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7-29(목)
 

올해 55세 된 남성으로 어려서부터 뇌병변 장애와 지체장애 가진  염경섭

생활 나이 고려한 특수교육대상 월반 처리돼 2 학년 거쳐 바로 6학년 됐다

나는 근 10여년간 장애인활동보조를 천직 으로 알고 일을 하면서 많은 보람과 삶의 의 미를 깨닫게 된 것을 추억하며 감사하는 마 음으로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장애인활동보조교육을 받고 처음으로 만난 장애인은 올해 55세가 된 남성으로 어 려서부터 뇌병변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그 의 이름은 염경섭이다.

경섭씨는 유아 나이 정도의 지능을 가졌고 오른쪽 팔, 다리가 마 비가 돼 왼쪽 팔과 다리를 사용해 식사도 하 고 보조기구를 끌고 집안에서 천천히 이동도 하지만 급할 때는 기어 다니는 것이 생활화 돼있는 어른이다.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은 엄 마를 음마- 으, 아, 정도의 외마디를 소리 낼 뿐이다. 혼자 물을 컵에 따라서 마시는 일조 차 할 수 없으니 목마를 때 물 달라고 ‘물’ 소 리를 내보라고 거듭 반복해 훈련한 결과 ‘무 울’ 소리를 내는 것이 그나마 발전된 모습이 다.

그리고 시력이 좋지 않아서 사물을 알아 보기는 하지만 글씨를 보고 따라 쓰는 일이 나 집중해 티비 보는 것조차 여의치가 않다. 내가 가는 날이면 그는 문 앞에 나와 앉아 항상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으~ 하면서 고개 를 꾸뻑하면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활짝 웃으며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잘 있 었어요?” 나를 이처럼 반기는 경섭씨로 인해 나는 이내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 경섭씨를 만났을 때 경험이 없는 내가 어떻게 활동보조를 해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경섭씨 어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시고 70대 중 반인 경섭씨 아버님과 경섭씨, 남자만 둘이 사 는 가정에서 절실히 필요한 손길이라고 하는 것은 음식 하는 일과 청소하는 일등 집안 살림 에 관한 것들임은 너무도 당연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근 이십년을 주부로 서 살림을 해 왔기에 일상으로 할 수 있는 일 이겠거니 하고 큰 부담은 갖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살림하는 일 외에 정작 활동 보조 대상자인 경섭씨를 위해서 내가 무엇 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경섭씨 는 초등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는 문맹의 상 태이니 가장 먼저 글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또한 숫자라도 익히게 해서 생활 의 편리함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또 왼 쪽 팔과 다리는 그나마 움직일 수 있으니 목 발이라도 짚고 걸어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집 안에서 기어만 다니는 경섭씨를 보면서 걷기 훈련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과 의 욕은 많은데 어떻게 하나씩 실천해 나갈 것 인지 마음이 답답해 왔다. 처음 활동보조 일을 시작할 때에는 일주일 에 세 번, 매번 주어진 시간은 4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집에 들어서자마자 청소를 시작해서 점심식사 준비하기까지 잠깐 짬이 나면 재활기구를 이용해 걷는 연습을 시키고 이내 점심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경섭씨는 주방에 앉아 나를 바라 보며 숫자 공부를 한다. 기본적인 숫자를 써 주고 따라 써보라고 준비해 놓고 식사준비하 면서 틈틈이 봐 주었다. 그렇게 처음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숫자 도 매일 같은 것만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생각나 는 것이 있었다.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종종 정규교육 과정을 뒤늦게 이수하고 자랑 스럽게 졸업하시는 모습을 방송에서 본 것 이 생각이 난 것이다.

경섭씨도 나이는 많지 만 초등교육부터 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어 디에 문의를 해야 하나, 먼저 여주시청에 전 화를 해서 물었다. ‘나이가 많은 장애인인데 초등학교 교육을 받을 길이 없겠느냐’고 ……. 그랬더니 관할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그런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불가능하지 않 겠느냐고 부정적인 답을 한다. 그리고 더 알 아보고 싶으면 교육청에 문의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여주교육청에 전화를 한 순간 상냥한 여자 분이 친절하게 상담에 응해 주셨다. 대 답은 뜻밖이었다.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다. 참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해 주어서 얼마 나 기분이 좋았는지 내가 큰일이라도 이루어 낸 것처럼 그 순간 뿌듯한 마음과 함께 내 자 신이 자랑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그 분은 경섭 씨에 대한 신상에 대해 간단하게 묻고 몇 가 지 서류와 절차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정작 보호자의 동의 가 있어야 하는데 경섭씨 아버님은 “그 나이 에 무슨 공부냐”고 난색을 표하시며 반대하 시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더라도 한글 정도만 깨쳐도 얼마나 좋겠느냐”고 “기회가 있을 때 무엇 하나라도 배우면 좋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는 대로 아버님을 설득하기에 바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으니 재활이 나 다른 교육적인 것들은 전문 선생님께 맡 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사정을 하니 아버님 은 마지못해 허락해 주셨다. 

경섭씨는 집에서 가까운 문장초등학교 1학 년에 입학했다. 그런데 경섭씨는 생활과 나이 를 고려한 특수교육대상으로 월반 처리돼 2 학년 과정을 거쳐 바로 6학년이 됐고 그 이 듬해에 강천중학교로 이미 배정 됐다는 것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됐다. 그때에도 경 섭씨 아버님은 ‘더 이상 도움도 안 되는 학교 수업을 계속할 필요가 있겠냐며 힘이 드니 진학을 안 시키시겠노라’ 하시는 걸 간절히 거듭 설득해 중학교에 진학했고 현재 강천고 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특수학급으로 분리해 선생님이 가정을 방문해 교육하는 순회교육 을 받고 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직 선생 님 오실 시간이 멀었다는 말에도 아랑곳 하 지 않고 문 앞에 나와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 는 경섭씨를 보며 진정 그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장애인활동보조의 일을 하면서 새삼 우리나라도 장애인에 대한 복지사업이 정말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감탄하게 됐다.

장애 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아진 것도 반 가운 일이지만 국가적인 정책으로 장애인에 대한 복지 사업이 많이 추진되고 있음에 정 말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경섭씨가 졸 업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사진촬영 하는 것을 보니 참 많은 시간을 우리가 함께했다는 생각 이 들었다. 함께했던 시간들을 뒤돌아보니 경 섭씨는 처음 나와 만났을 때와는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져있음을 깨닫게 된다. 표정이 밝아 진 것은 물론이고 매사 자신감 있게 의사 표현 과 감정 표현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경섭씨 의 모습을 생각하며 혼자 웃음 짓곤 한다. 경섭씨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 지고 나를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데 내가 청 소기를 돌릴 때면 가만히 지켜보다가 청소가 끝나면 전기코드를 뽑아 정리하는 일을 꼭 자기 손으로 해 준다. 그리고 잘했다고 칭찬 해 주면 박수를 치며 아주 좋아한다. 주방에 서 내가 식사 준비를 할 때나 설거지를 할 때 에도 옆에서 항상 거들어주는데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설거지를 하면 고무장갑을 가리키 며 끼고 할 것을 권한다.

그릇 정리를 하고 있 으면 제자리에 있지 않은 물건에 대해서 손 으로 가리키며 제 위치로 놓아야 하지 않느 냐고 지적해 준다. 그리고 음식을 만들 때에 그는 싱크대를 붙들 고 나와 나란히 서서 모든 것을 참견하고 싶어 한 다. 음식의 간을 보는 일은 경섭씨 몫이다. 그런데 “맛이 어때요?” 물으면 무조건 으~ 하며 고개를 늘 끄덕이기에 음식의 맛을 조절하는 일에는 크 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음식의 맛을 보는 경섭씨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 내 마음도 즐겁다. 경섭씨 는 내가 만든 음식 중에 특히 계란말이를 좋아한 다.

그래서 나는 식사준비를 위해 자주 계란말이 를 준비하는데 경섭씨는 어떤 양념이 들어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계란을 풀어놓고 “무엇 을 넣어야 하느냐”고 물으면 소금을 손으로 가리 킨다. 난 경섭씨 아버님께 우스갯소리로 “이제 경 섭씨가 요리를 다 배웠으니 앞으로는 저도 앉아 서 먹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하며 함께 웃은 기 억이 난다. 처음에 내가 왔을 때에 말없이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던 그가 이 제는 가정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섭씨에게 찾아온 큰 변 화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경섭씨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있다. 

누군가와 통화하는 일이다. 언젠가 집에서 남 편이 전화를 해서 경섭씨 앞에서 통화한 일 이 있었는데 경섭씨가 옆에 앉아 계속 주시 하는 모습이 꼭 통화를 하고 싶어 하는 듯 보 였다. 그래서 남편에게 경섭씨를 바꾸어 주 겠노라하고 통화를 하게 해 주었는데 뜻밖에 경섭씨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지만 ‘으--’ 하면서 고개를 꾸 뻑하며 인사로 시작해서 마지막 ‘으--’ “안녕 히 계세요” 인사까지 통화 시간은 그리 짧지 만은 않았다.

내내 남편의 얘기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하면서 통화하는 경섭씨 모습이 참 즐거워 보였다. 그 날 이후로 내 핸드폰에 벨이 울리 기만 하면 경섭씨는 두 눈이 동그래져서 혹 시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며 벌써 손이 전화기 쪽으로 올라와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외로움이 있었는지 사람을 얼마나 많이 그리워하는지 알 수 있 는 대목인 것 같아 이 얘기를 하면서도 가슴 이 찡해 온다. 난 남편에게 당부한다. 재미있 는 이야기 많이 준비해 놓았다가 우리 경섭 씨랑 통화할 때 들려주라고……. 그리고 경섭씨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늘 집안에서만 혼자 생활하는 경섭씨에게 는 외출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 생활이 너 무도 그리운 것이었다. 학교의 현장체험학습 에 일 년에 두어 번씩 경섭씨도 함께할 기회 가 있었는데 매일 손꼽아 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활동하는 그날을 기다린다. 장난삼아 ‘현장학습을 못 가게 됐노라’ 하면 울고불고 난리를 핀다. 불편한 경섭씨와 함께 외출하 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가끔은 자동차에 태 워 드라이브라도 해 주면 뛸 듯이 기뻐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든 해 주고 싶 어서 여러 가지 궁리를 해 보았다. 혼자서 전 동휠체어라도 타고 다닐 수 있으면 자유로이 외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전문기관에 상담도 해 보았지만 스스로 기계를 판단하고 조작할 능력이 부족해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히려 잘못해 위험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 으므로 강행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무 척 안타까웠다. 경섭씨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미처 개발되지 않은 잠 재된 능력이 어릴 적부터 조기교육을 받으며 일깨워졌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 고등교육을 받고 있다고는 하 지만 내가 처음에 목표했던 한글이라도 터득 하고 숫자라도 활용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이루기에는 초기교육의 시기가 너무 늦은 탓 에 어렵다는 전문가의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기보 다는 우선 신체적인 재활훈련을 통해 건강한 삶, 원하는 곳으로 스스로 다닐 수 있는 이동능 력만을 단기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경섭씨를 위한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 하나 있다면 단순한 외마디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경섭씨에게 언어를 교육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있어서 ‘엄마, 아, 으, 무울’ 이라는 말 외에 더 많은 단어로 자기의 생각과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바 람이 있다면 경섭씨가 재활의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자기의 잠재적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가운데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진정 바라마지않는다. 그런 날이 속 히 오기를 고대하며 고등교육을 마치고 사회 로 돌아가는 우리 경섭씨를 향해 파이팅을 외 쳐본다. 우리 경섭씨, 파이팅!

하나로신문, 편집부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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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경섭씨 화이팅!! 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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