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5(일)
 

새터민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아버지같은 경찰

“우리들에겐 부모, 아이들에게는 친아빠 같았어요”
이 성철 경사 / 이천경찰서 창전 지구대

2010년 10월 25일(월) 18:24 [(주)하나로일보]

 

“내 자녀들이 한국에서 정착한 것은 모두 그분 덕분...”
“경찰의 날이 됐는데 그분 생각나네요. 우리 가족에겐 그분이 전부였는데...
타 지역에 정착한 새터민들이 우리들을 많이 부러워 했어요.”

경찰의 날인 21일 새터민들이 저녁에 웅성웅성 아파트 옆 공원에 모이기 시작한다.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이경사의 은혜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약속을 했기때문.
저녁 6시 30분에 모인 새터민들은 이 형사 부인의 사업장인 꽃가게로 향했다.
필자는 함께 동행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2006년 조 명자(45)씨는 18세된 아들과 함께 북을 탈출하여 이천으로 왔다.
당시 조씨는 당시 하나원에서 가지고 온 밥그릇 몇 개가 전부.
넋을 잃고 있을 당시 보안계에 근무하던 이 형사가 찾아와 위로하며 마땅히 밥먹기가 어려웠던 조 씨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낯설지만 저를 남한에 있던 가족이라 생각하세요.”
개구쟁이 소년처럼 밝게 웃으며 다가온 이 형사.
그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었다.

ⓒ (주)하나로일보

북에서 노래, 가무에 능통해 인정받는 예능인이었던 조씨는 남한에서 설자리가 없었다.
이 형사는 그녀를 정수기 회사에 취업시켜 주었다.
18세의 아들은 학업 수준을 고려, 중학교에 2~3살 어린 후배들과 함께 다니도록 해주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소개도 시켰다.
“학교에서는 이 형사가 아빠인줄 알아요.”
그러나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들은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학교를 빠지고 엄마에게 반항했다
아들은 엄마 말은 안 들어도 이 형사말은 잘 따랐다.
대안학교를 수소문한 끝에 천안에 있는 대안학교에 입학시켰다.
현재 그 아들은 인천 공장에 취업 어엿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뒤늦게 탈북한 딸은 북에서 폭력을 일삼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나타나 괴롭힐까 늘 두려움에 떨었다.
이 형사는 모녀의 이름을 법원에 다니며 바꿔주었다.
그 후 모녀는 공포에서 벗어나 밝게 살게 되었다.
“이 형사님은 우리가족들 일보실 때 늘 쉬는 날 다니셨죠. 밤늦게, 새벽에도 전화하는 새터민들이 많았어요. 그땐 그분의 도움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고마워 할 줄은 몰랐어요.
그분이 전혀 내색 않으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또한 그분 사모님께는 더 죄송해요. 사소한 일로 밤 늦게 심지어 새벽 3-4시에 주무시는 이 형사를 불러냈으니까요. 60여명을 나처럼 모두 돌보려니 정말 매일 우리들 집에 와 사셨죠. 싫은 기색한번 없었어요. 사모님께 꼭 미안하다는 말씀 전해주세요.”

“간경화 치료 및 아이들에겐 학교입학 및 학용품까지 챙겨줘...”

굶주림에 지쳐 돈 벌러 중국 하얼빈 지하교회 등에 숨어지내던 김정희씨.
돈은 커녕 몸이 망가져 간경화 등 각종병만 얻었다.
치료를 위해서라도 남한으로 와야했다.
이 형사는 수차례 분당 차병원을 데리고 다니며 검진, 치료에 도움을 주고 당시 이형사 부인이 근무하던 대보한의원의 도움으로 침, 뜸, 부황 치료 및 한약을 6개월이상 무료로 복용하여 건강이 호전되어 지금은 부산에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다.

김 씨는 필자에게 전화로 조카 두명에게 책가방, 필기구, 실내화 등을 사주고 학교 입학시, 진학시 모두 아빠 역할을 했었다고...알고보니 모든 새터민 아이들에게 용돈 2-5만원을 수시로 주었다고 전했다)

“중국적가족 초청 한국적 취득토록 도와...” 전미옥(36)씨

 

ⓒ (주)하나로일보

 

“미옥아 너도 할말이 많잖아, 얘기좀 하라우!”
“맨 나중에 하려 했는데...저는 중국에 조선족 남편과 딸을 두고 왔어요.
이제는 이형사님 덕분에 가족이 모여 살게 됐어요.
또한 시부모와 친척들을 수소문 해 경남 거창까지 가서 만나게 해주었어요.“ 간경화로 힘들어 일을 못하니까 제게 알맞은 일자리도 소개해 주었어요.

그중 나이가 든 오미숙(55)씨는 아들(26)이 술만 먹으면 폭행하기도 하고 한번은 술친구들이 멀리 산속에 버려 이 형사가 찾아주었고 새벽 4시에 북조선으로 간다고 터미널에 가서 보내달라고 행패 부리는 것을 해결해 주었다고 말한다.

“나뿐 아니라 6명이 남편과 결혼식을 못하고 사는게 불쌍해 결혼식과 경포대 신혼여행, 벌목공 출신 김철남씨가 홀로 죽었을 때는 장례식을 치루고 화장해 이천 공원 묘지에 안치하는 등 이틀밤을 새며 상주가 되어 고생했지요. 그 외에도 우리들이 신세진거 말하자면 밤새해도 모자란다우... “

“새벽에 전화가 오면 남편 깨우고 저는 밤을 새지요.”

새터민들의 방문에 놀라 눈이 동그래진 이경사 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새터민들이 거의 여자들이라 밤에 전화 올 때 짜증나신 적이 있으셨을텐데...
“남편 성격을 알기에 짜증이나 질투한 적은 없어요. 남편은 잠이 오면 업어가도 모르는 분이라 내가 먼저깨워 누구에게 전화왔다고 흔들어 깨우지요.”

-여자들이 밤마다 남편을 오라고 하면 누구나 질투가 날만도 하신데...
“때로는 가관이 아닌 문자도 오고 지나친 방문 요구도 있지요. 하지만 남편을 신뢰해요”

-자정이나 새벽 3-4시에도 많이 불렀다던데...전화를 꺼놓으시지 않는 이유는...
“자다가 제가 먼저 깨어 바꿔주는데 저는 한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해 괴로워요. 그러나 전화를 꺼 놓으면 새터민들과의 진실한 교감이 되겠어요? 그들이 잘 적응할때까지는 누군가는 도와주어야지요.

-남편이 언젠가 다시 새터민 담당이 된다면...
“다시 잠 못 이루는 일은 있겠지만 이산가족 만나는 것처럼 반가울꺼예요.”
이 경사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의무경찰을 마치고 특채의 기회를 마다하고 공채를 거쳐 경찰에 입문, 처 고향인 이천에서 91년 7월 13일부터 근무해 이천이 제 2 고향이다.
아내는 호프집에서 우연히 만났고 둘 다 주당이다.
한창때 소주 5병을 나눠 마셨단다.
평생 부부싸움 한번 해 본적 없고 두 아들(중3,초2)에게도 친 형처럼 자상한 아빠라고 아내가 자랑한다.
장인이 7년간 중풍으로 고생할 때 원주 병원에 수시로 모시고 다녔고 위독했던 20일은 매일 가서 간병을 했다고 아내가 말한다.

근무를 끝내고 꽃집에 온 이 경사를 만났다.

ⓒ (주)하나로일보

-경찰의 날에 새터민들이 인사를 왔다던데...
“그 당시는 새터민들이 처음 남한에 왔을 때라 누구라도 그렇게 해주었을꺼예요. 지금은 잘들 살아주고 있어 제가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데...”

-보안계 근무(4년) 끝나고 헤어질 때 이 형사가 먼저 울어 울음바다가 되었다던데.
“새터민들이 송별식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1개월간은 정들었던 이들과 헤어져 힘이 들었었다.

부인과 새터민 문제로 다툰 적은...
“처음엔 잔소리 몇 번 한 적이 있지만 그들과 가슴으로 교감을 나누어야 진정한 직무 아니냐고 말한 후 모두 이해하고 새벽에 쓸데없는 전화인줄 알면서도 나를 깨워 바꿔주는 적극 협조자가 되었다.”

-새벽에 쓸 데 없는 전화, 예를 든다면? (이 질문에 이 형사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내가 어느집을 다녀간 사실을 알게 된 어느 새터민은 새벽에 분을 못 이겨 ‘왜 옆집엔 다녀갔으면서 내 집엔 안들렸는가? 나와 대상(상대)안하겠는가? 설명해 보라!’라는 전화도 있었다. 새벽 3시경 그 전화를 바꿔준 아내는 밤을 꼬박 새웠다. 그래도 화는 내지 않았다.”

-새터민 담당 시 이 형사를 이해하고 응원한 분들이 있다면...
“참 많은 분들이 도와주었다. 당시 유동혁 과장과 유용준 계장님은 ‘이 형사는 새터민 담당이 천직이니 전적으로 전념해라’라고 응원해주어 큰 힘이 됐고 구만리 임효기,형상혁 회장,증포동 박정화씨, 바른병원 분들이 새터민들의 후원자가 기꺼이 되주었다.

-새터민들을 위해 하고픈 말이 있는지...
“새터민들은 북에서 굶주리다 중국으로 탈출하여 노예처럼 학대받던 내 형제들이다. 남한으로 오기까지 10여년의 방랑기간 중 병들어 남쪽으로 온 내 형제들이다.
이곳에 오면 그간 참았던 정신적, 신체적으로 각종 병이 고개를 들어 상당기간 회복 프로그램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건이 안되어 그들은 바로 병든 몸으로 생업에 뛰어든다. 그들이 게으른 것이 아니고 힘이부치는 경우가 많다. 일방적으로 편견을 갖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들이 정착을 못하면 결국 국력의 손실이 된다. 따뜻한 보살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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