행복이다”라고 표현했다. 박 목사는 3개 교회를 운영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사례비를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부양해야할 아내와 아들, 딸이 있는 가장이다. 그래서 그는 생활비를 벌기위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는 공장에서 근로자로 일을 한다. 막노동, 용접, 박스 만들기... 그의 부인은 외국인들에게 피아노를 지도하고, 미싱을 배워 지도하고, 한글을 가르치고 오갈 데 없는 외국인들 뒷바라지에 늘 바쁘다. “중2부터 잡초 같은 삶, 낮, 막노동, 밤, 공부 검정고시 부산전체 1등“실제로 박 목사는 화순에서 가난한 농사군의 아들로 자랐다.(6형제중 첫째) 중2시절 굶주림에 지친 그는 15세의 나이에 학교를 중퇴하고 막노동판으로 뛰어들었다. 24세가 될 때까지 그는 생존을 위해 굶주림과 사투를 벌였다. 용접, 신발공장 등 각종 공장을 전전하며 잡초 같은 인생을 살던 그는 24세 때 중퇴의 학력으로는 사회에서 불편함이 너무 많은 것을 느껴 야간을 이용해 검정고시에 도전한다. 晝耕夜讀, 그는 낮에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했다.놀랍게도 결과는 부산시 1위 합격이었다. 그가 공부한 검정고시학원은 유명해졌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대입 검정고시도 패스했다. 공부에 자신이 있던 그는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했다. 그래야 국가에, 사회에 유익을 주는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한때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그는, 지금까지 이 나라를 서울대 출신들이 이끌어왔는데 ‘왜 사회에서 서울대 출신들이 대한민국을 망쳤다고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입학이 나라를 행복케 하는 길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사랑 베푸는데 인색한 종교계에 분노 치밀어... 좁은 문으로 들어갈 터...”그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신학의 길을 택한다. 목사안수를 받고나서도 그는 남들이 하는 편한 목회가 아닌 가시밭길을 걷는다. 37세가 되도록 사례비도 주지 못하는 어려운 교회들만 골라 부교역자로 도왔다. 37세가 되어 서울 거여동에서 1년 정도 큰 교회 목회를 경험한 그는 다시(13년 전) 경기 광주에 종이포장 공장에서 근로자로 취업한다. 그 공장은 외국인들이 많았다. 늘 자신들을 돌봐주는 박 목사를 따르는 40여명의 외국인들의 모임이 형성되었다. 그 후로 조선족, 미얀마인, 캄보디아인들의 요청으로 공동체가 생겨났다. 모두가 박 목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교회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 막노동을 나가는 목사”박 목사는 이들 공동체 외국인들을 돌보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첫째는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되 도움을 받지 않는다.(물질적 도움보다 직업을 갖도록 도와주고, 사례비 등을 일체 받지 않고 자신이 노동을 해 가족을 부양해왔다.)둘째 외국인들이 자국에 돌아가 잘 정착하고 자신의 고국발전에 기여도록 인도한다. (안경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1기생 5명을 선발 ‘참빛 안경원’에서 3개월 코스 교육이 수 중. 20명 단위로 새마을 교육을 이수토록 함.)셋째 투쟁이 아닌 상호 이득이 되도록 중재한다.(쌍방이 모두 만족토록 하여 기업체들 쪽에서 먼저 박 목사를 부르는 일이 더 많아졌을 만큼 양쪽에서 환영을 받았다.)이러한 원칙들은 박 목사 자신이 모진 삶의 현장을 체험한 경험의 토대위에서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박 목사의 원칙들은 외국인들이 성실히 일하여 그들의 가족들을 부양토록 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었다. 박 목사는 지난해 3월 큰 상처를 입었다. 자신이 돌보던 캄보디아 여성이 울면서 박목사를 찾아왔다. 얘긴즉, 춘천으로 시집온 자신의 여동생이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했노라고 호소했던 것이었다. 평소에도 늘 괴롭혀오던 남편이라 살인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조사결과 보험6건에(보상금액 12억) 가입해놓고 그중 1건 1억2천만 원을 타간 사실이 밝혀졌다. 한인 남편이 부인생전에 캄보디아에 가서 부인의 사망신고를 했던 사실이 양국 경찰의 공조수사로 드러났다. 부검에서 수면제를 먹은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박 목사는 캄보디아인들과 함께 경찰서에가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정황상 살인이 확실했으나 증거가 부족하였고 남편은 3명의 변호인을 고용 적극적인 방어를 하여 재판 결과를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박 목사는 한숨을 쉰다..박 목사와 춘천의 시민단체들은 캄보디아 유족들에게 한국인으로써 유감과 위로를 전하는 한편 2천만 원을 모금하여 사과와 함께 전달하였다. 약 7년여 전 한 조선족 동포가 각혈을 하다가 쓰러져 아주대 병원으로 실려 갔다. 검진결과 간경화였다. 치료비 1천만 원이 필요했으나 병원비가 없었다. 박 목사는 분당 샘물교회 장로인 샘 안양병원장에게 부탁 치료비를 500만 원으로 경감 받고 희년선교회(외국인들을 돕는 기독교 단체)에 호소 5백만 원의 치료비를 지원받아 그 환자를 완치 시켰다. 지난 해 12월 그 조선족 동포 자녀의 결혼 주례를 섰다. 회복된 조선족 동포의 부인은 이제 박 목사를 도와 조선족 공동체 식당의 모든 지휘, 봉사를 하는 수석 주방장(무급)이다.박 목사는 이들을 돕느라 고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다. 늘 부정기적인 잡다한 일거리들(용접, 미싱 등,...)을 해왔다. 따라서 늘 생활비가 적자였다. 카드 돌려 막기는 기본이었다. 2011년 3월 그는 부산에 부모님이 물려준 집을 7천 5백만 원에 팔아 그동안 싸여왔던 빚을 청산하였다. 그러나 6월 현재 그는 다시 200여만 원의 빚을 안고 있다. 박목사는 이들의 안정된 일자리 마련에 노력한다. 그 일환으로 외국인들이 하청을 받아 납품할 수 있도록 기업체를 설득하는데 성공, 공동 작업장을 마련 중이다. 그의 부인은 미싱 기술을 가르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작업장에 미싱 기계 5대를 구비하였다. 기업에서 이들의 기술, 생산성을 인정하게 되면 일거리를 더 줄 것이라고 한다. 그를 돕고 있는 한국인 독지가 김명수(60)씨는 외국인들이 자국 식품매점을 염가에 구입할 수 있도록 식품매장을 열어 외국인들은 큰 혜택을 보고 있다. 김명수 씨는 박 목사의 선행에 감동받아 조선족 공동체 사무실 임대료 등을 위하여 기부하며 함께 외국인들을 돕고 있으며, 최진수(62)씨는 캄보디아인들이 주말에 식사를 하도록 돕고 있으며, 그의 동료들은 매월 1회 미용 봉사로 돕고 있다. 박종일 목사! 그는 우리주변에 보이는 그러한 흔한 ‘무늬만 종교인’이 아니다. 평생을 낮고 어려운 자들을 도우며 살아온 ‘울지마 톤즈’에 나오는 이태석 신부님에 버금가는 훌룡한 성직자이다. 다만 섬김의 대상이 아프리카 수단인들과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그는 IMF 시절에 한국에 처음 온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가나인들이 유통기간이 한참 지난 김치 캔을 따 밥을 먹으며 “맛있어요” 할 때 가슴 아파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아빠’이고 그의 아내는 그들의 ‘엄마’였다.
    • 초대석
    2011-06-15
  • 광주 외국인들의 ‘아빠, 엄마’ 다문화센터 ‘행복한 이웃’ 이사장 박종일, 정미영 부부
    “혹독했던 지난 삶이 홀대받는 외국인들의 아픔 속으로 뛰어들게해...”“수단에는 ‘울지마 톤즈’이태석 신부, 한국엔 ‘막노동자’박종일 목사” 경기 광주 역동 8-10번지에 3층에 조선족 교회, 이 교회에서 5분 거리 역동 213-1번지 건물 2층에 외국인 이주민들(캄보디아, 미얀마, 조선족 등)을 위한 다문화 센터 사무실과 교회가 있고, 지하에는 미얀마인들을 위한 공동체가 있다. 조선족 40여명, 캄보디아인 40여명, 미얀마인 40여명이 주말이나 휴일에 모여 동족들을 만나 향수를 달래거나, 타국 직장생활에서의 어려움을 상담하고 해결을 받는 사랑방이기도 하다.광주는 공장이 많아 외국인들이 매우 많다. 근로자들이 1만 5천여 명에 이르고 다문화 가정이 2천여 세대에 이른다. 언제부턴가 광주의 외국인근로자들 사이에서 박 목사를 ‘아빠’ 부인 정미영씨를 ‘엄마’라고 부른다. 두 사람이 베푸는 도움이 못가진자에게 베푸는 선심차원이 아닌 친부모가 자식을 위해 자신들의 행복을 내려놓듯 박 목사 부부의 삶이 그러했기에 그들이 부르는 호칭이었다. “내려놓은 것은 헛된 욕심일 뿐 우리부부는 성공한 인생”실제로 필자가 보기에 박 목사 부부는 그들의 행복을 내려놓은 사람들이었다. 아니 어려운 외국인들의 형제가 되어주기 위한 인생을 살기로 한 것이다. 박 목사는 부인이 힘들어하지 않느냐? 는 필자의 질문에 활짝 웃으며 “자신은 물론 내 아내도 외국인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미싱(재봉틀), 한글을 가르치는 일들을 즐긴다. 그러니 인생을 포기했다 라기 보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가 포기한 것은 욕심이고 얻은 것은 행복이다”라고 표현했다. 박 목사는 3개 교회를 운영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사례비를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부양해야할 아내와 아들, 딸이 있는 가장이다. 그래서 그는 생활비를 벌기위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는 공장에서 근로자로 일을 한다. 막노동, 용접, 박스 만들기... 그의 부인은 외국인들에게 피아노를 지도하고, 미싱을 배워 지도하고, 한글을 가르치고 오갈 데 없는 외국인들 뒷바라지에 늘 바쁘다. “중2부터 잡초 같은 삶, 낮, 막노동, 밤, 공부 검정고시 부산전체 1등“실제로 박 목사는 화순에서 가난한 농사군의 아들로 자랐다.(6형제중 첫째) 중2시절 굶주림에 지친 그는 15세의 나이에 학교를 중퇴하고 막노동판으로 뛰어들었다. 24세가 될 때까지 그는 생존을 위해 굶주림과 사투를 벌였다. 용접, 신발공장 등 각종 공장을 전전하며 잡초 같은 인생을 살던 그는 24세 때 중퇴의 학력으로는 사회에서 불편함이 너무 많은 것을 느껴 야간을 이용해 검정고시에 도전한다. 晝耕夜讀, 그는 낮에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했다.놀랍게도 결과는 부산시 1위 합격이었다. 그가 공부한 검정고시학원은 유명해졌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대입 검정고시도 패스했다. 공부에 자신이 있던 그는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했다. 그래야 국가에, 사회에 유익을 주는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한때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그는, 지금까지 이 나라를 서울대 출신들이 이끌어왔는데 ‘왜 사회에서 서울대 출신들이 대한민국을 망쳤다고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입학이 나라를 행복케 하는 길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사랑 베푸는데 인색한 종교계에 분노 치밀어... 좁은 문으로 들어갈 터...”그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신학의 길을 택한다. 목사안수를 받고나서도 그는 남들이 하는 편한 목회가 아닌 가시밭길을 걷는다. 37세가 되도록 사례비도 주지 못하는 어려운 교회들만 골라 부교역자로 도왔다. 37세가 되어 서울 거여동에서 1년 정도 큰 교회 목회를 경험한 그는 다시(13년 전) 경기 광주에 종이포장 공장에서 근로자로 취업한다. 그 공장은 외국인들이 많았다. 늘 자신들을 돌봐주는 박 목사를 따르는 40여명의 외국인들의 모임이 형성되었다. 그 후로 조선족, 미얀마인, 캄보디아인들의 요청으로 공동체가 생겨났다. 모두가 박 목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교회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 막노동을 나가는 목사”박 목사는 이들 공동체 외국인들을 돌보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첫째는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되 도움을 받지 않는다.(물질적 도움보다 직업을 갖도록 도와주고, 사례비 등을 일체 받지 않고 자신이 노동을 해 가족을 부양해왔다.)둘째 외국인들이 자국에 돌아가 잘 정착하고 자신의 고국발전에 기여도록 인도한다. (안경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1기생 5명을 선발 ‘참빛 안경원’에서 3개월 코스 교육이 수 중. 20명 단위로 새마을 교육을 이수토록 함.)셋째 투쟁이 아닌 상호 이득이 되도록 중재한다.(쌍방이 모두 만족토록 하여 기업체들 쪽에서 먼저 박 목사를 부르는 일이 더 많아졌을 만큼 양쪽에서 환영을 받았다.)이러한 원칙들은 박 목사 자신이 모진 삶의 현장을 체험한 경험의 토대위에서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박 목사의 원칙들은 외국인들이 성실히 일하여 그들의 가족들을 부양토록 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었다. 박 목사는 지난해 3월 큰 상처를 입었다. 자신이 돌보던 캄보디아 여성이 울면서 박목사를 찾아왔다. 얘긴즉, 춘천으로 시집온 자신의 여동생이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했노라고 호소했던 것이었다. 평소에도 늘 괴롭혀오던 남편이라 살인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조사결과 보험6건에(보상금액 12억) 가입해놓고 그중 1건 1억2천만 원을 타간 사실이 밝혀졌다. 한인 남편이 부인생전에 캄보디아에 가서 부인의 사망신고를 했던 사실이 양국 경찰의 공조수사로 드러났다. 부검에서 수면제를 먹은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박 목사는 캄보디아인들과 함께 경찰서에가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정황상 살인이 확실했으나 증거가 부족하였고 남편은 3명의 변호인을 고용 적극적인 방어를 하여 재판 결과를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박 목사는 한숨을 쉰다..박 목사와 춘천의 시민단체들은 캄보디아 유족들에게 한국인으로써 유감과 위로를 전하는 한편 2천만 원을 모금하여 사과와 함께 전달하였다. 약 7년여 전 한 조선족 동포가 각혈을 하다가 쓰러져 아주대 병원으로 실려 갔다. 검진결과 간경화였다. 치료비 1천만 원이 필요했으나 병원비가 없었다. 박 목사는 분당 샘물교회 장로인 샘 안양병원장에게 부탁 치료비를 500만 원으로 경감 받고 희년선교회(외국인들을 돕는 기독교 단체)에 호소 5백만 원의 치료비를 지원받아 그 환자를 완치 시켰다. 지난 해 12월 그 조선족 동포 자녀의 결혼 주례를 섰다. 회복된 조선족 동포의 부인은 이제 박 목사를 도와 조선족 공동체 식당의 모든 지휘, 봉사를 하는 수석 주방장(무급)이다.박 목사는 이들을 돕느라 고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다. 늘 부정기적인 잡다한 일거리들(용접, 미싱 등,...)을 해왔다. 따라서 늘 생활비가 적자였다. 카드 돌려 막기는 기본이었다. 2011년 3월 그는 부산에 부모님이 물려준 집을 7천 5백만 원에 팔아 그동안 싸여왔던 빚을 청산하였다. 그러나 6월 현재 그는 다시 200여만 원의 빚을 안고 있다. 박목사는 이들의 안정된 일자리 마련에 노력한다. 그 일환으로 외국인들이 하청을 받아 납품할 수 있도록 기업체를 설득하는데 성공, 공동 작업장을 마련 중이다. 그의 부인은 미싱 기술을 가르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작업장에 미싱 기계 5대를 구비하였다. 기업에서 이들의 기술, 생산성을 인정하게 되면 일거리를 더 줄 것이라고 한다. 그를 돕고 있는 한국인 독지가 김명수(60)씨는 외국인들이 자국 식품매점을 염가에 구입할 수 있도록 식품매장을 열어 외국인들은 큰 혜택을 보고 있다. 김명수 씨는 박 목사의 선행에 감동받아 조선족 공동체 사무실 임대료 등을 위하여 기부하며 함께 외국인들을 돕고 있으며, 최진수(62)씨는 캄보디아인들이 주말에 식사를 하도록 돕고 있으며, 그의 동료들은 매월 1회 미용 봉사로 돕고 있다. 박종일 목사! 그는 우리주변에 보이는 그러한 흔한 ‘무늬만 종교인’이 아니다. 평생을 낮고 어려운 자들을 도우며 살아온 ‘울지마 톤즈’에 나오는 이태석 신부님에 버금가는 훌룡한 성직자이다. 다만 섬김의 대상이 아프리카 수단인들과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그는 IMF 시절에 한국에 처음 온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가나인들이 유통기간이 한참 지난 김치 캔을 따 밥을 먹으며 “맛있어요” 할 때 가슴 아파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아빠’이고 그의 아내는 그들의 ‘엄마’였다.
    • 초대석
    2011-06-15
  •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 위원 공근식 양평1선거구 도의원
    양평군 지역실정에 맞는 도시계획과 발전모색 해야대화 타협 상생의 묘책 찾아 공감대 형성 하는 의정대담 : 정봉영 발행인바쁘신 중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본지에서는 금주의 초대석을 기획시리즈로 연재 하고 있는 바 시대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추구되고 있는 지도자들의 지도력역량 발굴과 함께 리더십과 사회복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 소속 위원으로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공근식 양평 제1선거구(양평읍 양서 서종 옥천면) 도의원이며 이 시대에 성공한 기업인으로 정평있는 공근식도의원에 대한 견해와 활동상과 식견 이사회와 양평군의 미래와 발전 방향 문제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듣고자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1.주민들과 하나로신문 독자분들을 위하여 간단한 개인 소개를 부탁합니다.무엇 보다 하나로신문 지면을 통해 인사를 드리게 된 점에 대해 감사드리며 오늘날 이순간 이시각 까지 고향 지킴이를 자부하며 오로지 지역발전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하면서 내 영원한 안식처이자 고향인 양평을 지키며 생활 해 왔습니다. 그동안 한정된 울타리 안에서 생활을 하다가 큰 꿈을 펼치기 위해 지난6.2지방선거 한나라당 양평 제1선거구(양평읍 양서 옥천 서종면) 도의원 공천을 받고 출마를 하여 주민들의 물심양면의 성원에 힘입어 당선의 영예를 안고 제8대 경기도 의회에 진출하여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평군 도의회 초선의원 공근식입니다. 2. 지난6.2지방선거에서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도의회 진출에 성공 하였는데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그동안 저는 오로지 전형적인 농촌의 아들이자 농민으로서 흙과 농작물은 사람이 노력한 것만큼 반드시 성과를 거둔다는 생각과 신념아래 그저 묵묵하게 뚝심하나로 진실만을 추구 성실히 노력하면서 나 보다 이웃을 생각하는 배려와 함께 생활 해왔고 말보다는 실천과 행동으로 옮기면서 자만하지 않은 노력의 결과라고 자평 할 수 있겠습니다.또한 모든 생활의 원천이자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고지식함과 항상 두툭한 배짱과 불의에 도전하는 불도저식 불굴의 용기 평소 의리의 생활 철학이 현명한 유권자분들과 주민들의 선택의 척도이자 지름길로 작용 했다고 생각 합니다. 3. 경기도 의회 의원으로 진출하여 건설 교통분과 위원회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와 계기가 있는지 밝혀 달라?건설 교통위원회를 선택하여 의정활동을 택한 이유는 분명한 나의 선택이며 나아가 양평군민들의 부름이라는 생각으로 본인이 그동안 많은 경험과 자신이 있는 농업 관련 상임위가 아니고 본인에게 생소한 건설교통위를 선택한 이유는 현실 속에서 우리 양평군이 시급하게 처해 있는 과제 중 제일 우선순위라는 점 이다.현재 우리 양평군은 수도권과 남한강 상류라는 이유와 지리적 여건 때문에 그 어느 지방자치 단체들 보다도 천혜자원들과 수려한 경관으로 인하여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단지 서울 시민들의 수돗물 젓줄이라는 이유로 수 십여 년 간을 각종 규제와 중첩규제로 인하여 가장 낙후 되어 모든 주민들이 개발 욕구에 목 말라 있다는 것이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이러한 악 조건 속에서 이제 막 개통을 하여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들고 있는 전철 시대에 도래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양평이 교통 요충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위기를 기회의 땅인 희망의 도시와 꿈의 도시로 탈바꿈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여 도시의 기본 시설인 도시계획과 국,도비 예산 확보등 많은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 나가기 위해 선택하였습니다. 4. 공근식 의원이 경기도의회에 진출 건교위 상임위에서 의정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공적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도의회 초년생으로 그동안 동분서주 하면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고질적인 민원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 있는 옥천면 향교에 진입하는 노후된 교량이 있는데 안전문제가 있어 통행을 제한 하면서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 왔습니다. 비교적 규모가 있는 동네가 있고 신도수가 꽤 많은 교회도 교량앞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을 드나들려면 비교적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습니다.저는 도의원이 되면서 가장 먼저 접한 민원이 교량 통행을 가능토록 해 달라는 주민들 민원이 었기에 검토해본 결과 그동안 양평군에서 경기도에 재가설을 위한 예산 지원을 위해 많은 노력과 협의를 해봐도 비 법정 도로라 예산지원 불가하다는 답변으로 일관 되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실정을 파악하고 경기도의 담당국장 과장 등과 수차례 만나 해법을 논의하다 보니 재 가설은 안 되지만 보수는 가능 하다는 결론을 듣고 6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고질적인 민원을 해소 하면서 비로소 도의원으로서의 나 갈 길과 앞으로 펼칠 의정계획을 수립하여 몸과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면서 주민들이 원하는 민원처리와 함께 적재적소에서 필요에 따라 탈력 있는 의정을 펼칠 것입니다. 5. 한나라당 광역의회 의원이 민주당 의석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가운데 의정 활동을 펼치려면 많은 어려움과 애로사항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 되는데 해결책이나 방침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정당 정치시대에서 여당 야당은 피 할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이자 대립의 각도에서 상생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이러한 현실 속에 여당인 한나라당 경기도의회 의원이 야당인 민주당 보다 월등하게 의석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의원 개개인 모두가 정당을 떠나 누구나 경기도의 발전을 추구하면서 주민들의 수준 높은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 하고자 의원으로 역할하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공감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선,후배 동료로 대화와 타협으로 서로 상생의 묘책을 찾으며 발전의 공감대를 형성 하는 길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 합니다. 6.경기도의회의원으로 입성하여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의회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공통부분은 기초, 광역의원 역시 주민들의 평가와 선택에 의해 선출되고 있는 선출직이라는 점이며 의회의 기능은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부여 받은 주민의 대표 대변자로서 광역 및 기초 단체인 행정의 전횡을 감시 감독을 하여 주민 본위위주의 행정과 함께 지역실정에 맞는 적재적소에 예산 집행이 되어 진정한 주민 복지와 질 높은 삶을 향상 시키는데 주력 할 수 있도록정파를 떠나 개인 사리사욕을 버리고 행정부에 가감 없이 전달 주민들 피부에 와 닿는 진정한 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동반자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어디까지 주민들의 선택에 의해 선출된 공인들인 만 큼 주민들의 진정한 심부름꾼이자 대변인으로서 주워진 역할과 책임을 다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점 명심해야 합니다. 7.양평군 발전 방향과 도시계획을 제시 한다면?현재 우리 양평군은 오랜 기간 정부의 철통같은 규제속의 중첩 규제로 인하여 타 지역에 비해 개발과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단지 천혜자원과 수려한 경관으로 인하여 도시의 노후생활 안식처라는 미명아래 노인인구들이 대거 이주하여 전국 제일의 고령화 도시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는 현실은 오늘의 양평군의 현 주소입니다.이러한 현실에 직시하여 고령화와 노인 일자리마련을 위한 정책수립이 아쉽다.또한 남한강 상류와 사면이 산과 강으로 둘러 쌓인 물 맑은 양평 이미지와 전원형 농촌도시와 전철시대개막과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를 최대한 활용한 양평만의 도시계획을 수립 하여야 하며 소중한 맑은 물이 풍부하다는 잇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고소득 농산물과 특산품을 개발 육성하여 농가소득에 기여 할 수 있도록 정책수립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8. 현재 사회 활동과 단체 활동에 대해 소개를 해 달라?동아인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재학 양평군 체육회이사 양평군 민간 수난구조대장 축산기업조합 양평군지부장 양서고등학교 학부모회장 국수중학교 동문회장 양평경찰서 경찰발전위원회위원 양평소방서 양서면 의용소방대장 제8대 경기도의회 의원 건설교통위원/정보화위원 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9.생활신조와 좌우명 간단한 가족소개를 한다면?생활신조로는 “더불어살자”로 매사에 희로애락(喜怒愛樂)을 함께 하면서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가족으로는 장원숯불갈비집을 운영하면서 남편의 뒷 바라지에 한번도 불평불만없이 내조의 활동을 묵묵히 해주고 있는 처 한영례(50세)와 사이 2남을 두고 장남 병진 차남병돈을 두고 양서면용담리56번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 초대석
    2011-06-15
  •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 위원 공근식 양평1선거구 도의원
    양평군 지역실정에 맞는 도시계획과 발전모색 해야대화 타협 상생의 묘책 찾아 공감대 형성 하는 의정대담 : 정봉영 발행인바쁘신 중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본지에서는 금주의 초대석을 기획시리즈로 연재 하고 있는 바 시대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추구되고 있는 지도자들의 지도력역량 발굴과 함께 리더십과 사회복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 소속 위원으로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공근식 양평 제1선거구(양평읍 양서 서종 옥천면) 도의원이며 이 시대에 성공한 기업인으로 정평있는 공근식도의원에 대한 견해와 활동상과 식견 이사회와 양평군의 미래와 발전 방향 문제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듣고자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1.주민들과 하나로신문 독자분들을 위하여 간단한 개인 소개를 부탁합니다.무엇 보다 하나로신문 지면을 통해 인사를 드리게 된 점에 대해 감사드리며 오늘날 이순간 이시각 까지 고향 지킴이를 자부하며 오로지 지역발전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하면서 내 영원한 안식처이자 고향인 양평을 지키며 생활 해 왔습니다. 그동안 한정된 울타리 안에서 생활을 하다가 큰 꿈을 펼치기 위해 지난6.2지방선거 한나라당 양평 제1선거구(양평읍 양서 옥천 서종면) 도의원 공천을 받고 출마를 하여 주민들의 물심양면의 성원에 힘입어 당선의 영예를 안고 제8대 경기도 의회에 진출하여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평군 도의회 초선의원 공근식입니다. 2. 지난6.2지방선거에서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도의회 진출에 성공 하였는데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그동안 저는 오로지 전형적인 농촌의 아들이자 농민으로서 흙과 농작물은 사람이 노력한 것만큼 반드시 성과를 거둔다는 생각과 신념아래 그저 묵묵하게 뚝심하나로 진실만을 추구 성실히 노력하면서 나 보다 이웃을 생각하는 배려와 함께 생활 해왔고 말보다는 실천과 행동으로 옮기면서 자만하지 않은 노력의 결과라고 자평 할 수 있겠습니다.또한 모든 생활의 원천이자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고지식함과 항상 두툭한 배짱과 불의에 도전하는 불도저식 불굴의 용기 평소 의리의 생활 철학이 현명한 유권자분들과 주민들의 선택의 척도이자 지름길로 작용 했다고 생각 합니다. 3. 경기도 의회 의원으로 진출하여 건설 교통분과 위원회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와 계기가 있는지 밝혀 달라?건설 교통위원회를 선택하여 의정활동을 택한 이유는 분명한 나의 선택이며 나아가 양평군민들의 부름이라는 생각으로 본인이 그동안 많은 경험과 자신이 있는 농업 관련 상임위가 아니고 본인에게 생소한 건설교통위를 선택한 이유는 현실 속에서 우리 양평군이 시급하게 처해 있는 과제 중 제일 우선순위라는 점 이다.현재 우리 양평군은 수도권과 남한강 상류라는 이유와 지리적 여건 때문에 그 어느 지방자치 단체들 보다도 천혜자원들과 수려한 경관으로 인하여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단지 서울 시민들의 수돗물 젓줄이라는 이유로 수 십여 년 간을 각종 규제와 중첩규제로 인하여 가장 낙후 되어 모든 주민들이 개발 욕구에 목 말라 있다는 것이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이러한 악 조건 속에서 이제 막 개통을 하여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들고 있는 전철 시대에 도래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양평이 교통 요충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위기를 기회의 땅인 희망의 도시와 꿈의 도시로 탈바꿈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여 도시의 기본 시설인 도시계획과 국,도비 예산 확보등 많은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 나가기 위해 선택하였습니다. 4. 공근식 의원이 경기도의회에 진출 건교위 상임위에서 의정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공적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도의회 초년생으로 그동안 동분서주 하면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고질적인 민원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 있는 옥천면 향교에 진입하는 노후된 교량이 있는데 안전문제가 있어 통행을 제한 하면서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 왔습니다. 비교적 규모가 있는 동네가 있고 신도수가 꽤 많은 교회도 교량앞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을 드나들려면 비교적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습니다.저는 도의원이 되면서 가장 먼저 접한 민원이 교량 통행을 가능토록 해 달라는 주민들 민원이 었기에 검토해본 결과 그동안 양평군에서 경기도에 재가설을 위한 예산 지원을 위해 많은 노력과 협의를 해봐도 비 법정 도로라 예산지원 불가하다는 답변으로 일관 되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실정을 파악하고 경기도의 담당국장 과장 등과 수차례 만나 해법을 논의하다 보니 재 가설은 안 되지만 보수는 가능 하다는 결론을 듣고 6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고질적인 민원을 해소 하면서 비로소 도의원으로서의 나 갈 길과 앞으로 펼칠 의정계획을 수립하여 몸과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면서 주민들이 원하는 민원처리와 함께 적재적소에서 필요에 따라 탈력 있는 의정을 펼칠 것입니다. 5. 한나라당 광역의회 의원이 민주당 의석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가운데 의정 활동을 펼치려면 많은 어려움과 애로사항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 되는데 해결책이나 방침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정당 정치시대에서 여당 야당은 피 할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이자 대립의 각도에서 상생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이러한 현실 속에 여당인 한나라당 경기도의회 의원이 야당인 민주당 보다 월등하게 의석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의원 개개인 모두가 정당을 떠나 누구나 경기도의 발전을 추구하면서 주민들의 수준 높은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 하고자 의원으로 역할하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공감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선,후배 동료로 대화와 타협으로 서로 상생의 묘책을 찾으며 발전의 공감대를 형성 하는 길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 합니다. 6.경기도의회의원으로 입성하여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의회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공통부분은 기초, 광역의원 역시 주민들의 평가와 선택에 의해 선출되고 있는 선출직이라는 점이며 의회의 기능은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부여 받은 주민의 대표 대변자로서 광역 및 기초 단체인 행정의 전횡을 감시 감독을 하여 주민 본위위주의 행정과 함께 지역실정에 맞는 적재적소에 예산 집행이 되어 진정한 주민 복지와 질 높은 삶을 향상 시키는데 주력 할 수 있도록정파를 떠나 개인 사리사욕을 버리고 행정부에 가감 없이 전달 주민들 피부에 와 닿는 진정한 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동반자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어디까지 주민들의 선택에 의해 선출된 공인들인 만 큼 주민들의 진정한 심부름꾼이자 대변인으로서 주워진 역할과 책임을 다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점 명심해야 합니다. 7.양평군 발전 방향과 도시계획을 제시 한다면?현재 우리 양평군은 오랜 기간 정부의 철통같은 규제속의 중첩 규제로 인하여 타 지역에 비해 개발과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단지 천혜자원과 수려한 경관으로 인하여 도시의 노후생활 안식처라는 미명아래 노인인구들이 대거 이주하여 전국 제일의 고령화 도시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는 현실은 오늘의 양평군의 현 주소입니다.이러한 현실에 직시하여 고령화와 노인 일자리마련을 위한 정책수립이 아쉽다.또한 남한강 상류와 사면이 산과 강으로 둘러 쌓인 물 맑은 양평 이미지와 전원형 농촌도시와 전철시대개막과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를 최대한 활용한 양평만의 도시계획을 수립 하여야 하며 소중한 맑은 물이 풍부하다는 잇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고소득 농산물과 특산품을 개발 육성하여 농가소득에 기여 할 수 있도록 정책수립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8. 현재 사회 활동과 단체 활동에 대해 소개를 해 달라?동아인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재학 양평군 체육회이사 양평군 민간 수난구조대장 축산기업조합 양평군지부장 양서고등학교 학부모회장 국수중학교 동문회장 양평경찰서 경찰발전위원회위원 양평소방서 양서면 의용소방대장 제8대 경기도의회 의원 건설교통위원/정보화위원 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9.생활신조와 좌우명 간단한 가족소개를 한다면?생활신조로는 “더불어살자”로 매사에 희로애락(喜怒愛樂)을 함께 하면서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가족으로는 장원숯불갈비집을 운영하면서 남편의 뒷 바라지에 한번도 불평불만없이 내조의 활동을 묵묵히 해주고 있는 처 한영례(50세)와 사이 2남을 두고 장남 병진 차남병돈을 두고 양서면용담리56번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 초대석
    2011-06-15
  • 진사백자의새로운경지대한민국도예명장 임항택
    진사백자의 새로운 경지, 대한민국 도예명장 임 항 택 “저 붉은 울음이여, 눈부신 생명력이여!” 진사의 신비를 재현하는 도예명장-지난해엔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도 열어- 2010년 10월 12일(화) 17:31 [(주)하나로일보] ↑↑ 한국적인 깊은 미의 도자색을 재현하기 위해 재래종 적송 장작으로 도자기를 굽고 있는 임명장 ⓒ (주)하나로일보 “저는 35년 전 조선백자의 연구에 뛰어들면서 그때 무심코 관찰하던 한편의 진사 파편에 대한 충격스런 감정을 지금도 지울 수 없습니다. 조그만 붉은 진사색의 파편, 온몸을 태워 버릴듯 한 처절한 선율의 붉은 색이 먼 우주의 미로로 내 자신을 빨아들이는 듯한 전율, 그 뒤로 줄곧 이 진사의 색채는 나를 따라 다녔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도토(도자기의 원료로 쓰는 진흙)를 개고 물레를 돌리면서도, 장작불을 때면서도 이 빛깔의 재현은 멀고도 아스라한 길처럼 아득해 보였습니다.” 항산은 자신이 도자기에 표현한 이유, 그 동안의 부단한 연구와 노력, 미래 자신의 도전과제를 설명한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비법들을 정리하여 후배들을 양성 ⓒ (주)하나로일보끝없는 연구와 실험으로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비법들을 실체화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임 명장은 2005년도에 조선백자의 제조방법 및 그 안료로 특허를 득했다. 그는 자신이 수십년, 수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한 비법을 과학적으로 데이터화하여 제자나 다른 도예인들의 연구를 돕는다.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 기술학과에 나가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실험을 통합 경험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후학들이 짧은 시간에 자신의 경지보다 더 진보된 도예의 경지를 개척해 나가길 원한다. 그래서 그는 양구, 문경 등 도자지역 방문시마다 자신의 도자연구 데이터들을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한다. 교사직을 접고 고생길을 택한 것은 운명이라 생각되다... “중등학교 미술교사 시절 1973년 한 신문에서 운보 이당 선생이 조선백자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어요. 맥이 끊긴 줄만 알았던 조선백자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저를 흥분하게 했고 그 호기심이 내 발걸음을 이천으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천에 온 그는 열정과 의욕과는 달리 자신에게 열정적으로 기술을 전수해주는 이가 없어 당황하였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흙덩어리 뿐 이었다. 우리 민족의 특성상 천대도 받고 기술 전수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기술습득이 어려웠다. 도토는 어떻게 만들고 유약은 무엇으로 만드는지 알수조차 없었다. 한동안은 오로지 스스로 연구하고 스스로 익혀 깨닫는 과정뿐이었다. 후에 백석 이 정하 선생을 비롯한 지인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작품을 보면 진사에 애정이 많은 것이 느껴진다. “백자를 알기도 전에 명채도가 높은 진사에 흥미를 느꼈다. 선혈의 붉은 색은 나를 태워버릴 것 같고 전율을 느끼게 한다. 보잘것없는 도편 위 붉은 한점은 ‘화룡점정’ 마치 흙덩어리에 창조주가 생기를 불어 넣는 마지막 작업과도 같다.” -도자기를 구울 때 힘든 전통 장작가마를 고집하는 이유는... “재래식 등요는 조상들의 과학의 결정체다. 옛 등요를 재현해 재래종 적송 장작으로 구워내야 한국적인 깊은미의 도자색을 재현할 수 있다. 선홍색 진사도 마찬가지다. 타 방식으로 생산된 도자색과 대비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좋은 도자기란... “한국적인 선과 형태를 지녀야 한다. 유약의 조합, 재료의 선택에서 알맞은 색조가 연출 되었는지,문양의 격조, 여백의 조화가 잘 맞아야 하고 균일하게 소성됐는지, 작가 독창성이 녹아있어 지속적인 공감과 감동을 주어야한다.” -병원 치료비가 없어 고통을 겪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던데. “내 작품으로 병원비를 대신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선생님의 배려에 감사했다. 나도 지역사회로부터 받은 은혜가 크다. 나는 받은 은혜의 일부를 나누었을 뿐 칭찬받을 일은 못된다. 이천을 위해 나의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게도 고마운 일이다.” -도예 후학이나 입문인에게 하고픈 말은... “철학, 끈기, 참을성이 없는 후학들을 많이 본다. 손수 장작을 패고 도토를 만들고 몇 일씩 불을 때며 고생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빨리빨리 돈 벌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려는 욕심이 가득한 경우를 본다. 하지만 소수의 후배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이들에게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개척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모방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 같아 보이나 잠시뿐이고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창의성 있는 예술가만이 정상의 기쁨을 맛 볼 수 있다. ⓒ (주)하나로일보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목표로 하는 진사연구는 아직도 멀었다. 특허를 딴것은 연구과제의 산업적인 중요함을를 증명하고 과학적인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목적이었고 이것을 발판으로 후학들을 위해 기본이 되고 받침이 되는 학문연구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그간의 연구과정을 정리하여 뜻있는 후배에게 이어지도록 할 것이다.“ -도자산업의 발전을 위해 조언한다면. “첫째는 도예인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고부가 가치 창출이 가능한 도예산업을 도외시한 결과 대외적으로 우리의 도예산업이 일본의 아류(추종하는 사람)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해외 여러 나라의 박물관을 가보면 일본의 전시관과 한국의 전시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책 마련을 촉구한다. 일본은 이미 도예산업을 관광과 수출을 통해 고부가 가치를 확실하게 창출하고 있다.” 항산 임항택의 소개 충주공업고등전문학교(현 충주대)기계과졸, 4년간 교직 생활 1975이천 백석 이정하 선생에게 2년간 사사. 2002년 도자기 공예 기능사 취득. 2004년 대한민국 명장 (도자기 공예부문 04-5). 2005년 진사안료의 제조방법과 그 안료의 제조방법을 등록(특허등록 0506119호) 했다. 현재는 항산도예연구소장으로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술학과 출강. 한국 금융연수원 강사 역임. 장녀 임 창랑(수석 전수자)에게 조선 백자의 연구 등을 전수 중. 2009년 7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진사백자'전과 동경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갤러리미'조선진사백자'전을 비롯 신세계 화랑 개인전(1977),일본 동경 구보타 개인전(1995), 프랑스 파리 한국 문화원(2002), 미국 LA 코스모스 백화점 전시회(1999) 등 개인전 14회, 공동전 21회 개최, 예술의 전당(2009.7)...총 50여회 전시회를 열거나 개최했다. [대담 주필 이계찬] ↑↑ 수석 전수자인 장녀 임창랑氏 에게 자신의 비법을 전수하고 있는 임항택 명장 ⓒ (주)하나로일보
    • 초대석
    2011-06-07
  • 진사백자의새로운경지대한민국도예명장 임항택
    진사백자의 새로운 경지, 대한민국 도예명장 임 항 택 “저 붉은 울음이여, 눈부신 생명력이여!” 진사의 신비를 재현하는 도예명장-지난해엔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도 열어- 2010년 10월 12일(화) 17:31 [(주)하나로일보] ↑↑ 한국적인 깊은 미의 도자색을 재현하기 위해 재래종 적송 장작으로 도자기를 굽고 있는 임명장 ⓒ (주)하나로일보 “저는 35년 전 조선백자의 연구에 뛰어들면서 그때 무심코 관찰하던 한편의 진사 파편에 대한 충격스런 감정을 지금도 지울 수 없습니다. 조그만 붉은 진사색의 파편, 온몸을 태워 버릴듯 한 처절한 선율의 붉은 색이 먼 우주의 미로로 내 자신을 빨아들이는 듯한 전율, 그 뒤로 줄곧 이 진사의 색채는 나를 따라 다녔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도토(도자기의 원료로 쓰는 진흙)를 개고 물레를 돌리면서도, 장작불을 때면서도 이 빛깔의 재현은 멀고도 아스라한 길처럼 아득해 보였습니다.” 항산은 자신이 도자기에 표현한 이유, 그 동안의 부단한 연구와 노력, 미래 자신의 도전과제를 설명한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비법들을 정리하여 후배들을 양성 ⓒ (주)하나로일보끝없는 연구와 실험으로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비법들을 실체화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임 명장은 2005년도에 조선백자의 제조방법 및 그 안료로 특허를 득했다. 그는 자신이 수십년, 수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한 비법을 과학적으로 데이터화하여 제자나 다른 도예인들의 연구를 돕는다.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 기술학과에 나가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실험을 통합 경험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후학들이 짧은 시간에 자신의 경지보다 더 진보된 도예의 경지를 개척해 나가길 원한다. 그래서 그는 양구, 문경 등 도자지역 방문시마다 자신의 도자연구 데이터들을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한다. 교사직을 접고 고생길을 택한 것은 운명이라 생각되다... “중등학교 미술교사 시절 1973년 한 신문에서 운보 이당 선생이 조선백자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어요. 맥이 끊긴 줄만 알았던 조선백자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저를 흥분하게 했고 그 호기심이 내 발걸음을 이천으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천에 온 그는 열정과 의욕과는 달리 자신에게 열정적으로 기술을 전수해주는 이가 없어 당황하였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흙덩어리 뿐 이었다. 우리 민족의 특성상 천대도 받고 기술 전수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기술습득이 어려웠다. 도토는 어떻게 만들고 유약은 무엇으로 만드는지 알수조차 없었다. 한동안은 오로지 스스로 연구하고 스스로 익혀 깨닫는 과정뿐이었다. 후에 백석 이 정하 선생을 비롯한 지인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작품을 보면 진사에 애정이 많은 것이 느껴진다. “백자를 알기도 전에 명채도가 높은 진사에 흥미를 느꼈다. 선혈의 붉은 색은 나를 태워버릴 것 같고 전율을 느끼게 한다. 보잘것없는 도편 위 붉은 한점은 ‘화룡점정’ 마치 흙덩어리에 창조주가 생기를 불어 넣는 마지막 작업과도 같다.” -도자기를 구울 때 힘든 전통 장작가마를 고집하는 이유는... “재래식 등요는 조상들의 과학의 결정체다. 옛 등요를 재현해 재래종 적송 장작으로 구워내야 한국적인 깊은미의 도자색을 재현할 수 있다. 선홍색 진사도 마찬가지다. 타 방식으로 생산된 도자색과 대비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좋은 도자기란... “한국적인 선과 형태를 지녀야 한다. 유약의 조합, 재료의 선택에서 알맞은 색조가 연출 되었는지,문양의 격조, 여백의 조화가 잘 맞아야 하고 균일하게 소성됐는지, 작가 독창성이 녹아있어 지속적인 공감과 감동을 주어야한다.” -병원 치료비가 없어 고통을 겪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던데. “내 작품으로 병원비를 대신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선생님의 배려에 감사했다. 나도 지역사회로부터 받은 은혜가 크다. 나는 받은 은혜의 일부를 나누었을 뿐 칭찬받을 일은 못된다. 이천을 위해 나의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게도 고마운 일이다.” -도예 후학이나 입문인에게 하고픈 말은... “철학, 끈기, 참을성이 없는 후학들을 많이 본다. 손수 장작을 패고 도토를 만들고 몇 일씩 불을 때며 고생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빨리빨리 돈 벌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려는 욕심이 가득한 경우를 본다. 하지만 소수의 후배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이들에게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개척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모방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 같아 보이나 잠시뿐이고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창의성 있는 예술가만이 정상의 기쁨을 맛 볼 수 있다. ⓒ (주)하나로일보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목표로 하는 진사연구는 아직도 멀었다. 특허를 딴것은 연구과제의 산업적인 중요함을를 증명하고 과학적인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목적이었고 이것을 발판으로 후학들을 위해 기본이 되고 받침이 되는 학문연구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그간의 연구과정을 정리하여 뜻있는 후배에게 이어지도록 할 것이다.“ -도자산업의 발전을 위해 조언한다면. “첫째는 도예인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고부가 가치 창출이 가능한 도예산업을 도외시한 결과 대외적으로 우리의 도예산업이 일본의 아류(추종하는 사람)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해외 여러 나라의 박물관을 가보면 일본의 전시관과 한국의 전시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책 마련을 촉구한다. 일본은 이미 도예산업을 관광과 수출을 통해 고부가 가치를 확실하게 창출하고 있다.” 항산 임항택의 소개 충주공업고등전문학교(현 충주대)기계과졸, 4년간 교직 생활 1975이천 백석 이정하 선생에게 2년간 사사. 2002년 도자기 공예 기능사 취득. 2004년 대한민국 명장 (도자기 공예부문 04-5). 2005년 진사안료의 제조방법과 그 안료의 제조방법을 등록(특허등록 0506119호) 했다. 현재는 항산도예연구소장으로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술학과 출강. 한국 금융연수원 강사 역임. 장녀 임 창랑(수석 전수자)에게 조선 백자의 연구 등을 전수 중. 2009년 7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진사백자'전과 동경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갤러리미'조선진사백자'전을 비롯 신세계 화랑 개인전(1977),일본 동경 구보타 개인전(1995), 프랑스 파리 한국 문화원(2002), 미국 LA 코스모스 백화점 전시회(1999) 등 개인전 14회, 공동전 21회 개최, 예술의 전당(2009.7)...총 50여회 전시회를 열거나 개최했다. [대담 주필 이계찬] ↑↑ 수석 전수자인 장녀 임창랑氏 에게 자신의 비법을 전수하고 있는 임항택 명장 ⓒ (주)하나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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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07
  • 새터민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아버지같은경찰이성철
    새터민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아버지같은 경찰 “우리들에겐 부모, 아이들에게는 친아빠 같았어요”이 성철 경사 / 이천경찰서 창전 지구대 2010년 10월 25일(월) 18:24 [(주)하나로일보] “내 자녀들이 한국에서 정착한 것은 모두 그분 덕분...” “경찰의 날이 됐는데 그분 생각나네요. 우리 가족에겐 그분이 전부였는데... 타 지역에 정착한 새터민들이 우리들을 많이 부러워 했어요.” 경찰의 날인 21일 새터민들이 저녁에 웅성웅성 아파트 옆 공원에 모이기 시작한다.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이경사의 은혜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약속을 했기때문. 저녁 6시 30분에 모인 새터민들은 이 형사 부인의 사업장인 꽃가게로 향했다. 필자는 함께 동행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2006년 조 명자(45)씨는 18세된 아들과 함께 북을 탈출하여 이천으로 왔다. 당시 조씨는 당시 하나원에서 가지고 온 밥그릇 몇 개가 전부. 넋을 잃고 있을 당시 보안계에 근무하던 이 형사가 찾아와 위로하며 마땅히 밥먹기가 어려웠던 조 씨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낯설지만 저를 남한에 있던 가족이라 생각하세요.” 개구쟁이 소년처럼 밝게 웃으며 다가온 이 형사. 그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었다. ⓒ (주)하나로일보북에서 노래, 가무에 능통해 인정받는 예능인이었던 조씨는 남한에서 설자리가 없었다. 이 형사는 그녀를 정수기 회사에 취업시켜 주었다. 18세의 아들은 학업 수준을 고려, 중학교에 2~3살 어린 후배들과 함께 다니도록 해주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소개도 시켰다. “학교에서는 이 형사가 아빠인줄 알아요.” 그러나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들은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학교를 빠지고 엄마에게 반항했다 아들은 엄마 말은 안 들어도 이 형사말은 잘 따랐다. 대안학교를 수소문한 끝에 천안에 있는 대안학교에 입학시켰다. 현재 그 아들은 인천 공장에 취업 어엿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뒤늦게 탈북한 딸은 북에서 폭력을 일삼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나타나 괴롭힐까 늘 두려움에 떨었다. 이 형사는 모녀의 이름을 법원에 다니며 바꿔주었다. 그 후 모녀는 공포에서 벗어나 밝게 살게 되었다. “이 형사님은 우리가족들 일보실 때 늘 쉬는 날 다니셨죠. 밤늦게, 새벽에도 전화하는 새터민들이 많았어요. 그땐 그분의 도움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고마워 할 줄은 몰랐어요. 그분이 전혀 내색 않으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또한 그분 사모님께는 더 죄송해요. 사소한 일로 밤 늦게 심지어 새벽 3-4시에 주무시는 이 형사를 불러냈으니까요. 60여명을 나처럼 모두 돌보려니 정말 매일 우리들 집에 와 사셨죠. 싫은 기색한번 없었어요. 사모님께 꼭 미안하다는 말씀 전해주세요.” “간경화 치료 및 아이들에겐 학교입학 및 학용품까지 챙겨줘...” 굶주림에 지쳐 돈 벌러 중국 하얼빈 지하교회 등에 숨어지내던 김정희씨. 돈은 커녕 몸이 망가져 간경화 등 각종병만 얻었다. 치료를 위해서라도 남한으로 와야했다. 이 형사는 수차례 분당 차병원을 데리고 다니며 검진, 치료에 도움을 주고 당시 이형사 부인이 근무하던 대보한의원의 도움으로 침, 뜸, 부황 치료 및 한약을 6개월이상 무료로 복용하여 건강이 호전되어 지금은 부산에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다. 김 씨는 필자에게 전화로 조카 두명에게 책가방, 필기구, 실내화 등을 사주고 학교 입학시, 진학시 모두 아빠 역할을 했었다고...알고보니 모든 새터민 아이들에게 용돈 2-5만원을 수시로 주었다고 전했다) “중국적가족 초청 한국적 취득토록 도와...” 전미옥(36)씨 ⓒ (주)하나로일보 “미옥아 너도 할말이 많잖아, 얘기좀 하라우!” “맨 나중에 하려 했는데...저는 중국에 조선족 남편과 딸을 두고 왔어요. 이제는 이형사님 덕분에 가족이 모여 살게 됐어요. 또한 시부모와 친척들을 수소문 해 경남 거창까지 가서 만나게 해주었어요.“ 간경화로 힘들어 일을 못하니까 제게 알맞은 일자리도 소개해 주었어요. 그중 나이가 든 오미숙(55)씨는 아들(26)이 술만 먹으면 폭행하기도 하고 한번은 술친구들이 멀리 산속에 버려 이 형사가 찾아주었고 새벽 4시에 북조선으로 간다고 터미널에 가서 보내달라고 행패 부리는 것을 해결해 주었다고 말한다. “나뿐 아니라 6명이 남편과 결혼식을 못하고 사는게 불쌍해 결혼식과 경포대 신혼여행, 벌목공 출신 김철남씨가 홀로 죽었을 때는 장례식을 치루고 화장해 이천 공원 묘지에 안치하는 등 이틀밤을 새며 상주가 되어 고생했지요. 그 외에도 우리들이 신세진거 말하자면 밤새해도 모자란다우... “ “새벽에 전화가 오면 남편 깨우고 저는 밤을 새지요.” 새터민들의 방문에 놀라 눈이 동그래진 이경사 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새터민들이 거의 여자들이라 밤에 전화 올 때 짜증나신 적이 있으셨을텐데... “남편 성격을 알기에 짜증이나 질투한 적은 없어요. 남편은 잠이 오면 업어가도 모르는 분이라 내가 먼저깨워 누구에게 전화왔다고 흔들어 깨우지요.” -여자들이 밤마다 남편을 오라고 하면 누구나 질투가 날만도 하신데... “때로는 가관이 아닌 문자도 오고 지나친 방문 요구도 있지요. 하지만 남편을 신뢰해요” -자정이나 새벽 3-4시에도 많이 불렀다던데...전화를 꺼놓으시지 않는 이유는... “자다가 제가 먼저 깨어 바꿔주는데 저는 한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해 괴로워요. 그러나 전화를 꺼 놓으면 새터민들과의 진실한 교감이 되겠어요? 그들이 잘 적응할때까지는 누군가는 도와주어야지요. -남편이 언젠가 다시 새터민 담당이 된다면... “다시 잠 못 이루는 일은 있겠지만 이산가족 만나는 것처럼 반가울꺼예요.” 이 경사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의무경찰을 마치고 특채의 기회를 마다하고 공채를 거쳐 경찰에 입문, 처 고향인 이천에서 91년 7월 13일부터 근무해 이천이 제 2 고향이다. 아내는 호프집에서 우연히 만났고 둘 다 주당이다. 한창때 소주 5병을 나눠 마셨단다. 평생 부부싸움 한번 해 본적 없고 두 아들(중3,초2)에게도 친 형처럼 자상한 아빠라고 아내가 자랑한다. 장인이 7년간 중풍으로 고생할 때 원주 병원에 수시로 모시고 다녔고 위독했던 20일은 매일 가서 간병을 했다고 아내가 말한다. 근무를 끝내고 꽃집에 온 이 경사를 만났다. ⓒ (주)하나로일보-경찰의 날에 새터민들이 인사를 왔다던데... “그 당시는 새터민들이 처음 남한에 왔을 때라 누구라도 그렇게 해주었을꺼예요. 지금은 잘들 살아주고 있어 제가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데...” -보안계 근무(4년) 끝나고 헤어질 때 이 형사가 먼저 울어 울음바다가 되었다던데. “새터민들이 송별식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1개월간은 정들었던 이들과 헤어져 힘이 들었었다. 부인과 새터민 문제로 다툰 적은... “처음엔 잔소리 몇 번 한 적이 있지만 그들과 가슴으로 교감을 나누어야 진정한 직무 아니냐고 말한 후 모두 이해하고 새벽에 쓸데없는 전화인줄 알면서도 나를 깨워 바꿔주는 적극 협조자가 되었다.” -새벽에 쓸 데 없는 전화, 예를 든다면? (이 질문에 이 형사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내가 어느집을 다녀간 사실을 알게 된 어느 새터민은 새벽에 분을 못 이겨 ‘왜 옆집엔 다녀갔으면서 내 집엔 안들렸는가? 나와 대상(상대)안하겠는가? 설명해 보라!’라는 전화도 있었다. 새벽 3시경 그 전화를 바꿔준 아내는 밤을 꼬박 새웠다. 그래도 화는 내지 않았다.” -새터민 담당 시 이 형사를 이해하고 응원한 분들이 있다면... “참 많은 분들이 도와주었다. 당시 유동혁 과장과 유용준 계장님은 ‘이 형사는 새터민 담당이 천직이니 전적으로 전념해라’라고 응원해주어 큰 힘이 됐고 구만리 임효기,형상혁 회장,증포동 박정화씨, 바른병원 분들이 새터민들의 후원자가 기꺼이 되주었다. -새터민들을 위해 하고픈 말이 있는지... “새터민들은 북에서 굶주리다 중국으로 탈출하여 노예처럼 학대받던 내 형제들이다. 남한으로 오기까지 10여년의 방랑기간 중 병들어 남쪽으로 온 내 형제들이다. 이곳에 오면 그간 참았던 정신적, 신체적으로 각종 병이 고개를 들어 상당기간 회복 프로그램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건이 안되어 그들은 바로 병든 몸으로 생업에 뛰어든다. 그들이 게으른 것이 아니고 힘이부치는 경우가 많다. 일방적으로 편견을 갖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들이 정착을 못하면 결국 국력의 손실이 된다. 따뜻한 보살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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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07
  • 새터민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아버지같은경찰이성철
    새터민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아버지같은 경찰 “우리들에겐 부모, 아이들에게는 친아빠 같았어요”이 성철 경사 / 이천경찰서 창전 지구대 2010년 10월 25일(월) 18:24 [(주)하나로일보] “내 자녀들이 한국에서 정착한 것은 모두 그분 덕분...” “경찰의 날이 됐는데 그분 생각나네요. 우리 가족에겐 그분이 전부였는데... 타 지역에 정착한 새터민들이 우리들을 많이 부러워 했어요.” 경찰의 날인 21일 새터민들이 저녁에 웅성웅성 아파트 옆 공원에 모이기 시작한다.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이경사의 은혜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약속을 했기때문. 저녁 6시 30분에 모인 새터민들은 이 형사 부인의 사업장인 꽃가게로 향했다. 필자는 함께 동행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2006년 조 명자(45)씨는 18세된 아들과 함께 북을 탈출하여 이천으로 왔다. 당시 조씨는 당시 하나원에서 가지고 온 밥그릇 몇 개가 전부. 넋을 잃고 있을 당시 보안계에 근무하던 이 형사가 찾아와 위로하며 마땅히 밥먹기가 어려웠던 조 씨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낯설지만 저를 남한에 있던 가족이라 생각하세요.” 개구쟁이 소년처럼 밝게 웃으며 다가온 이 형사. 그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었다. ⓒ (주)하나로일보북에서 노래, 가무에 능통해 인정받는 예능인이었던 조씨는 남한에서 설자리가 없었다. 이 형사는 그녀를 정수기 회사에 취업시켜 주었다. 18세의 아들은 학업 수준을 고려, 중학교에 2~3살 어린 후배들과 함께 다니도록 해주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소개도 시켰다. “학교에서는 이 형사가 아빠인줄 알아요.” 그러나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들은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학교를 빠지고 엄마에게 반항했다 아들은 엄마 말은 안 들어도 이 형사말은 잘 따랐다. 대안학교를 수소문한 끝에 천안에 있는 대안학교에 입학시켰다. 현재 그 아들은 인천 공장에 취업 어엿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뒤늦게 탈북한 딸은 북에서 폭력을 일삼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나타나 괴롭힐까 늘 두려움에 떨었다. 이 형사는 모녀의 이름을 법원에 다니며 바꿔주었다. 그 후 모녀는 공포에서 벗어나 밝게 살게 되었다. “이 형사님은 우리가족들 일보실 때 늘 쉬는 날 다니셨죠. 밤늦게, 새벽에도 전화하는 새터민들이 많았어요. 그땐 그분의 도움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고마워 할 줄은 몰랐어요. 그분이 전혀 내색 않으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또한 그분 사모님께는 더 죄송해요. 사소한 일로 밤 늦게 심지어 새벽 3-4시에 주무시는 이 형사를 불러냈으니까요. 60여명을 나처럼 모두 돌보려니 정말 매일 우리들 집에 와 사셨죠. 싫은 기색한번 없었어요. 사모님께 꼭 미안하다는 말씀 전해주세요.” “간경화 치료 및 아이들에겐 학교입학 및 학용품까지 챙겨줘...” 굶주림에 지쳐 돈 벌러 중국 하얼빈 지하교회 등에 숨어지내던 김정희씨. 돈은 커녕 몸이 망가져 간경화 등 각종병만 얻었다. 치료를 위해서라도 남한으로 와야했다. 이 형사는 수차례 분당 차병원을 데리고 다니며 검진, 치료에 도움을 주고 당시 이형사 부인이 근무하던 대보한의원의 도움으로 침, 뜸, 부황 치료 및 한약을 6개월이상 무료로 복용하여 건강이 호전되어 지금은 부산에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다. 김 씨는 필자에게 전화로 조카 두명에게 책가방, 필기구, 실내화 등을 사주고 학교 입학시, 진학시 모두 아빠 역할을 했었다고...알고보니 모든 새터민 아이들에게 용돈 2-5만원을 수시로 주었다고 전했다) “중국적가족 초청 한국적 취득토록 도와...” 전미옥(36)씨 ⓒ (주)하나로일보 “미옥아 너도 할말이 많잖아, 얘기좀 하라우!” “맨 나중에 하려 했는데...저는 중국에 조선족 남편과 딸을 두고 왔어요. 이제는 이형사님 덕분에 가족이 모여 살게 됐어요. 또한 시부모와 친척들을 수소문 해 경남 거창까지 가서 만나게 해주었어요.“ 간경화로 힘들어 일을 못하니까 제게 알맞은 일자리도 소개해 주었어요. 그중 나이가 든 오미숙(55)씨는 아들(26)이 술만 먹으면 폭행하기도 하고 한번은 술친구들이 멀리 산속에 버려 이 형사가 찾아주었고 새벽 4시에 북조선으로 간다고 터미널에 가서 보내달라고 행패 부리는 것을 해결해 주었다고 말한다. “나뿐 아니라 6명이 남편과 결혼식을 못하고 사는게 불쌍해 결혼식과 경포대 신혼여행, 벌목공 출신 김철남씨가 홀로 죽었을 때는 장례식을 치루고 화장해 이천 공원 묘지에 안치하는 등 이틀밤을 새며 상주가 되어 고생했지요. 그 외에도 우리들이 신세진거 말하자면 밤새해도 모자란다우... “ “새벽에 전화가 오면 남편 깨우고 저는 밤을 새지요.” 새터민들의 방문에 놀라 눈이 동그래진 이경사 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새터민들이 거의 여자들이라 밤에 전화 올 때 짜증나신 적이 있으셨을텐데... “남편 성격을 알기에 짜증이나 질투한 적은 없어요. 남편은 잠이 오면 업어가도 모르는 분이라 내가 먼저깨워 누구에게 전화왔다고 흔들어 깨우지요.” -여자들이 밤마다 남편을 오라고 하면 누구나 질투가 날만도 하신데... “때로는 가관이 아닌 문자도 오고 지나친 방문 요구도 있지요. 하지만 남편을 신뢰해요” -자정이나 새벽 3-4시에도 많이 불렀다던데...전화를 꺼놓으시지 않는 이유는... “자다가 제가 먼저 깨어 바꿔주는데 저는 한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해 괴로워요. 그러나 전화를 꺼 놓으면 새터민들과의 진실한 교감이 되겠어요? 그들이 잘 적응할때까지는 누군가는 도와주어야지요. -남편이 언젠가 다시 새터민 담당이 된다면... “다시 잠 못 이루는 일은 있겠지만 이산가족 만나는 것처럼 반가울꺼예요.” 이 경사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의무경찰을 마치고 특채의 기회를 마다하고 공채를 거쳐 경찰에 입문, 처 고향인 이천에서 91년 7월 13일부터 근무해 이천이 제 2 고향이다. 아내는 호프집에서 우연히 만났고 둘 다 주당이다. 한창때 소주 5병을 나눠 마셨단다. 평생 부부싸움 한번 해 본적 없고 두 아들(중3,초2)에게도 친 형처럼 자상한 아빠라고 아내가 자랑한다. 장인이 7년간 중풍으로 고생할 때 원주 병원에 수시로 모시고 다녔고 위독했던 20일은 매일 가서 간병을 했다고 아내가 말한다. 근무를 끝내고 꽃집에 온 이 경사를 만났다. ⓒ (주)하나로일보-경찰의 날에 새터민들이 인사를 왔다던데... “그 당시는 새터민들이 처음 남한에 왔을 때라 누구라도 그렇게 해주었을꺼예요. 지금은 잘들 살아주고 있어 제가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데...” -보안계 근무(4년) 끝나고 헤어질 때 이 형사가 먼저 울어 울음바다가 되었다던데. “새터민들이 송별식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1개월간은 정들었던 이들과 헤어져 힘이 들었었다. 부인과 새터민 문제로 다툰 적은... “처음엔 잔소리 몇 번 한 적이 있지만 그들과 가슴으로 교감을 나누어야 진정한 직무 아니냐고 말한 후 모두 이해하고 새벽에 쓸데없는 전화인줄 알면서도 나를 깨워 바꿔주는 적극 협조자가 되었다.” -새벽에 쓸 데 없는 전화, 예를 든다면? (이 질문에 이 형사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내가 어느집을 다녀간 사실을 알게 된 어느 새터민은 새벽에 분을 못 이겨 ‘왜 옆집엔 다녀갔으면서 내 집엔 안들렸는가? 나와 대상(상대)안하겠는가? 설명해 보라!’라는 전화도 있었다. 새벽 3시경 그 전화를 바꿔준 아내는 밤을 꼬박 새웠다. 그래도 화는 내지 않았다.” -새터민 담당 시 이 형사를 이해하고 응원한 분들이 있다면... “참 많은 분들이 도와주었다. 당시 유동혁 과장과 유용준 계장님은 ‘이 형사는 새터민 담당이 천직이니 전적으로 전념해라’라고 응원해주어 큰 힘이 됐고 구만리 임효기,형상혁 회장,증포동 박정화씨, 바른병원 분들이 새터민들의 후원자가 기꺼이 되주었다. -새터민들을 위해 하고픈 말이 있는지... “새터민들은 북에서 굶주리다 중국으로 탈출하여 노예처럼 학대받던 내 형제들이다. 남한으로 오기까지 10여년의 방랑기간 중 병들어 남쪽으로 온 내 형제들이다. 이곳에 오면 그간 참았던 정신적, 신체적으로 각종 병이 고개를 들어 상당기간 회복 프로그램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건이 안되어 그들은 바로 병든 몸으로 생업에 뛰어든다. 그들이 게으른 것이 아니고 힘이부치는 경우가 많다. 일방적으로 편견을 갖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들이 정착을 못하면 결국 국력의 손실이 된다. 따뜻한 보살핌을 바란다.“
    • 초대석
    2011-06-07
  • 이천농협조합장 이태용
    “농협 존재이유는 조합원 소득향상 권위향상, 권익보호에 있다”“농협28년의 전문 경영인 조합장이자 고향 지킴이”지난해 당기순이익27억4천만원 경영 성과 거두어이태용 이천농협조합장 대담:정봉영 발행인본지에서는 금주의 초대석을 기획시리즈로 연재 하고 있는 바 본지 하나로신문 발행인 정봉영과 이태용 이천농협 조합장의 대담을 통해 이조합장에 대한 지도자 역량과 자질을 독자들과 시민들에게 올바른 평가와 검증과 사회봉사자로 정평있는 현 이태용이천농협조합장에 대한 견해와 활동상과 식견 이사회와 이천농협의 미래와 발전 방향 문제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듣고저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1, 주민들과 하나로신문 독자분들을 위해서 간단한 개인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원한 내고향이자 안식처인 이천에서 출생 이천초49회를 시작으로 이천중학교 이천제일고 동원대를 졸업하였고 사회의 첫걸음으로 1973년 농협에 투신하면서 28년간 농협일선을 두루 걸치면서 근무를 하였으며 퇴직과 더불어 2001년 이천농협 11대 조합장에 출마 하여 당선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2선과 3선 이천농협조합장직에 재임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기도농협운영협의회 대의원, 마트선도조합협의회 부회장, 주유소전국협의회 감사, 가지생산협의회이사, 이천쌀운영본부 이사, 농협문화복지재단이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농정발전기여 농수산부장관상, 농산물 유통개선상, 농협발전기여 창립기념공로, 농협발전 기여 공적상, 자랑스런 경기농협 조합장, 재향군인 발전, 농촌사랑확산 1사1촌, 조합원 복지향상 농민봉사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 현 이천농협조합장으로 재임하고 있는데 간단하게 이천농협을 소개한다면? 이천농협은 1964년도에 설립인가를 받고 영업을 시작하여 꾸준한 성장을 하면서 명실공히 이천을 대표 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단위 농협으로 성장 하였다. 현재 3천5백여명의 조합원들과 창전동458-4 본점 종합청사와 하나로클럽을 비롯해 창전동지점 관고지점 설봉지점 부악지점 백사지점 갈산지점 6개지점망과 미곡종합처리장 주유소를 겸비한 농민을 위한 농협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3, 지난2010년 결산을 토대로 경영 성과를 소개한다면? 조합원들의 많은 성원과 전직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한 결과 2010년 결산을 토대로 예수금 3,318억원, 대출금 3,101억원 실적을 도출하며 제반충당금 183%를 적립하면서 27억4천만원의 당기 순이익을 달성하여, 지난 한해 경영부문 우수상, 판매사업 500억 달성탑 수상, 상호금융 대출 3,000억을 달성하며 지역과 조합원의 상생발전에 온 힘 기울이고 있다. 4, 이천농협 조합장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농협기능과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며 어떠한 조합원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말해 달라? 농협은 농민 조합원들을 위한 실익사업에 지원을 강화해 조합원들의 안정적 경영환경에 기여하기 위해 많은 노력 지원을 하여 경쟁력 있는 과학영농을 선도하며 농민을 위한 농협으로서 역할과 기능을 다 해야만 한다. 우리 이천농협은 지원 사업 부문으로 전 조합원 영농자재지원, 친환경농업을 위한 숙원시설 지원, 육묘생산, 병충해 방제 등 고품질 쌀 생산과 일손부족 노동력 지원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함께 조합원 자녀 학자금 지원, 조합원 건강검진 실시, 전 조합원 농업인 안전공제 가입 등 복지사업에도 많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에는 구제역 여파로 인한 소, 돼지고기 소비부진으로 상추 판매가격 동반하락으로 농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소상인을 위한 직거래 장터를 개장,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지역주민과의 상생을 위한 문화센터시설 23개 과정을 운영, 연간 5800여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5,이천농협 3선조합장으로서 역점 사업계획을 밝혀 달라? 각지점과 사무소별 책임경영체제를 정착시키고 지역경제 밀착형 one stop 사업장을 만들계획과 함께 그동안 본점 마트가 각종 규제에 묶여 제 역할 수행을 하지 못했으나 작년 12월 3일자로 기존 제 2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 주거지역으로 용도가 변경, 금년도에는 본점 건물을 증축해 금융과 생활용품, 식자재용품, 영농자재 등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종합편익시설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특히 우리 농협의 불요불급한 고정자산을 매각 및 매입하도록 추진하고 있으며 협소한 주차장으로 고객민원이 많았던 갈산지점 이전도 계획 중에 있으며 지속적으로 고객만족 서비스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고마운 농협으로 거듭나 가장 가까운 이웃과 동반자가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과 3천5백여명의 조합원들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면서 진정한 조합원들을 위한 이천농협을 건설할 계획이다. 6, 구제역 발생시 이천농협 전직원들과 함께 많은 노력과 물질적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는데 구체적으로 소개를 한다면? 무엇보다 이천시민들 모두가 축산농가들의 구제역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많은 헌신적 노력을 하였으나 결과는 초라 할 정도로 많은 피해가 발생되어 무엇 보다 가슴이 아프고 피해를 당한 축산 농가들이 하루 빨리 경영 정상화를 이뤄 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구제역이 발생되면서 이천농협은 전 직원이 조합원 밀집지역인 백사면을 중심으로 축사 방역 활동을 하였고 백사 초소를 1일7명씩 조를 구성하여 71일간 순번제로 구제역 확산 방지에 동참하였다. 7, 조합원들의 권익 보호와 특별한 혜택 장려책이 있다면 밝혀 달라? 경로당62개에 난방유를 지속적 공급을 해 주고 있으며 지난 4월4일 본점 문화센터에서 조합원자녀 학자금으로 98명의 대학생에게 1백만원씩 장학금을 전달하였으며 퇴임 영농회장 부녀회장 감사패 전달하였으며 하나로개점6주년 경품 대 잔치를 실시 그동안 많은 성원과 협조를 하여 준 조합원과 마트이용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혜택을 나눠 줄 수 있는 기회를 부여 하였다. 8, 농협이 과거 이천쌀에 대한 선호도로 인하여 효자노릇을 하였는데 현실에서는 반대로 농협의 경영 악화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쌀에 대한 특별한 판매정책과 계획이 있다면 밝혀달라? 소비자와 생산 공급자와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와 믿음 신용이 우선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동안 이천쌀이라는 브랜드와 명성 인지도에 의존하여 구태의연하게 판매하는 과거 행태로 인해 사실상 효자 노릇을 하던 쌀이 경영 악화의 원인으로 둔갑 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본다 이는 원인과 이유를 하루빨리 파악하여 과감하게 탈피하여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 한다. 그러기에 이천 농협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명성과 브랜드에 걸 맞는 품질 고급화가 급선무라는 점에 착안하여 미곡종합처리장의 첨단 시설화와 저장 시설등을 현대화하였으며 고품질의 상품 생산 공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9, 하나로신문 독자와 조합원 시민들에게 당부 및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농협의 존재이유는 농업인 조합원의 소득향상과 권위향상, 권익보호에 있습니다. 농협이 건실해야만 조합원과 지역사회에 더 많은 실익사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여건 속에 있지만 조합원님과 약속한 사항들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 신뢰받는 자랑스런 농협, 경쟁력있는 농협을 만드는데 저희 임직원 일동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0,본인의 생활신조와 좌우명 소개 한다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생활신조로 삼고 항상 매사에 주워진 여건과 환경 속에 만족을 다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며 스스로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만족하며 생활하면서 오로지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좌우명으로는 화합하는 마음으로 생활하자
    • 초대석
    2011-06-02
  • 이천농협조합장 이태용
    “농협 존재이유는 조합원 소득향상 권위향상, 권익보호에 있다”“농협28년의 전문 경영인 조합장이자 고향 지킴이”지난해 당기순이익27억4천만원 경영 성과 거두어이태용 이천농협조합장 대담:정봉영 발행인본지에서는 금주의 초대석을 기획시리즈로 연재 하고 있는 바 본지 하나로신문 발행인 정봉영과 이태용 이천농협 조합장의 대담을 통해 이조합장에 대한 지도자 역량과 자질을 독자들과 시민들에게 올바른 평가와 검증과 사회봉사자로 정평있는 현 이태용이천농협조합장에 대한 견해와 활동상과 식견 이사회와 이천농협의 미래와 발전 방향 문제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듣고저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1, 주민들과 하나로신문 독자분들을 위해서 간단한 개인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원한 내고향이자 안식처인 이천에서 출생 이천초49회를 시작으로 이천중학교 이천제일고 동원대를 졸업하였고 사회의 첫걸음으로 1973년 농협에 투신하면서 28년간 농협일선을 두루 걸치면서 근무를 하였으며 퇴직과 더불어 2001년 이천농협 11대 조합장에 출마 하여 당선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2선과 3선 이천농협조합장직에 재임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기도농협운영협의회 대의원, 마트선도조합협의회 부회장, 주유소전국협의회 감사, 가지생산협의회이사, 이천쌀운영본부 이사, 농협문화복지재단이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농정발전기여 농수산부장관상, 농산물 유통개선상, 농협발전기여 창립기념공로, 농협발전 기여 공적상, 자랑스런 경기농협 조합장, 재향군인 발전, 농촌사랑확산 1사1촌, 조합원 복지향상 농민봉사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 현 이천농협조합장으로 재임하고 있는데 간단하게 이천농협을 소개한다면? 이천농협은 1964년도에 설립인가를 받고 영업을 시작하여 꾸준한 성장을 하면서 명실공히 이천을 대표 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단위 농협으로 성장 하였다. 현재 3천5백여명의 조합원들과 창전동458-4 본점 종합청사와 하나로클럽을 비롯해 창전동지점 관고지점 설봉지점 부악지점 백사지점 갈산지점 6개지점망과 미곡종합처리장 주유소를 겸비한 농민을 위한 농협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3, 지난2010년 결산을 토대로 경영 성과를 소개한다면? 조합원들의 많은 성원과 전직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한 결과 2010년 결산을 토대로 예수금 3,318억원, 대출금 3,101억원 실적을 도출하며 제반충당금 183%를 적립하면서 27억4천만원의 당기 순이익을 달성하여, 지난 한해 경영부문 우수상, 판매사업 500억 달성탑 수상, 상호금융 대출 3,000억을 달성하며 지역과 조합원의 상생발전에 온 힘 기울이고 있다. 4, 이천농협 조합장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농협기능과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며 어떠한 조합원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말해 달라? 농협은 농민 조합원들을 위한 실익사업에 지원을 강화해 조합원들의 안정적 경영환경에 기여하기 위해 많은 노력 지원을 하여 경쟁력 있는 과학영농을 선도하며 농민을 위한 농협으로서 역할과 기능을 다 해야만 한다. 우리 이천농협은 지원 사업 부문으로 전 조합원 영농자재지원, 친환경농업을 위한 숙원시설 지원, 육묘생산, 병충해 방제 등 고품질 쌀 생산과 일손부족 노동력 지원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함께 조합원 자녀 학자금 지원, 조합원 건강검진 실시, 전 조합원 농업인 안전공제 가입 등 복지사업에도 많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에는 구제역 여파로 인한 소, 돼지고기 소비부진으로 상추 판매가격 동반하락으로 농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소상인을 위한 직거래 장터를 개장,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지역주민과의 상생을 위한 문화센터시설 23개 과정을 운영, 연간 5800여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5,이천농협 3선조합장으로서 역점 사업계획을 밝혀 달라? 각지점과 사무소별 책임경영체제를 정착시키고 지역경제 밀착형 one stop 사업장을 만들계획과 함께 그동안 본점 마트가 각종 규제에 묶여 제 역할 수행을 하지 못했으나 작년 12월 3일자로 기존 제 2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 주거지역으로 용도가 변경, 금년도에는 본점 건물을 증축해 금융과 생활용품, 식자재용품, 영농자재 등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종합편익시설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특히 우리 농협의 불요불급한 고정자산을 매각 및 매입하도록 추진하고 있으며 협소한 주차장으로 고객민원이 많았던 갈산지점 이전도 계획 중에 있으며 지속적으로 고객만족 서비스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고마운 농협으로 거듭나 가장 가까운 이웃과 동반자가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과 3천5백여명의 조합원들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면서 진정한 조합원들을 위한 이천농협을 건설할 계획이다. 6, 구제역 발생시 이천농협 전직원들과 함께 많은 노력과 물질적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는데 구체적으로 소개를 한다면? 무엇보다 이천시민들 모두가 축산농가들의 구제역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많은 헌신적 노력을 하였으나 결과는 초라 할 정도로 많은 피해가 발생되어 무엇 보다 가슴이 아프고 피해를 당한 축산 농가들이 하루 빨리 경영 정상화를 이뤄 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구제역이 발생되면서 이천농협은 전 직원이 조합원 밀집지역인 백사면을 중심으로 축사 방역 활동을 하였고 백사 초소를 1일7명씩 조를 구성하여 71일간 순번제로 구제역 확산 방지에 동참하였다. 7, 조합원들의 권익 보호와 특별한 혜택 장려책이 있다면 밝혀 달라? 경로당62개에 난방유를 지속적 공급을 해 주고 있으며 지난 4월4일 본점 문화센터에서 조합원자녀 학자금으로 98명의 대학생에게 1백만원씩 장학금을 전달하였으며 퇴임 영농회장 부녀회장 감사패 전달하였으며 하나로개점6주년 경품 대 잔치를 실시 그동안 많은 성원과 협조를 하여 준 조합원과 마트이용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혜택을 나눠 줄 수 있는 기회를 부여 하였다. 8, 농협이 과거 이천쌀에 대한 선호도로 인하여 효자노릇을 하였는데 현실에서는 반대로 농협의 경영 악화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쌀에 대한 특별한 판매정책과 계획이 있다면 밝혀달라? 소비자와 생산 공급자와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와 믿음 신용이 우선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동안 이천쌀이라는 브랜드와 명성 인지도에 의존하여 구태의연하게 판매하는 과거 행태로 인해 사실상 효자 노릇을 하던 쌀이 경영 악화의 원인으로 둔갑 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본다 이는 원인과 이유를 하루빨리 파악하여 과감하게 탈피하여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 한다. 그러기에 이천 농협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명성과 브랜드에 걸 맞는 품질 고급화가 급선무라는 점에 착안하여 미곡종합처리장의 첨단 시설화와 저장 시설등을 현대화하였으며 고품질의 상품 생산 공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9, 하나로신문 독자와 조합원 시민들에게 당부 및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농협의 존재이유는 농업인 조합원의 소득향상과 권위향상, 권익보호에 있습니다. 농협이 건실해야만 조합원과 지역사회에 더 많은 실익사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여건 속에 있지만 조합원님과 약속한 사항들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 신뢰받는 자랑스런 농협, 경쟁력있는 농협을 만드는데 저희 임직원 일동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0,본인의 생활신조와 좌우명 소개 한다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생활신조로 삼고 항상 매사에 주워진 여건과 환경 속에 만족을 다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며 스스로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만족하며 생활하면서 오로지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좌우명으로는 화합하는 마음으로 생활하자
    • 초대석
    201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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