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5(일)
 

진사백자의 새로운 경지, 대한민국 도예명장 임 항 택

“저 붉은 울음이여, 눈부신 생명력이여!” 진사의 신비를 재현하는 도예명장
-지난해엔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도 열어-

2010년 10월 12일(화) 17:31 [(주)하나로일보]

 

↑↑ 한국적인 깊은 미의 도자색을 재현하기 위해 재래종 적송 장작으로 도자기를 굽고 있는 임명장

ⓒ (주)하나로일보


“저는 35년 전 조선백자의 연구에 뛰어들면서 그때 무심코 관찰하던 한편의 진사 파편에 대한 충격스런 감정을 지금도 지울 수 없습니다.

조그만 붉은 진사색의 파편, 온몸을 태워 버릴듯 한 처절한 선율의 붉은 색이 먼 우주의 미로로 내 자신을 빨아들이는 듯한 전율, 그 뒤로 줄곧 이 진사의 색채는 나를 따라 다녔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도토(도자기의 원료로 쓰는 진흙)를 개고 물레를 돌리면서도, 장작불을 때면서도 이 빛깔의 재현은 멀고도 아스라한 길처럼 아득해 보였습니다.”

항산은 자신이 도자기에 표현한 이유, 그 동안의 부단한 연구와 노력, 미래 자신의 도전과제를 설명한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비법들을 정리하여 후배들을 양성

ⓒ (주)하나로일보

끝없는 연구와 실험으로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비법들을 실체화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임 명장은 2005년도에 조선백자의 제조방법 및 그 안료로 특허를 득했다.
그는 자신이 수십년, 수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한 비법을 과학적으로 데이터화하여 제자나 다른 도예인들의 연구를 돕는다.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 기술학과에 나가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실험을 통합 경험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후학들이 짧은 시간에 자신의 경지보다 더 진보된 도예의 경지를 개척해 나가길 원한다. 그래서 그는 양구, 문경 등 도자지역 방문시마다 자신의 도자연구 데이터들을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한다.

교사직을 접고 고생길을 택한 것은 운명이라 생각되다...


“중등학교 미술교사 시절 1973년 한 신문에서 운보 이당 선생이 조선백자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어요. 맥이 끊긴 줄만 알았던 조선백자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저를 흥분하게 했고 그 호기심이 내 발걸음을 이천으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천에 온 그는 열정과 의욕과는 달리 자신에게 열정적으로 기술을 전수해주는 이가 없어 당황하였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흙덩어리 뿐 이었다. 우리 민족의 특성상 천대도 받고 기술 전수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기술습득이 어려웠다. 도토는 어떻게 만들고 유약은 무엇으로 만드는지 알수조차 없었다. 한동안은 오로지 스스로 연구하고 스스로 익혀 깨닫는 과정뿐이었다. 후에 백석 이 정하 선생을 비롯한 지인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작품을 보면 진사에 애정이 많은 것이 느껴진다.

“백자를 알기도 전에 명채도가 높은 진사에 흥미를 느꼈다. 선혈의 붉은 색은 나를 태워버릴 것 같고 전율을 느끼게 한다. 보잘것없는 도편 위 붉은 한점은 ‘화룡점정’ 마치 흙덩어리에 창조주가 생기를 불어 넣는 마지막 작업과도 같다.”

-도자기를 구울 때 힘든 전통 장작가마를 고집하는 이유는...

“재래식 등요는 조상들의 과학의 결정체다. 옛 등요를 재현해 재래종 적송 장작으로 구워내야 한국적인 깊은미의 도자색을 재현할 수 있다. 선홍색 진사도 마찬가지다. 타 방식으로 생산된 도자색과 대비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좋은 도자기란...

“한국적인 선과 형태를 지녀야 한다. 유약의 조합, 재료의 선택에서 알맞은 색조가 연출 되었는지,문양의 격조, 여백의 조화가 잘 맞아야 하고 균일하게 소성됐는지, 작가 독창성이 녹아있어 지속적인 공감과 감동을 주어야한다.”

-병원 치료비가 없어 고통을 겪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던데.

“내 작품으로 병원비를 대신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선생님의 배려에 감사했다. 나도 지역사회로부터 받은 은혜가 크다. 나는 받은 은혜의 일부를 나누었을 뿐 칭찬받을 일은 못된다. 이천을 위해 나의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게도 고마운 일이다.”

-도예 후학이나 입문인에게 하고픈 말은...

“철학, 끈기, 참을성이 없는 후학들을 많이 본다. 손수 장작을 패고 도토를 만들고 몇 일씩 불을 때며 고생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빨리빨리 돈 벌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려는 욕심이 가득한 경우를 본다.
하지만 소수의 후배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이들에게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개척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모방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 같아 보이나 잠시뿐이고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창의성 있는 예술가만이 정상의 기쁨을 맛 볼 수 있다.

 

ⓒ (주)하나로일보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목표로 하는 진사연구는 아직도 멀었다. 특허를 딴것은 연구과제의 산업적인 중요함을를 증명하고 과학적인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목적이었고 이것을 발판으로 후학들을 위해 기본이 되고 받침이 되는 학문연구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그간의 연구과정을 정리하여 뜻있는 후배에게 이어지도록 할 것이다.“

-도자산업의 발전을 위해 조언한다면.

“첫째는 도예인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고부가 가치 창출이 가능한 도예산업을 도외시한 결과 대외적으로 우리의 도예산업이 일본의 아류(추종하는 사람)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해외 여러 나라의 박물관을 가보면 일본의 전시관과 한국의 전시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책 마련을 촉구한다. 일본은 이미 도예산업을 관광과 수출을 통해 고부가 가치를 확실하게 창출하고 있다.”

항산 임항택의 소개

충주공업고등전문학교(현 충주대)기계과졸, 4년간 교직 생활 1975이천 백석 이정하 선생에게 2년간 사사. 2002년 도자기 공예 기능사 취득. 2004년 대한민국 명장 (도자기 공예부문 04-5). 2005년 진사안료의 제조방법과 그 안료의 제조방법을 등록(특허등록 0506119호) 했다.

현재는 항산도예연구소장으로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술학과 출강. 한국 금융연수원 강사 역임. 장녀 임 창랑(수석 전수자)에게 조선 백자의 연구 등을 전수 중.

2009년 7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진사백자'전과 동경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갤러리미'조선진사백자'전을 비롯 신세계 화랑 개인전(1977),일본 동경 구보타 개인전(1995), 프랑스 파리 한국 문화원(2002), 미국 LA 코스모스 백화점 전시회(1999) 등 개인전 14회, 공동전 21회 개최, 예술의 전당(2009.7)...총 50여회 전시회를 열거나 개최했다.
[대담 주필 이계찬]

↑↑ 수석 전수자인 장녀 임창랑氏 에게 자신의 비법을 전수하고 있는 임항택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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