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5(일)

초대석
Home >  초대석

실시간뉴스
  • 윤두현 서경한우 협동조합 조합장
    한우전문점 소들녘과 최근 미경산 한우사업 관한 MOU를 체결 윤두현 서경한우 협동조합 조합장 서경한우협동조합의 존재 이유를 ‘조합원의 행복’에서 찾는다. 이윤의 상당 부분을 조합원에게 환원함으로써 조합원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고, 이를 다시금 조합의 원동력으로 삼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서경한우협동조합의 정체성이다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소를 잘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잘 팔아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값 하락으로 어려워하는 조합원이 안정적으로 소를 키울 수 있고 잘 키운 소를 잘 팔아 줄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2023년 5월에는 서경한우를 더욱 가까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이천 관고시장에 직영판매장을 오픈합니다. 많이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현재 운영 중인 서경한우프라자 마장면 본점과 이천점, 양지점을 활성화하고 농협 하나로마트 8개소와 소들녘 등 유통업체 7개소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아울러 헬로네이처와 중소기업유통센터쇼핑몰, 미국 Hmart 등 소매 유통망을 다지고, 다른 온라인 쇼핑몰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화재 복구를 조속히 하는 것에 힘쓸 것이며,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암소브랜드로 우뚝 설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수도권의 고객분들이 이천 서경한우를 찾아와 이천이 한우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며, 한우 수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라고 포부를 밝히는 윤두현 서경한우 조합장.자체도축으로 지난해 1,500두를 가공 판매하였습니다.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서경한우 직영점과 함께 체인점이 서울 남대문, 안양 백미점, 시흥점, 동탄점, 용인점 등 5개가 있으며, 인터넷 사업을 확대하여 다양한 채널로 서경한우를 만나 볼수 있도록 하였습니다.또한, 서경한우는 올해 한우전문점 소들녘과 최근 미경산 한우사업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서경한우는 직영점인 서경한우프라자 뿐 아니라 소들녘을 통해서도 미경산 암소를 안정적으로 유통하게 된 것이다. 미경산 한우는 30개월 내외의 한우로 최상의 품질과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시중에서 새끼를 여러 번 낳은 암소 고기는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경산 한우는 매우 희귀한 고기로서, 사실상 서경한우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상품이다. 희소성 뿐 아니라 맛 또한 훌륭해 최고급 식재료와 품격을 모두 원하는 소비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하여 지역경제는 날로 추락하고 있고 각종 공과금을 비롯하여 금리인상, 물가 폭등으로 서민경제가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감안해 서경한우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최고품질의 암소 한우를 대폭 가격을 인하한 할인행사를 수시로 진행하고 있으며, 갈비탕, 곰탕, 육회비빕밥 등의 식사를 가격을 낮추어 7천원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조합의 이익창출도 중요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서민들이 어려울 때 함께 나누는 것이 서경한우의 경영철학입니다. 많이 이용해주시면 더욱 고마울 따름입니다. 대담:정봉영 발행인본지에서는 금주의 초대석을 기획시리즈로 연재 하고 있는 바 본지 하나로신문 발행인 정봉영과 윤두현 서경한우 협동조합 조합장과의 대담을 통해 윤 조합장에 대한 지도자 역량과 자질을 독자들과 시민들에게 올바른 평가와 검증과 사회봉사자로 정평있는 현 서경한우 윤조합장에 대한 견해와 활동상과 식견 이사회와 서경한우협동조합의 미래와 발전 방향 문제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듣고자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서경한우 존재 이유를 ‘조합원의 행복’에서 찾는다. 이윤의 상당 부분 조합원에게 환원함으로써 조합원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고, 이를 다시금 조합의 원동력 삼는 선순환 구조로 최고의 조합으로 발돋움시킬 터자체프로그램 중간 마진 최소화한 OEM 사료 생산 저렴한 사료 조합원에게 공급5월 서경한우 더 가까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이천 관고시장 직영판매장 오픈 1. 하나로신문 독자분들과 조합원을 위해서 간단한 인사를 전한다면?안녕하십니까 서경한우 협동조합 조합장 윤두현입니다.최근 본사와 가공공장 등이 화재로 전소되어 주위에서 우려해 주시고 아픔을 같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겠다는 신념하에 신속한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빠른 시일내에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2.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에 대해 간단히 소개 한다면 ?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은 농림축산식품부가 한우 전문 품목협동조합으로 인가하여 2012년 설립되었으며, 현재는 460여 조합원과 함께하는 중견급 조합으로 성장하였습니다. 50개월 이내 한우 암소를 유통하는 전문 조합으로서 자체 도축가공과 소매유통을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수도권 한우의 가치를 높이는 견인마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서경한우는 수도권 축산업을 지켜내며 농촌 발전에 크게 기여한 지역경제 버팀목이 되기 위해 ‘질 좋은 청정 한우 생산’을 목표로 조합원의 안정적인 소득향상과 바람직한 한우 먹거리 공급이라는 두 마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합원 임직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질 좋은 한우 암소 고기를 저렴하고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가격의 현실화를 이룩하였고 이와 함께 품질 고급화와 다양한 메뉴를 개발 공급하여 직영판매식당을 이용하는 고객 누구나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 좋은 결실을 얻고 있습니다.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은 금용사업을 하고있지 않고 있으며, 소를 어떻게 잘 팔것인가? 어떻게 잘 키울 것인가?에 집중하는 협동조합입니다3. 서울경기 한우협동조합 조합원들을 위한 혜택과 계획에 대해 밝힌다면 ?서경한우 자체프로그램으로 중간 마진을 최소화한 OEM 사료 생산하여 저렴한 사료를 조합원에게 공급하고 있으며 초음파 및 거세 지원 등 다양한 사양지도 사업 등으로 조합원분들이 한우를 잘 키우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우 지역 축산농가와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매년 자체도축 비율을 높여왔으며, ‘돌보미사업장’ 활성화를 통해 ‘대리 축산영농 시스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서경한우는 조합원의 소득 증대를 핵심 이념으로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왔습니다. 자체도축은 지난해 기준 833두이며, 올해는 약 50% 정도 늘어난 1,200두로 예상됩니다. 또 올해 이익은 5억 원 규모로 예상되는데요, 이중 2억 7천만 원은 배당금으로서 조합원의 몫입이다.”서경한우는 또 비대면 유통망 확충에도 힘 쏟고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온라인 판매 실적이 크게 향상되면서 온라인 마켓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4억 규모였던 매출액이 금년에는 무려 15억 규모로 성장했다.4.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 조합장으로서 역할과 운영방침 및 경영방침 계획에 대해 밝힌다면?윤 조합장은 서경한우협동조합의 존재 이유를 ‘조합원의 행복’에서 찾는다. 이윤의 상당 부분을 조합원에게 환원함으로써 조합원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고, 이를 다시금 조합의 원동력으로 삼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서경한우협동조합의 정체성이다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소를 잘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잘 팔아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값 하락으로 어려워하는 조합원이 안정적으로 소를 키울 수 있고 잘 키운 소를 잘 팔아 줄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5.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 조합장으로서 재직하면서 그동안 업적과 추진사항을 밝힌다면 ?자체도축으로 지난해 1,500두를 가공 판매하였습니다.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서경한우 직영점과 함께 체인점이 서울 남대문, 안양 백미점, 시흥점, 동탄점, 용인점 등 5개가 있으며, 인터넷 사업을 확대하여 다양한 채널로 서경한우를 만나 볼수 있도록 하였습니다.또한, 서경한우는 올해 한우전문점 소들녘과 최근 미경산 한우사업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서경한우는 직영점인 서경한우프라자 뿐 아니라 소들녘을 통해서도 미경산 암소를 안정적으로 유통하게 된 것이다. 미경산 한우는 30개월 내외의 한우로 최상의 품질과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시중에서 새끼를 여러 번 낳은 암소 고기는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경산 한우는 매우 희귀한 고기로서, 사실상 서경한우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상품이다. 희소성 뿐 아니라 맛 또한 훌륭해 최고급 식재료와 품격을 모두 원하는 소비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6.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 그동안 추진사항과 앞으로의 계획과 방침을 밝힌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화재 복구를 조속히 하는 것에 힘쓸 것이며, 서울경기한우협동조합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암소브랜드로 우뚝 설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천지역은 지리적으로 매우 유리한 면이 많습니다. 수도권의 고객분들이 이천 서경한우를 찾아와 이천이 한우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며, 한우 수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7. 서경한우 직영 판매 식당에 대해 소개를 한다면 ? 부담없는 가격으로 프리미엄급 한우암소를 즐길수 있는 수도권 명소로 자리잡는 것을 비젼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고객분들이 이용해주셔서 나름 많이 알려졌지만 더욱 노력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2023년 5월에는 서경한우를 더욱 가까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이천 관고시장에 직영판매장을 오픈합니다. 많이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현재 운영 중인 서경한우프라자 마장면 본점과 이천점, 양지점을 활성화하고 농협 하나로마트 8개소와 소들녘 등 유통업체 7개소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아울러 헬로네이처와 중소기업유통센터쇼핑몰, 미국 Hmart 등 소매 유통망을 다지고, 다른 온라인 쇼핑몰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8. 서경한우 암소 브랜드와 체계적인 판로구축과 유통에 나아갈 지표를 제시한다면 ?고객의 관점에서 브랜드가 발전되어 가야 합니다. 고객 관점에서 생산, 유통시스템이 구축되고 발빠르게 대응해야 브랜드가 발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에 서경한우의 ‘한우 숙성기술 활용 저지방 부위 부가가치 향상 시범사업’에 대한 식미 평가를 진행했다. “자체 건식숙성고에서 다양한 기간 숙성을 진행한 결과, 최종적으로 40일 건식숙성이 최상의 맛을 끌어낸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최상급 한우고기를 선호하는 시장에서 2~3등급 저지방 한우에 대한 선호도는 매우 낮습니다. 그러나 드라이에이징 기술을 활용한다면, 깊고 뛰어난 풍미를 더할 수 있기에 독자적인 상품성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숙성(Aging) 이란 일정 기간 온도, 습도, 바람 등 숙성환경을 유지해 고기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키는 기술로 숙성방법에 따라 건식과 습식으로 나뉩니다. 서경한우의 뛰어난 건식숙성기술에 40일의 기다림이 더해지면 2∼3등급의 저지방 한우고기도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특유의 풍미와 감칠맛이 향상됩니다. 우리 조합은 앞으로도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최상의 조건을 찾아 서경한우만의 기술을 만들어갈 것이며, 이를 통해 지역 한우농가의 소득 향상에도 기여하겠습니다.9. 어려운 경제속에서 직영 판매식당의 가격 할인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 이유를 밝힌다면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하여 지역경제는 날로 추락하고 있고 각종 공과금을 비롯하여 금리인상, 물가 폭등으로 서민경제가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감안해 서경한우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최고품질의 암소 한우를 대폭 가격을 인하한 할인행사를 수시로 진행하고 있으며, 갈비탕, 곰탕, 육회비빕밥 등의 식사를 가격을 낮추어 7천원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조합의 이익창출도 중요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서민들이 어려울 때 함께 나누는 것이 서경한우의 경영철학입니다. 많이 이용해주시면 더욱 고마울 따름입니다. 10. 주민들과 조합원에게 당부 및 부탁이 있다면 ? 서경한우를 사랑해주시고 이용해주신 고객분들과 조합원들에게 감사합니다. 더욱 발전되고 좋은 서비스로 함께하는 서경한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초대석
    • 초대석
    2023-04-26
  • 황순철 모가농협조합장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과 조합원의 무한만족을 위한 친절봉사 및 조합발전을 위한 임직원의 창의적인 업무추자세를 확립하여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모가농협으로 발돋움시킬 터 황순철 모가농협 조합장 "조합원들 권익 보호와 농가소득 창출 최선의 노력 하는 조합장 될 터" 모가농협은 이천시의 중심지점에 위치하여 조합원과 지역주민들의 높은 농협 이용률 등 경쟁력을 바탕으로 농업 농촌의 발전과 조합원의 소득향상을 꾀하고 있습니다. 내 외부 감사를 통한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과 조합원의 무한만족을 위한 친절봉사 및 조합발전을 위한 임직원의 창의적인 업무추진 자세를 확립하여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모가농협을 만들겠습니다.모가농협의 운영방침과 경영방침으로 농협의 주인인 조합원들을 섬기며 조합원들의 실익과 권익을 보호하며 농가소득을 극대화시켜 조합원 모두 삶의 질 높은 생활을 영위 할 수 있도록 조합원을 위한 목적 아래 투명한 경영체제를 확립하고 임직원들의 능력과 취미 특기를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배치 업무능률을 최대한 극대화시켜 나가면서 평생직장이라는 자긍심을 심어 주고 누구나 수용 할 수 있는 공감경영을 실현시켜 나 갈 것입니다. 금년에는 조합원님들을 위한 복지 실익 위주의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코로나19 관련 지원 건강검진 지원 고품질의 쌀 생산을 위한 볏짚환원사업을 펼쳤으며 앞으로 젊은 조합원을 위한 신 소득 작목을 발굴 지원하여 농산물 소득 범위 또한 점진적으로 넓혀가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라고 포부를 밝히는 황순철 모가농협 조합장. 2020년 우리 모가농협은 조합원을 위하여 농협사업이용권 지급과 벼 수매가격 인상 배추 모종 마스크 지원 고령조합원 의료비 일부 지원 및 장제비 지급 건강검진확대실시 농기계 순회 수리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신규사업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내실 있는 경영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조합원 실익증진을 위한 사업을 전개할 예정에 있습니다. 많은 협조와 성원 부탁드립니다.또한, 초선조합장에게 거는 조합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실익증진 위주의 사업추진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최근 농어촌 발전 분야 경기도지사 표창을 수상하였으며 컨설팅 최고경영자 선정 등 여러 종류의 상을 수상 하였습니다. 또한, 조합원들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초심을 잃지 않고 오로지 모가농협 발전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이를 감수하면서 조합원들의 권익 보호와 농가소득 창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앞으로도 가시적인 발전 효과를 일으키기 위하여 농협경영에 최선을 다하는 조합장이 되겠습니다.다가오는 2021년 신축년에는 농업인을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으며 근면 성실한 자세로 모두가 만족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안겨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조합장이 되겠습니다. 다가오는 새해! 모두가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한 2021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담:정봉영 발행인 본지에서는 금주의 초대석을 기획시리즈로 연재 하고 있는 바 본지 하나로신문 발행인 정봉영과 황순철 모가농협 조합장과의 대담을 통해 황 조합장에 대한 지도자 역량과 자질을 독자들과 시민들에게 올바른 평가와 검증과 사회봉사자로 정평있는 현 모가농협 조합장에 대한 견해와 활동상과 식견 이사회와 모가농협의 미래와 발전 방향 문제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듣고자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신 소득 작목 발굴 지원해 농산물 소득 범위 또한 점진적 넓혀가도록 계획 농협 주인인 조합원 섬기며 실익과 권익보호 농가소득 극대화시켜 나갈터 1, 하나로신문 독자분들과 조합원을 위해서 간단한 인사를 전한다면?황순철 모가농협 조합장 인사드립니다. 코로나19와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산하여 발생되는 힘든 시기에도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든 시민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2021년 새해에는 건강하게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2, 모가농협에 대해 간단한 소개와 조합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인구 4,500여명 정도의 모가면에 위치한 우리 농협은 1,350여명의 조합원님들과 22곳의 영농회로 구성되어 있는 소규모의 조합이지만 조합원님과 임직원 지역주민들이 함께 노력하여 내실 있는 강소 농협으로 활발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모든 성과와 그에 따른 결과는 우리 조합원님들과 주민들의 협조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 하였던 것같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3. 모가농협 조합원들을 위한 혜택 및 계획에 대해 밝힌다면? 2020년 우리 모가농협은 조합원을 위하여 농협사업이용권 지급과 벼 수매가격 인상, 배추 모종 마스크 지원 고령조합원 의료비 일부 지원 및 장제비 지급 건강검진확대실시 농기계 순회 수리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신규사업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내실 있는 경영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조합원 실익증진을 위한 사업을 전개할 예정에 있습니다. 많은 협조와 성원 부탁드립니다.4. 이천지역 모가농협 조합장으로서 역할과 운영방침 및 경영방침 계획에 대해 밝힌다면? 모가농협은 이천시의 중심지점에 위치하여 조합원과 지역주민들의 높은 농협 이용률 등 경쟁력을 바탕으로 농업 농촌의 발전과 조합원의 소득향상을 꾀하고 있습니다. 내 외부 감사를 통한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과 조합원의 무한만족을 위한 친절봉사 및 조합발전을 위한 임직원의 창의적인 업무추진 자세를 확립하여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모가농협을 만들겠습니다.모가농협의 운영방침과 경영방침으로 농협의 주인인 조합원들을 섬기며 조합원들의 실익과 권익을 보호하며 농가소득을 극대화시켜 조합원 모두 삶의 질 높은 생활을 영위 할 수 있도록 조합원을 위한 목적 아래 투명한 경영체제를 확립하고 임직원들의 능력과 취미 특기를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배치 업무능률을 최대한 극대화시켜 나가면서 평생직장이라는 자긍심을 심어 주고 누구나 수용 할 수 있는 공감경영을 실현시켜 나 갈 것 입니다. 5. 초선 모가농협 조합장으로서 재직하면서 그동안 업적과 추진 사항을 밝힌다면? 초선조합장에게 거는 조합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실익증진 위주의 사업추진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최근 농어촌 발전 분야 경기도지사 표창을 수상하였으며 컨설팅 최고경영자 선정 등 여러 종류의 상을 수상 하였습니다. 또한, 조합원들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초심을 잃지 않고 오로지 모가농협 발전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이를 감수하면서 조합원들의 권익 보호와 농가소득 창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앞으로도 가시적인 발전 효과를 일으키기 위하여 농협경영에 최선을 다하는 조합장이 되겠습니다.6. 모가농협 그동안 추진 사항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힌다면? 금년에는 조합원님들을 위한 복지 실익 위주의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코로나19 관련 지원 건강검진 지원 고품질의 쌀 생산을 위한 볏짚환원사업을 펼쳤으며 앞으로 젊은 조합원을 위한 신 소득 작목을 발굴 지원하여 농산물 소득 범위 또한 점진적으로 넓혀가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7, 현재 농민 조합원들로부터 산물 벼를 수매하고 있는데 수매가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소신을 밝혀 달라?해마다 벼 수매가는 생산 농가와 농협 간의 입장 차이가 생기고 갈등 발생의 원인이 되는 민감한 사안입니다. 2020년에는 긴 장마와 일조량의 편차로 수확량이 전년 대비 감소한 상황에서 수매가격의 결정은 큰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줄어든 생산량만큼 소득보존의 일환으로 수매가격을 인상하여 서로의 입장에 만족할 수 있는 수매가를 형성시켰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벼 수매가격 인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 앞으로 임금님표 브랜드관리와 체계적인 판로구축과 유통에 대해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갈 지표를 제시한다면?“ 예전에는 농산물 관련 브랜드를 자산적 개념이 아닌 농산품 이름으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고 전문인력과 관리조직의 미흡 등으로 사후관리가 안 되어 브랜드화 효과가 저조하였지만, 임금님표의 철저한 브랜드관리를 통하여 생산 농산물에 대한 공통적인 품질관리 체계와 소비자 욕구에 맞는 다양한 포장 규격 및 감각적인 포장 디자인 개발 등 브랜드의 상품화 사후관리와 공동 홍보방안 마련 등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등의 수립으로 현재까지는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앞으로 지역과 상품의 인지도 명성도 생산의 지역적 유리성 특정기술도입 등의 여건을 고려해 세분화된 유형별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목표시장을 점차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9, 현재 코로나19로 인하여 지역 대표적인 축제 취소와 지역경제가 침체 되고 있는데 그 해결 방안과 정책 방향 그리고 조합원들을 위한 대책을 밝힌다면? 농촌경제연구원의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농업의 공익적 기능 식량안보 귀농 귀촌 증가 등 농업 농촌의 중요성이 부각이 되고 있습니다.이제까지의 농촌관광이 가족 친화나, 미식 여행을 주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면, 향후에는 농촌만이 제공할 수 있는 힐링 건강치유 심신 휴양 자연환경 및 생태환경체험 가족 친화 미식 여행 등의 여러 목적으로 세분화 및 확대 될 것으로 예측이 되어 추후 코로나19 종식 이후 농촌관광 수요 확대 및 마이크로 투어리즘 등 관광형태 변화에 대비하여 지자체에 농촌관광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추가로 지역경제 침체로 역경을 겪으시는 우리 조합원님들을 위하여 다양한 자금지원방안의 모색, 인력중개를 통한 인건비 절감 부가소득을 조성하기 위하여 작물 종자 및 모종 공급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10, 주민들과 조합원들에게 당부 및 부탁이 있다면?코로나19로 심리적,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우리 농업인과 이천 시민여러분께 당부 말씀 올립니다. 2020년은 지난날의 평온한 하루 한주 한 달 일 년이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일깨워주고 우리의 결속된 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언론에서 코로나19의 확진자가 증가하는 추세를 연일 보도하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불안한 마음이 크시겠지만 개인 방역수칙과 지자체의 안내에 성실히 따라주셔서 우리 이천시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리라 굳게 믿고 있겠습니다. 저 황순철 모가농협 조합장은 다가오는 2021년 신축년에는 농업인을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으며 근면 성실한 자세로 모두가 만족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안겨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조합장이 되겠습니다. 다가오는 새해! 모두가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한 2021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초대석
    • 초대석
    2021-01-03
  • 친정집 가난 극복을 위해 논 닷 마지기와 맞바꾼 장님남편 선택 결혼
    2019/11/21 12:50 입력 모범시민 발굴 시상 희망의 등불인 아산재단과 고 정주영회장의봉사정신 효행상수상 본문은 본지 신선재 칼럼위원이 故 정주영 회장이 숭고한 봉사정신으로 우리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거나 효행 및 가족사랑을 실천하여 사회의 귀감이 된 인사와 단체를 발굴 표창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제정된 명망 있는 상으로서 1문1답 식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게재합니다. ㅡ편집자 주ㅡ 1.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수상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저는 이 상이 대통령표창 이상의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큰상을 받게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올바른 삶을 살아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 사회가 이를 인정해 준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하고 눈물이 납니다.저를 추천해준 이천향교에 감사하고 저 때문에 가슴에 응어리 졌을 어머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2.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과 친정 사정에 간단한 소개를 해 주십시오.저는 여주시 흥천면 문장리에서 1943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3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보따리 장사를 해가며 생계를 꾸려갔기에 굶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이러한 가정사정으로 인하여 문장초등학교를 입학졸업을 하였고 상급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어보고 포기한 체 사회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서울로 식모살이를 하며 생활해 왔습니다.3. 결혼을 하게 된 동기나 각오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제 나이 20살 되던 어느 날 시골의 고모부로부터 “인근동네 부잣집에 장님아들이 있는데 그 집으로 시집을 오면 논 닷 마지기를 준 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고모부를 졸라 댔습니다.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안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차라리 내가 물에 빠져 죽겠다”는 어머니를 간신히 설득하여 장님에게로 시집을 오게 되었습니다.당시 저는 가난이 너무 싫었고 친정도 살리고 또한 불상한 사람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고 보란 듯이 잘 살아보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4.결혼생활과 함께 그동안 가정생활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신다면? 1964년 12월 시집을 와보니 시댁은 비교적 부농으로 약7,000여평의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당시는 모든 농사가 기계화가 보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일이 사람의 힘으로 짓는 농사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밤낮으로 농사일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로 오죽하면 촌부자 일부자라고 일이 많았습니다. 식구로는 앞을 못 보는 남편을 비롯하여 환갑 된 시부모님 그리고 팔순의 시조부님이 계셨는데 시조부는 노환으로 치매까지 있으셨습니다. 3년여를 조석을 따로 차려 드리는 등 병수발을 들었고 1968년 시조부님이 돌아가시자 시어머님이 병을 얻어 몸져누우셨습니다.시어머니는 10여년을 해소 천식을 앓다 1979년에 돌아가셨고 이어서 이번에는 시아버님이 몸져누우셨고 아버님 역시 치매와 노환으로 15년간을 고생하시다 1995년 10월에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3년 친정어머님이 몸져누우셨습니다.나로 인한 평생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불쌍한 어머님을 편하게 보내드리리라 마음을 먹고 남편을 설득해 친정어머님을 모시게 되었는데 마지막 3년 전부터는 대소변을 받아내며 고생을 하시다 2017년 돌아가셨습니다.5. 슬하에 2남 2녀를 두셨는데 자녀 양육은 어떻게 하셨나요? 결혼 한지 14개월 만에 첫 아들을 낳고 10여년간 4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다행이 모두 정상아로 태어나 감사하나 “아버지가 장님인지라 다른 애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지나 않을까?” 늘 걱정이었습니다. 학교 가는 자녀들을 뒤 따라 가는가 하면 몰래 교실을 훔쳐보기도 하고 담임선생님을 수시로 찾아가기도 하고 선생님들을 집으로 초청해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내 집처럼 드나 들다보니 교장선생님께서 “부교사로 임명 해야겠다”며 1979년 어머니회장을 맡겨 그로부터 중학교까지 13년간 자모회 활동을 하였습니다.6.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시회봉사활동을 많이 하셨다고 하던데요?1969년부터 10여년간 이천군 생활개선회장을 비롯해 79년부터는 새마을부녀회장 10여년을 맡으면서 농촌부엌과 화장실개량 꽃밭, 꽃길 가꾸기 등 농촌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절미운동과 부녀회 공동밭 가꾸기 등 농촌계몽활동을 전개하고 여기서 발생한 기금으로 마을 어르신들께 수시로 (고유 명절이나 어버이날, 삼복 날 등) 식사를 대접하고 매년 효도관광을 시켜드리는 등 내 부모 모시듯 보살폈습니다.이밖에도 초, 중학교 어머니회장 13년, 자유총연맹 백사여성회장4년, 성균관 유도회 백사여성회장4년 등 40여년 간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봉사했습니다.7. 농사가 많은데다 앞 못 보는 남편은 일을 못하고 여자의 몸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하네요?1964년 시집왔을 때만 해도 시부모님과 같이 손 모내기 손 벼 베기 등 재래식 농업으로 부모님을 도와가며 농사를 지었으나 농촌도 기계화가 되고 부모님이 일을 못하시게 되자 여자의 몸이지만 농기계 작동 법을 배워 77년부터는 손수 경운기로 두엄을 나르고, 논을 갈고, 써리고, 이앙기 탈곡기 등 기계화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가하면 담배, 고추 등 특용작물 재배, 양돈 등 안 해본 농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건강이 있었기에 가능 했던 것 같습니다.8. 힘든 삶을 살다 보면 초심을 잃고 후회도 했을 텐 데 이를 극복 할 수 있었던 비결은?저는 일생을 살아오면서 가난에서 벗어나자! 불쌍한 남편을 살리자! 남에게 손가락 받지 말고 살자! 내가 택한 길 올바르게 남보란 듯이 살아보리라! 라는 신조로 살아 왔는데 끝까지 이를 지키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앞을 못 보는 장님의 특성이 남을 의심 하는 것이라 합니다.(특히 배우자) 어떤 때는 집안일을 팽개치고 사회활동을 위해 밖으로 나올 때는 마누라가 못마땅했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하고 격려해준 남편 덕에 감내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9. 그동안 생활을 해 오면서 감사와 전할 말이 있으시다면?첫째, 무엇보다도 내 옆에서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준 남편에게 감사하고요, 둘째, 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자녀로 남들에게 따돌림 받고 자격지심이 있었을 텐 데 이를 의식하지 않고 잘 자라준 자식들에게 감사하고, 셋째, 평산 신씨의 며느리로, 집안으로, 이웃으로, 받아주고 위로 격려하며 화목하게 살아가고 계신 조읍1리 주민들께 감사드립니다.끝으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며 타의 귀감이 되는 모범시민을 발굴해 시상해주는 희망의 등불인 아산재단과 저를 선정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초대석
    • 향기나는사람
    2021-01-03
  • 류형복 기자가 만난사람 양강숙 사랑의요양원 원장
    2017/11/07 11:00 입력 노래교실 문화공연 윷놀이 등 다양한 취미활동 여가프로그램 개발 운영 사랑의요양원 원장 양강숙 사회복지사로써 요양원을 운영하게된 계기는?웃음과 함께 행복한 보금자리와 삶의 질 높은 사랑의요양원 운영가을의 마지막 11월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참 세월이 빠르게 흘러 벌써 마지막 가을을 맞이하고 얼마 안 있으면 한해의 마지막까지 맞이하게 된다고 하니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저는 안산시 고잔동에서 사랑의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양강숙 입니다.요양원에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즐겁고 행복함을 느꼈기에 요양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현 사랑의요양원 원장으로 봉사활동내역을 소개를 한다면? 지난 8월 23일 사랑의 요양원과 밀리아나 경로당이 자매결연 협약 식을 가졌습니다.요양원을 운영하면서 갖게 된 어르신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지역사회에 계신 어르신들에게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자매결연을 추진 체결하여 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앞으로 밀리아나 경로당에 쌀을 정기적으로 후원할 예정이며 이에 그치지 않고 경로당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을 가질 것을 약속했습니다.더욱이 노인의 날 지역 어르신들 모시고 식사 대접해 드리는 자리에 참여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함을 느꼈습니다.앞으로도 꾸준히 할 생각이며 시간이 허락되면 생활이 어렵거나 독거노인 분들께 도시락 배달도 계속 참여할 생각입니다. 사랑의요양원의 조직과 구성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다면?저희 사랑의요양원은 19인 시설로 현재 어르신 19분이 생활을 하고 계시며 시설 규모는 생활실 6개 프로그램 실 물리치료실을 완비 어르신들의 체력과 기능을 향상 유지시키는데 힘쓰고 있으며 종사자들은 시설장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8명 조리원 2명이 위생 신체활동 정서적인 지원을 하며 어르신들의 팔 다리가 되어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의요양원 원장으로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지역 생활에 느낀 장, 단점과 원장의 역할에 대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현재 우리나라는 첨단과학문명의 발달과 의료기술로 인하여 수명이 연장 되면서 노인인구는 급속히 증가되는 반면 젊은 세대들의 결혼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맞벌이 부부들이 경제활동에 나서면서 자녀 출산에 대해 각종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으로 인한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출산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 인구의 남녀노소 균형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우리의 현실은 초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제가 생활을 하고 있는 안산시 역시 예외가 아닌 노인 인구가 매우 많이 있는 가운데 도시락 배달을 하며 같은 건물과 인근에 누구는 지원을 받고 누군가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봐 왔습니다. 이런 경우는 충분히 스스로를 돌볼 수 있기 때문에 도시락을 받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선별적인 복지라 하여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더욱 지원이 필요한 분들이 먼저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몰라서 신청을 못하시는 분들도 많고 갑작스럽게 건강상태가 나빠져서 지원이 필요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노인뿐 아니라 소외계층 모두가 혜택을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시설을 운영하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부분은 어르신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움을 제공하고 생활을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더불어 어르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능을 유지하고 발굴하여 향상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과정은 모두가 힘들지만 어르신이 점점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모두가 기뻐하고 행복함을 느낍니다. 사랑의요양원 원장직책을 맡고 있는데 앞으로의 운영계획과 방침을 밝힌다면?저희 사랑의 요양원은 무엇보다 불편한 노인 분들을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 되어 입소 노인 분들하고 임직원들이 일거수일투족 혼연일체가 되어 항상 즐거운 웃음과 함께 행복한 보금자리가 되어 높은 삶의 질을 만끽하시면서 편안한 생활과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설립이념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입소 노인 분들을 위한 치매예방을 위해 음악 미술 작업치료 웃음치료 등의 전문적인 치매예방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 하고 있습니다.또한 건강한 육체와 마음에서 건전한 생각을 갖고 생활을 할 수 있듯이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체조 수건체조 등 입소 노인 분들에 개별적으로 맞춤형 운동을 실시하는 신체기능강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풍요로운 여가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래교실 문화공연 윷놀이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가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고 특히 사회적응훈련프로그램으로 예배 이, 미용 생신잔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을 느꼈던 사례를 간단히 소개한다면?저희 사랑의요양원에 부부가 입소하셨는데 할머니께서 치매 증상으로 우울증과 폭언이 심하셨습니다. 우울감이 심한 날은 식사도 거르고 힘없이 누워만 계셔서 항상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걱정도 많이 하시고 힘들어 하셨습니다. 저희는 할머니가 식사를 거르시면 죽을 드리고, 간식을 여러 번 제공하였고 기분 전환 겸 밖으로 나가 가까운 시장에 모시고 가고 산책을 시켜 드리며 정서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할머니의 상태는 점점 좋아지셔서 폭언을 하는 날도 잦아들었고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아지셔서 부부가 함께 퇴소를 하셨습니다. 어르신들과 정이 많이 들었었지만 이때가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문제점과, 애로사항 있다면 소개를 해 달라?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합니다. 어르신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의 인격을 존중하고 우대하기 위해 힘쓰지만, 어르신이나 보호자들은 요양보호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은 아줌마라고 부르며 인격을 무시하고 사기를 격하시키며 자신들만이 만족 할 수 있는 시중과 서비스를 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과 인식 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요양보호사들도 이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고 더 나아가 다른 어르신에게 피해가 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상호간에 인격 존중과 원활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요양원에 대한 인식제고와 근본대책을 제시한다면?과거에 몇몇 안 좋은 요양기관들이 TV에 방영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요양원이란 곳은 비인격적이며 문제와 비리가 많은 곳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할 시·구청·보건복지부 국민보험공단에서 요양원에 대해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관에서는 지속적인 내부 교육을 통해 종사자의 전문성을 강화시키고 어르신들에게 최상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회의와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실무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많은 요양원이 투명성 있고 바른 운영을 하며 인식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요양원에 대한 색안경을 벗어주시고 열린 마음으로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초대석
    • 향기나는사람
    2021-01-03
  • 흙과불 도공의 혼 삼위일체 도자기 예술품
    로원도예 권태영 작가의 투각 청자 도자기에 혼을 넣는다. 이천을 대표로 하는 원적산 줄기에 이어진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원적로 133번길115에 위치한 로원도예(度希 권태영)가 조그마한 안내 간판만 우뚝 서 있는 가운데 예술감각이 숨쉬고 있는 로원도예 공방이 차지하고 있다. 도예공방에 들어서는 순간 벽에 걸려있는 낯익은 듯 한 외국인이 투각청자를 한국인에게 받아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는 사진은 다름 아닌 미국 카터 대통령과 연세중앙교회 윤석전담임목사님이 나란히 서있고 그 아래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청자 작품에 무언가의 글씨와 함께 자리매김 하고 있는 우화하고 청빈한 자태의 예술작품은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대통령에게 목사님이 전달한 로원도예 度希 권태영선생 작품이다.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과의 만남 도희(度希)권대영 선생은 약 10여년전에 한 사람이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서는 서성이다 공방으로 들어서면서 당시 전시장에 전시중인 청자 한 점을 가르치면서 가격을 물어와 100만원이라고 말하자 10점이 필요하니 가격을 싸게 해 달라고 요구해 1점당 10만씩을 깍아주겠다고 하니까 제작기간을 6개월로 하고 빳빳한 수표 2장을 계약금으로 내놓고 돌아가 반신반의 끝에 6개월의 납품기간을 약속하고 제작 작업에 돌입하였다. ▣청자투각작품이 마침내 백악관과 청와대에 입성하다. 하지만 뒤이어 도자기에 들어갈 문구가 영어로 쓰여 있어 자칫 실수를 우려 곧바로 전사업체에 의뢰하여 영문도 모르고 작품 활동에 심혈을 다해 제작 납품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뒤늦게 알게된 사실은 미국 백악관에 카터 대통령외 유명인사들에게 자신의 제품이 선물로 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이를 계기로 인연이 된 목사님과의 인연으로 인하여 청와대 이명박대통령 재임시절에 청자작품이 납품하였고 뒤 이에 박근혜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청자작품을 선물용으로 3점을 완성 2점을 전달 할 수 있는 영예를 얻었고 나머지 1점은 가보로 소장하고 있으며 항상 목사님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밝힌다. 박근혜대통령소장 도자기문구는 “선진들의 땀과 피로 세운 대한민국 배경 삼으시고 솔로몬의 큰 지혜로 국민통합이루시고 무궁화 꽃 활짝핀 통일나라이루소서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 연세중앙교회 담임목사 윤석전” ▣흙이 좋고 먹고 살기위한 작품 활동이 도자기 예술로 승화 度希권대영선생은 일찍이 도자기의 마을인 신둔면 남정리에서 출생하여 어린시절 부터 늘 가깝게 할 수 있는 흙으로 인해 흙과 친해졌고 이어서 먹고 살기위해 흙을 이용한 도자기 작품에 심취하여 무작정 도자기업종에 젊음을 받치며 나름대로 자신만이 독특한 작품을 예술성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연구 개발에 몰두하면서 비로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을 하였다. ▣도자기는 오묘한 흙과 불 도공의 혼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신비의 세계 도자기는 우연히 얻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단지 도공의 피나는 노력과 예술성 감각과 정성을 다한 혼을 작품에 불어 넣을 때만이 흙과 불의 오묘한 조화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진정한 도자기의 작품이 탄생한다는 신념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상업욕심에 의해 대량생산으로 작품을 생각한다면 이는 예술품이 아닌 단지 상품의 역할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저는 항상 도자기 작업을 하기위한 마음가짐 을 위해 무엇보다 욕심을 버리고 작품 한 점 한 점에 대해 순수한 자연의 섭리와 함께 최선을 다한 정성으로 내 자신이 예술품에 살아있는 혼을 불어 넣는다는 신념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자기는 양질의 재료와 함께 좋은 형태를 만드는 성형이 중요합니다. 형태가 나와야 형태에 따라 무슨 문양과 음각 양각을 넣을 것인가 결정이 되며 아울러 청자의 멋은 색 형태 조각으로 비취색이라 하는 신비스러운 색에서 우러나는 품위와 형태의 오명한 각선미가튼 신비함과 오묘함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상감청자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요즈음 작품의 고급화를 위해 이중투각 작품에 심취하여 짧게는 한 점에 1주일 길게는 2개월에서 3-4개월 걸리는 작품도 있고 좀 더 특색 있는 작품을 하려하면 재료를 제때 구하지 못해 6개월 1년을 걸리는 경우도 있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귀 뜸 한다. ▣비로소 도자기 도공으로 인정받다. 어린시절부터 흙을 좋아했고 더불어 생활을 하다보니 도자기 세계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80년도에 토정 홍재표선생님께 물레수업을 사사받았고 형태와 선에 대해 국민대 김익영교수님 지도아래 배웠고 유약은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를 수료하면서 많은 것을 깨우쳤습니다. 1980년도 도예입문하여 1988년제10회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출품 1989년롯데백화점3회개인전 1990년동경전시회 1993년 전국민예품전시회출품 1995년10월 마침내 로원요를 설립하여 2015년2월26일 한국예술문화 전통도예투각명인으로 한국예총명인협회로 부터 인증을 받았다. 2008년12월25일부터 29일 일본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전시 2009년 5월17일 제10회 클레이올림픽입선 9월23일부터28일 인사동서울미술관 전시전 12월 대한민국녹청자 현대도예 공모전입선 제14회 전주 전통공예전국대전입선 2010년 제15회전주 전통공예전국대전 특선 2011년제3회목포 도자기전국공모전 특선 2012년제17회전주 전통공예전국대전 특선 2013년 4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9월 서울경인미술관전시 2013년 제5회목포도자기전국대전 입선 2014년5월 제25회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대상 제35회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특별상2015년4월경기도기능경기대회은메달을 획득하였다./강민선기자
    • 초대석
    • 향기나는사람
    2021-01-03
  • 손끝으로 빚어내는 한국의 얼 손끝으로 빚어내는 한국의 얼
    대한민국 평화예술대전 국회의장상 한국석봉미술협회 대상 등 수상 도예인 자긍심과 2013/05/13 18:06 입력도천 서광윤 '서광윤요'대표 활활 타오르는 진홍빛의 강렬한 불꽃! 그 엄청난 온도 속에서 오늘도 한국 전통자기의 탄생을 알리는 생명의 소리가 도공의 인고의 열정과 함께 고고한 자태로 익어가며 서광윤 도예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이처럼 그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은 흙에서 도예가의 예술혼과 함께 결을 따라 빚어져 자기로 재탄생 되며, 15세 소년 서광윤 그의 가슴도 뜨겁게 매료시켜 지금의 도예가로 탄생시켰다.1970년 25세의 나이로 지순택요에 입문하여 10여 년 간의 배움의 열정으로 도림서원 성형장으로 6년, 신정희요 성형장으로 10년간의 도예인 으로서 입지를 다지며 1996년 지금의 이천시 신둔면 마교리에 위치한 서광윤요를 설립하는 가운데 현재까지 한국 전통 도자의 숭고한 맥을 이어오고 있다.한 덩이의 흙은 서 대표의 손길을 따라 물결처럼 흐르고 성난 파도와 같이 한 획을 이루는가 하면 때로는 잔잔한 호수와 같이 고요히 흐르며, 그의 매만짐 속에 절제와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도자로 피어나 솔 향을 머금을 장작가마 속 불꽃을 통해 영롱한 백자로, 한 점 한 점 차별화된 무늬의 매력을 지닌 진사로, 소박해보이지만 정갈하고 절제미가 있는 분청으로 물레질부터 성형, 조각, 유약 바르기, 장작가마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옛 전통방식으로 제작하고 잇다.특히 전통 장작가마 방식은 소나무 장작으로 몇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가마에 불을 지펴 1300도가 넘는 고온으로 한국도자의 견고함과 장인의 고집으로 더욱 차별화되고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도자를 제작하는데 핵심적이다. 겉모습을 비슷하게 모방 할 수 있겠지만, 장인의 손에서 더해지는 변치 않는 도자의 가치는 시중에 유통되는 일부 도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통을 이어가는 서 대표 만의 예술혼이 서려 있다.옛 전통을 이어감에 있어서 “요즘은 배우려는 사람도 드물지만, 대중의 관심은 생활자기를 비롯한 호기심에 그치고 있지 전통을 이어가려는 사람은 없다.” 라는 서 대표의 말속에 대중들은 며칠간 이뤄지는 축제의 퍼포먼스 처럼 여겨 소중한 우리 전통은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한편 이러한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서 대표는 전통을 지키면서 도자의 가치를 알리고자 더욱 다양한 작품활동과 대중과의 소통으로 연구 노력하는 가운데 지난 29일 한국신문방송기자연맹 주최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한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 전통 도예발전 공로에 있어서 대한민국 평화예술대전 국회의장상과 한국석봉미술협회 대상 등을 수상해 도예인으로서 자긍심과 위상을 드 높였다.또한, 일본 후쿠오카시 엘라홀 갤러리전과 장애인돕기 대구문화예술회관전, 장애우권익보호기금마련을 위한 도예장인전등 나눔을 통한 그의 행보는 도예발전에 기여하는 귀감이 되고 있다.앞으로도 서 대표는 아내, 자녀와 함께 꾸려가는 서광윤요를 “힘든 와중에도 조용히 도움을 주는 터전으로, 실력과 자부심을 가진 전통도예의 뿌리깊은 계승자로, 나아가 세계인의 중심에 선 도예장인으로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 전하며 “조금더 밝아질 도자미래는 애호가 뿐만 아니라 한국도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도자미래의 밑거름이 될 것임을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 초대석
    • 향기나는사람
    2021-01-03

실시간 초대석 기사

  • .‘위기 청소년의 등대’ 여주 민들레 학교 김진명 교장
    집단 패싸움, 여고생들, 모범학생들로 변화 “학교에서 놀라워해…….”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교장과 20년 동안 새마을 운동 함께해……. 위기 청소년들을 사랑으로 치유해 남을 돕는 자로 세우고파!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교장과 함께 새마을 운동하며 살아온 세월” 평소 위기의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우리지역에서 청소년들을 치유, 선도하는 기관이 어딘지 늘 궁금해 했다. 知人이 이천 치유 문화원 이진숙원장을 만나보라고 했다. 이천최고의 아이들의 상처치유 전문가라는 멘트와 함께……. 간신히 이천에서 위기의 청소년들을 음악, 관계를 통해 치유하고 있는 이 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저보다 더 열심히 뛰는 분을 소개해 드릴께요” 라며 여주 민들레학교 김진명 교장을 소개하였다. 여주대 건너편 여주기독교회관 內 1층 맨 끝 방에서 김 교장을 만났다. “가나안 농군학교를 김용기장로를 도와 새마을운동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지요. 68년 그의 나이 29세 때 ‘새마을 만세‘영화를 보고 새마을 운동에 매료됐다는 그는 직장(삼풍건설)을 사직하고 서울 하일동에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교장을 찾아가 함께 일하게 해달라고 떼를 썼다. 김용기 교장은 신원보증서…….10여 가지 서류를 구비해오라고 했다. 까다로우면 안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말씀하신 것 이었는데 김진명씨는 바로 준비해 제출하였다. 새벽 4;30분부터 밤 10시까지 입소 생들의 정신과 행동을 개혁하는 고된 일과 속에 사감을 맡아 일을 했다. 월급도 없이 가나안 농군학교가 좋아서 헌신했다. 김용기원장과 나라를 사랑하는 신념이 맞아 자기희생을 한 것이었다. “김용기교장은 국민들의 정신적 지도자이셨지요. 다섯 자녀들도 대단했어요.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말씀에 토를 다는 자녀가 없었어요. 외출 時는 꼭 보고하고 나가고, 무얼 사라고 돈을 받으면, 사고 나서 100원 잔돈까지 아버지에게 반납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김용기 원장이 어느 날 김진명씨를 불렀다. 않은 상태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며(김 원장은 심각한 얘기를 할 때는 몸을 좌우로 흔드는 버릇이 있었다) 김 원장이 말했다.“자네 가나안 농장 내 가나안 교회 전도사 딸과 결혼의향이 있는가?” 평소 한결같이 성실, 정직했던 김진명씨를 인정했기에 중매를 섰던 것이었다. 그때는 그분의 말씀이 법으로 알았었다. “그때 그 신부가 지금의 처입니다” 결혼 전에는 월급도 없이 봉사했으나 결혼 후에는 월60만원씩 생활비를 받았다. 자녀 둘은 잘 자라 딸은 출가하고 아들은 건국대 입학사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어제 아들이 다니러 와서 ‘아버님 돈 걱정 마시고 ’민들레 학교‘열심히 하세요!”라고 격려해주고 올라갔어요. “목회를 하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 같아 사직” 김진명씨는 김용기 교장이 돌아가신 후 양평에서 목회를 했던 적이 있다. 목회를 하던 어느 날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목회를 그만두었다. “나 자신도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서 습관적인 목회를 했었어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 이었죠” 그 후 그는 위기의 청소년들을 위한 “민들레학교”를 알게 되면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마음속에 묻혀 있던 그의 ‘이웃사랑’정신은 ‘위기의 청소년 사랑’으로 바뀌어 불타올랐다. 올 3월에 문을 연 여주 민들레 학교(단기특별교육 대안학교)는 중, 고교에서 징계가 결정된 아이들을 일주일미만의 단기교육(현재는 5일)을 시켜 변화시킨 후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는 ‘교육청 지정 단기대안학교’이다. 교육을 받아 변화 받는 조건으로 퇴학, 등교정지 등의 중징계를 철회시켜 주는 것이다. 본부는 수원에 있으며 수원, 이천, 화성, 양주, 구리, 여주에 지역 학교가 있다. 지도교사는 강의료를 받지 않는 순수 자원봉사교사들이며 지도과목 으로는 김길성 교사(고려대법전공) ‘생활 속 법질서’, 박문신 교사(경희대 외교과,와세다 대학원지방자치과,콜로라도 주립 대) ‘인문학’ 김태희(청주사범본과) ‘인성교육’, 김선옥(원주대 유아교육과) ‘디스크 강의“ 김영신(경희대 사회복지학과) ‘청소년 심리치료’ 김미영 교사(여주 가정-성 폭력 상담소장) ‘가정, 성 폭력 상담’, 이진숙 교사(명지대,동원대 사회복지학과, 이천 치유 문화원 원장) ‘음악치유’, 이미희 교사(여주 금연 클리닉 센터장, 아주대 보건대학원) ‘금연교육’, 이인수 교사(성균관대, 장애인 인권문제 연구소장)’자기개발 프로그램‘ 구철희 교사 ‘청소년 범죄’ 이은향 교사(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여주 보건소 복지사)의 ‘청소년 정신’ 홍석영 교사(여주 민예총 사무국장)의 ‘문화예술과 건강한 삶’ 김혜정 교사(여주대 사회복지학과) ‘미술치유’ 등이 있다. 3월에 시작한 여주 민들레 학교는 지금까지 43명의 위기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학교로 복귀하였다. “집단 패싸움으로 처벌위기의 여학생들, 교육받고 모범학생으로 변해” 한번은 00경찰서 형사가 전화를 했다. 여학생들이 집단 패싸움을해 형사 처분과 학교처벌 다 받고 소년원으로 갈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면서... 결국 경찰, 학교, 민들레 학교 3자가 처벌보다는 착실한 계도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5일 동안 그들을 인격체로 대해줬어요. 문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믿어주면 변화됩니다. 이 아이들이 교육받고 학교로 돌아가 교무실에서 1시간을 울면서 선생님들께 사과와 고마움을 표하더래요.” 선생님 두 분이 저희사무실로 감사인사를 하려고 찾아 오셨더군요. 오셔서 어떻게 지도했기에 아이들이 저렇게 변화됐느냐고 물으셨지요. “ “‘한국의 폴포트 최성봉’처럼 위기의 청소년들이 우뚝 설수 있어야 나라의 미래가 밝아져…….” -민들레 학교의 미래 계획이 있다면…….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마련, 현재의 단기교육에서 중기, 장기 대안 학교 설립, 학생들에게 직업교육(미용, 예술, 웹디자인, 외국어, 간호 등 )을 시켜 당당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위기의 청소년들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국내 케이블 채널 tvN의 오디션 프로‘코리아 갓 탤런트’에 참가해 결승까지 오른 최성봉 군은 위기청소년들의 대표적 성공 사례이다.(미 CNN에 까지 보도 되 1000만 명 이상이 시청하였다.) 그는 3살 때 고아원에 버려져, 5세 되던 해에 매를 못 이겨 고아원을 탈출해 길거리, 공중화장실 등에서 잠을 자며 껌, 음료 등을 팔던 꿈을 잃은 길거리 불량소년이었다. 이름도 없었다. 아는 이 들은 그를 ‘야’ ‘이 새끼’라고 불렀을 뿐이었다. 사회를 원망해 나쁜 짓도 했었다고 고백하기도 한 그는 포장마차 아줌마의 따뜻한 관심으로 꿈을 갖게 되고 초, 중을 검정고시, 고교를 진학하게 되었다. 아줌마가 지어준 ‘지성’이란 이름을 사랑한다고 했다. 껌을 팔다가 나이트클럽에서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가수를 본 그는 노래에 대한 꿈을 갖게 되고 꿈을 향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디션 프로에 지원하라고 조언해준 어느 분 에게 감사한다고 하였다. 최 군에게는 포장마차 아줌마, 간간이 성악을 가르쳐준 이웃들, 오디션 프로를 알려준 멘토...착한 이웃들이 있었다. 우리는 제 2,3의 최성봉을 찾아내 그에게 공부와 꿈을 갖도록 해야 한다. 사회에서 그들이 설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멘토가 되고자 한다.
    • 초대석
    2011-09-03
  • 지적장애아들의 천국 ‘광주 소망의동산’
    향기나는 사람 30. 지적장애아들의 천국 ‘광주 소망의동산’ “쌍둥이 출산 꿈을 꾼 다음날 쌍둥이를 맡기러온 남자” “(취재가)버려진 아이들이 사랑받는 계기가 되기를...자신들은 칭찬받을일 없어...”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 노는 것이 소망” 이번 향기의 주인공은 참 힘들게 방문하게 되었다. “오른손이 모르게 선행을 해야 한다는 신념과, 양심에 비추어 자랑할 것 없는 봉사”라는 이유 때문. 몇 차례 거절을 당하고 포기했었다. 미련이 남은 채...,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신문에. “ ‘불편하게 삽시다’...깡통교회에 넘친‘비움의 사랑’”이란 기사(조선일보 7월27일자)를 보게 되었다.“현재 8천명이 넘는 전주 안디옥 교회가 미군이 버린 항공기 격납고를 교회로 사용하며, ‘교회가 가난해져야 사회가 부유해 집니다’라고 가르치며, 교회투자는 인색, 사회에는 교회예산의 60-70%를 써, 전주에서 시민들의 자랑이 되었다‘라는 기사였다” 이 기사를 보고 문자를 보냈다.“ ‘빛과 소금’은 커녕, 세상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전주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운 기사는 가뭄속의 단비와도 같습니다. 원장님(목사 사모)을 칭찬하지 않겠습니다. 어려운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조명해, 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는 기사를 쓰겠습니다.”라는 취지였다. 답변이 없었다. 하루 지나 전화를 했다. 다시 한 번, 칭찬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 간신히 방문했다. 실내에 들어가니, 22명의 아이들이 낮선 방문객을 주목했다. 대여섯 명이 목욕 중인지 벌거벗고 있었다. 청년들도 몇 명 있었는데, 홀딱 벗은 몸으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필자를 바라보았다. 그들 속에, 한 중년 부인이 어린 아이들을 씻기고 있었다. 방안에는 아이들의 대, 소변 냄새가 배어, 처음에는 힘이 들어 몰래 창문을 열곤 했다. 원장님은 웃으며 ‘우리 아기들이 대소변을 못 가려 매일 이렇게 씻겨야 해요“라며 거실 소파에 않으라고 했다. 솔직히 필자는 아이들의 어수선함, 비릿한 냄새...어지러웠다(몰래 창문을 열고 태연한척하느라 애를 먹었다.) 남편인 000목사는 필자와 인사하고는 자랑할 것 없다며, 폭우가 내리는 중에 집수리한다고 나가서 인터뷰 내내 몇 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밖에서 일만 했다. ★날아다니는 시한폭탄 ‘귀염둥이 막내’현수 초등하교 2년생 ’날아다니는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의 막내 현수가 유독 필자를 괴롭(?)혔다. 핸드폰, 카메라, 노트 모두 뺏고 그것도 모자라 필자의 주머니를 뒤져 모두 꺼내기 시작했다. 참다가 원장님에게 이르려는 찰라 ”우리 귀염둥이 막둥이예요. 머리도 제일 좋아요“라고 하는 박원장의 자랑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장은 ’귀염둥이 막내‘를 필자에게 떼어 내 끌어 않았다. ’휴! 살았다‘하는 순간 ’귀염둥이 시한폭탄‘은 몸부림치며 원장님의 품속을 탈출해 아까 미처 뒤지지 못한 필자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현수 IQ가 65나 되요“ 현수는 3세 때 엄마가 버리고 도망가, 26세 된 아빠가 데려다 놓고 연락이 끊겼다. 현수 아빠는 장애인 아들을 이용해 핸드폰 요금할인을 받고, 차량구입 시 할인을 받았으나, 아버지의 도리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현수는 식탐이 있어 토할 때까지 먹는다. 토하면 토사물을 다시 주워 먹곤 한다. 늘 감독이 필요한 아이다. 수시로 조금씩 오줌을 바지에 지린다. 참고로 22명중 네 명은 대소변을 못 가려 기저귀를 차고, 3명은 옷에 오줌을 수시로 싼다. 덩치가 큰, 조금 전 당당히 벌거벗고 돌아다니던 청년(영현)이 다가왔다. 필자 귀에다 소곤거리며 TV를 켜달라고 졸랐다.(당시 폭우로 케이블 선에 문제가 생겨 화면을 볼 수 없었다) 나이를 물으니 다섯 손가락을 편다. “영현 이는 처음 왔을 때 매일 누가 부른다며 나가서 찾으러 다니곤 했어요. 지금은 다 낳았지만...(필자가 보기에도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아 평안 해진 것으로 보여졌다.) ★채린이(18)는 ‘피카소’부모가 이사 할 때, 빈집에 버리고 가... 채린이는 그림을 잘 그린다. 부모(이혼)가 이사하며, 빈집에 아이만 버려두고 이사 갔다가 ,이웃에 의해 발견되어 이곳에 오게 되었다. 자신의 다리를 자해하곤 해 뒤 종아리가 늘 시퍼렇다. 발작을 종종 일으키고 분노를 잘해 유리를 깨곤 한다. 발작이 심해 입원치료를 할 때 부모의 동의가 필요해 엄마를 찾아 입원시켰으나 치료비를 낼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 채린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두 장이 예뻐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한 장은 ‘동기’ 다른 한 장은 ‘민지’라고 이름을 썼다. 원장님도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이 부모들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저런 죄 없는 아이들을 낳아놓고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하고 말예요.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과 살다보니, 버린 부모들을 이해하게 됐어요. 오죽하면 버렸을까? 라고 말이죠” 박원장이 말했다. -큰 아이들을 씻길 때나, 다 큰애들이 홀딱 벗고 돌아다닐 때 민망하지 않으세요? “얘들 3살(정신연령)짜리 애기들이예요. 모두 절 친엄마로 알고 있어요. 민망하긴요” ★침 뱉던 동네 할머니들, 시설 넓히라며 쌈짓돈 천만 원을 가져와... -이 동네에 처음 정착할 때 어려움이 없으셨는지요? “99년 10월 시작 시 아이들이 4-5명임에도 불구 무척 반대들 하셨지요. 심지어 예수쟁이들은 재수 없다며 얼굴에 침을 뱉으시는 분도 있었고요...참으로 놀랍게도 몇 년을 지켜보시더니 동네 할머니들이 찾아오셔서 천만 원을 내미시며 ‘집이 너무 좁으니 더 늘려라. 우리 할머니들 돈 다 모은거다. 믿으려면, 너희처럼 예수를 믿어야 한다’ 라고 칭찬까지 하시는 거예요. 수시로 농사지으신 것도 갖다 주시고 격려까지 해주시는 팬들이 되셨어요. 주신돈은 얼마 전에 겨우 갚아드렸어요“ ★휴가를 정박아들과 보내는 조억동 광주 시장 -도움주시는 분들은? “목욕,이.미용,봉사,수리...오시는 분들이 계셔요.‘아름세‘’동그라미‘,분당 가나안 교회’‘SK C&C''여성 향군회’,초월읍 농협 부녀회‘’광주 시민교회‘’등대‘등의 단체들이 정기적으로 오셔서 도와주고 계셔요. 이천 조태균회장님이 가스지원을 해주시고요. 조억동 광주시장님도 1년이면 3-4차례 다녀가시고요. 지난해엔 개인 휴가 때 우리 집에 다녀가시기도 했고요. 의원 시절 몰라서 못 도와 늘 미안하다고 하세요” -시장님이 휴가를 이곳으로 오셨었다고요? “당시엔 휴가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이곳 담당직원이 휴가였다고 해서 알았어요. 토마토를 5박스나 가져오셨어요. 힘들 땐 언제나 전화 하라고 하셔서, 언젠가 쌀이 떨어졌기에 부득이 전화 드렸더니 쌀을 보내주셨어요. 정말 따뜻한 분입니다” 박원장은 처녀 때 간호사로 일했었고 성남복지관에서 아동교사로도 일했다. 남편 김선국 목사는 예전에 인테리어 사업과 도로공사에 근무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한때 교회생활을 할 때 정박아들을 돌보겠다고 기도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살면서 잊어버렸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망하곤 하는 것이었다. 인테리어 사업도, 친구 조명회사에 일하면 그 회사도 부도나고, 절대로 부도가 날 수 없는 국공립 유치원에 취업 했을 때도 타 용도로 전환되어 문을 닫았다. “‘여보 우리가 사업을 해도 망하고, 남의 회사에 가면 그 회사가 망하니 더 이상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같이 죽자!’ 라며 남편이 저를 부둥켜안고 운적도 있었어요” ★ 불치병이 아이들 돌보면서 저절로 사라져... 그러다가 영성이 깊은 어느 목사를 만났는데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 길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하시고는 ‘돌아갈 차비가 없다고 하나님이 알려주셨다’며 차비를 주시더군요. 저희 부부는 정말 차비가 없었어요. 그때 장애 아이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됐어요.“ 제가 늘 목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차병원에 가니 고칠 수 없는 ‘갑상선 항진증’이라며 교과서에도 없는 병이라며 치료를 포기하시더군요. 목안에 포도송이처럼 종양이 계속 자라났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던 어느 날 낳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 즈음 아는 분이 손에 돈을 꼭 쥐어주며 ‘이 돈은 꼭 당신을 위해 써라’라며 주더군요.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다가 차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어요.” ‘예수님이 치료하셨군요’ 라며 의사가 축하한다더군요. 검사비가 얼마 나왔는지 아세요? 딱 26만원이었어요! 감사해서 많이 울었어요“ ★함께 죽겠다며 돌아갔던 쌍둥이 아빠, 다시 돌아오니 반가워... “장애아이들 돌보기전엔 꿈속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거예요. 정말로 아픔을 느끼며…….어느 날은 쌍둥이를 낳는 꿈을 꾸었어요. 다음날 남자분이 쌍둥이를 데려오더군요. 장애가 너무 심해 거절했어요. 둘 다 않지도 먹지도, 대소변도 못 가리는 重症이니……. 이미 데리고 있는 애들도 감당을 못하고 있었으니, 받을 엄두가 안 났죠. 가다가 애들과 함께 죽는다며 데려 가대요. 가고나니 전날 밤 내가 꿈속에서 쌍둥이 난 것이 생각나면서 괴롭고, 그 애들이 친자식처럼 보고 싶은 거예요. 4일간 후회하며 ‘다시 그 아이들이 오면 제가 키울게요.’라고 했는데 4일후에 왔어요. 다른데 맡기려고 돌아다녔는데 모두 거절하더래요. 이번에도 안받아주면 진짜로 죽으려 했었대요.” “반갑더군요, 내 새끼를 그 사람한테 맡겼던 것처럼 미안하기까지 했어요. 이 아이들 모두 꿈속에서 배 아파 낳은 내 새끼들이예요.” -당시 쌍둥이 상태는 어땠나요? “정말 아빠가 맡지 못하는 게 이해가 됐어요. 정신, 신체장애 1급은 물론, 둘 다 울면 2시간이상이고, 폐렴으로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했고, 경기(驚氣)가 수시로 일어나곤 했죠. 지금은 잔병이 떠나고 많이 좋아졌어요. 저와 눈이 마주치면 천사 같은 눈웃음을 지어요. ★“고아들을 친자식보다 더 아끼고, 친자식은 늘 뒷전이었던 사람” 전화로 소망의 동산을 9년간이나 매주 돌봐온 ‘동그라미 봉사단’ 서영순 회장을 연결해보았다. “‘소망의 동산’ 아이들은 정말 복 받은 아이들이예요. 친자식도 그만큼 돌볼 수 없지요. 친자식들이 늘 뒷전 이었던걸 기억합니다. 그런 곳 이니까 저희들이 9년간이나 그곳으로 봉사를 나가죠!” -꿈이 있으시다면? “이 아이들을 마당에서 뛰어 놀게 하고 싶어요”
    • 초대석
    2011-09-03
  • 지적장애아들의 천국 ‘광주 소망의동산’
    향기나는 사람 30. 지적장애아들의 천국 ‘광주 소망의동산’ “쌍둥이 출산 꿈을 꾼 다음날 쌍둥이를 맡기러온 남자” “(취재가)버려진 아이들이 사랑받는 계기가 되기를...자신들은 칭찬받을일 없어...”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 노는 것이 소망” 이번 향기의 주인공은 참 힘들게 방문하게 되었다. “오른손이 모르게 선행을 해야 한다는 신념과, 양심에 비추어 자랑할 것 없는 봉사”라는 이유 때문. 몇 차례 거절을 당하고 포기했었다. 미련이 남은 채...,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신문에. “ ‘불편하게 삽시다’...깡통교회에 넘친‘비움의 사랑’”이란 기사(조선일보 7월27일자)를 보게 되었다.“현재 8천명이 넘는 전주 안디옥 교회가 미군이 버린 항공기 격납고를 교회로 사용하며, ‘교회가 가난해져야 사회가 부유해 집니다’라고 가르치며, 교회투자는 인색, 사회에는 교회예산의 60-70%를 써, 전주에서 시민들의 자랑이 되었다‘라는 기사였다” 이 기사를 보고 문자를 보냈다.“ ‘빛과 소금’은 커녕, 세상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전주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운 기사는 가뭄속의 단비와도 같습니다. 원장님(목사 사모)을 칭찬하지 않겠습니다. 어려운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조명해, 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는 기사를 쓰겠습니다.”라는 취지였다. 답변이 없었다. 하루 지나 전화를 했다. 다시 한 번, 칭찬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 간신히 방문했다. 실내에 들어가니, 22명의 아이들이 낮선 방문객을 주목했다. 대여섯 명이 목욕 중인지 벌거벗고 있었다. 청년들도 몇 명 있었는데, 홀딱 벗은 몸으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필자를 바라보았다. 그들 속에, 한 중년 부인이 어린 아이들을 씻기고 있었다. 방안에는 아이들의 대, 소변 냄새가 배어, 처음에는 힘이 들어 몰래 창문을 열곤 했다. 원장님은 웃으며 ‘우리 아기들이 대소변을 못 가려 매일 이렇게 씻겨야 해요“라며 거실 소파에 않으라고 했다. 솔직히 필자는 아이들의 어수선함, 비릿한 냄새...어지러웠다(몰래 창문을 열고 태연한척하느라 애를 먹었다.) 남편인 000목사는 필자와 인사하고는 자랑할 것 없다며, 폭우가 내리는 중에 집수리한다고 나가서 인터뷰 내내 몇 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밖에서 일만 했다. ★날아다니는 시한폭탄 ‘귀염둥이 막내’현수 초등하교 2년생 ’날아다니는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의 막내 현수가 유독 필자를 괴롭(?)혔다. 핸드폰, 카메라, 노트 모두 뺏고 그것도 모자라 필자의 주머니를 뒤져 모두 꺼내기 시작했다. 참다가 원장님에게 이르려는 찰라 ”우리 귀염둥이 막둥이예요. 머리도 제일 좋아요“라고 하는 박원장의 자랑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장은 ’귀염둥이 막내‘를 필자에게 떼어 내 끌어 않았다. ’휴! 살았다‘하는 순간 ’귀염둥이 시한폭탄‘은 몸부림치며 원장님의 품속을 탈출해 아까 미처 뒤지지 못한 필자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현수 IQ가 65나 되요“ 현수는 3세 때 엄마가 버리고 도망가, 26세 된 아빠가 데려다 놓고 연락이 끊겼다. 현수 아빠는 장애인 아들을 이용해 핸드폰 요금할인을 받고, 차량구입 시 할인을 받았으나, 아버지의 도리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현수는 식탐이 있어 토할 때까지 먹는다. 토하면 토사물을 다시 주워 먹곤 한다. 늘 감독이 필요한 아이다. 수시로 조금씩 오줌을 바지에 지린다. 참고로 22명중 네 명은 대소변을 못 가려 기저귀를 차고, 3명은 옷에 오줌을 수시로 싼다. 덩치가 큰, 조금 전 당당히 벌거벗고 돌아다니던 청년(영현)이 다가왔다. 필자 귀에다 소곤거리며 TV를 켜달라고 졸랐다.(당시 폭우로 케이블 선에 문제가 생겨 화면을 볼 수 없었다) 나이를 물으니 다섯 손가락을 편다. “영현 이는 처음 왔을 때 매일 누가 부른다며 나가서 찾으러 다니곤 했어요. 지금은 다 낳았지만...(필자가 보기에도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아 평안 해진 것으로 보여졌다.) ★채린이(18)는 ‘피카소’부모가 이사 할 때, 빈집에 버리고 가... 채린이는 그림을 잘 그린다. 부모(이혼)가 이사하며, 빈집에 아이만 버려두고 이사 갔다가 ,이웃에 의해 발견되어 이곳에 오게 되었다. 자신의 다리를 자해하곤 해 뒤 종아리가 늘 시퍼렇다. 발작을 종종 일으키고 분노를 잘해 유리를 깨곤 한다. 발작이 심해 입원치료를 할 때 부모의 동의가 필요해 엄마를 찾아 입원시켰으나 치료비를 낼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 채린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두 장이 예뻐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한 장은 ‘동기’ 다른 한 장은 ‘민지’라고 이름을 썼다. 원장님도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이 부모들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저런 죄 없는 아이들을 낳아놓고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하고 말예요.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과 살다보니, 버린 부모들을 이해하게 됐어요. 오죽하면 버렸을까? 라고 말이죠” 박원장이 말했다. -큰 아이들을 씻길 때나, 다 큰애들이 홀딱 벗고 돌아다닐 때 민망하지 않으세요? “얘들 3살(정신연령)짜리 애기들이예요. 모두 절 친엄마로 알고 있어요. 민망하긴요” ★침 뱉던 동네 할머니들, 시설 넓히라며 쌈짓돈 천만 원을 가져와... -이 동네에 처음 정착할 때 어려움이 없으셨는지요? “99년 10월 시작 시 아이들이 4-5명임에도 불구 무척 반대들 하셨지요. 심지어 예수쟁이들은 재수 없다며 얼굴에 침을 뱉으시는 분도 있었고요...참으로 놀랍게도 몇 년을 지켜보시더니 동네 할머니들이 찾아오셔서 천만 원을 내미시며 ‘집이 너무 좁으니 더 늘려라. 우리 할머니들 돈 다 모은거다. 믿으려면, 너희처럼 예수를 믿어야 한다’ 라고 칭찬까지 하시는 거예요. 수시로 농사지으신 것도 갖다 주시고 격려까지 해주시는 팬들이 되셨어요. 주신돈은 얼마 전에 겨우 갚아드렸어요“ ★휴가를 정박아들과 보내는 조억동 광주 시장 -도움주시는 분들은? “목욕,이.미용,봉사,수리...오시는 분들이 계셔요.‘아름세‘’동그라미‘,분당 가나안 교회’‘SK C&C''여성 향군회’,초월읍 농협 부녀회‘’광주 시민교회‘’등대‘등의 단체들이 정기적으로 오셔서 도와주고 계셔요. 이천 조태균회장님이 가스지원을 해주시고요. 조억동 광주시장님도 1년이면 3-4차례 다녀가시고요. 지난해엔 개인 휴가 때 우리 집에 다녀가시기도 했고요. 의원 시절 몰라서 못 도와 늘 미안하다고 하세요” -시장님이 휴가를 이곳으로 오셨었다고요? “당시엔 휴가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이곳 담당직원이 휴가였다고 해서 알았어요. 토마토를 5박스나 가져오셨어요. 힘들 땐 언제나 전화 하라고 하셔서, 언젠가 쌀이 떨어졌기에 부득이 전화 드렸더니 쌀을 보내주셨어요. 정말 따뜻한 분입니다” 박원장은 처녀 때 간호사로 일했었고 성남복지관에서 아동교사로도 일했다. 남편 김선국 목사는 예전에 인테리어 사업과 도로공사에 근무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한때 교회생활을 할 때 정박아들을 돌보겠다고 기도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살면서 잊어버렸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망하곤 하는 것이었다. 인테리어 사업도, 친구 조명회사에 일하면 그 회사도 부도나고, 절대로 부도가 날 수 없는 국공립 유치원에 취업 했을 때도 타 용도로 전환되어 문을 닫았다. “‘여보 우리가 사업을 해도 망하고, 남의 회사에 가면 그 회사가 망하니 더 이상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같이 죽자!’ 라며 남편이 저를 부둥켜안고 운적도 있었어요” ★ 불치병이 아이들 돌보면서 저절로 사라져... 그러다가 영성이 깊은 어느 목사를 만났는데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 길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하시고는 ‘돌아갈 차비가 없다고 하나님이 알려주셨다’며 차비를 주시더군요. 저희 부부는 정말 차비가 없었어요. 그때 장애 아이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됐어요.“ 제가 늘 목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차병원에 가니 고칠 수 없는 ‘갑상선 항진증’이라며 교과서에도 없는 병이라며 치료를 포기하시더군요. 목안에 포도송이처럼 종양이 계속 자라났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던 어느 날 낳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 즈음 아는 분이 손에 돈을 꼭 쥐어주며 ‘이 돈은 꼭 당신을 위해 써라’라며 주더군요.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다가 차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어요.” ‘예수님이 치료하셨군요’ 라며 의사가 축하한다더군요. 검사비가 얼마 나왔는지 아세요? 딱 26만원이었어요! 감사해서 많이 울었어요“ ★함께 죽겠다며 돌아갔던 쌍둥이 아빠, 다시 돌아오니 반가워... “장애아이들 돌보기전엔 꿈속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거예요. 정말로 아픔을 느끼며…….어느 날은 쌍둥이를 낳는 꿈을 꾸었어요. 다음날 남자분이 쌍둥이를 데려오더군요. 장애가 너무 심해 거절했어요. 둘 다 않지도 먹지도, 대소변도 못 가리는 重症이니……. 이미 데리고 있는 애들도 감당을 못하고 있었으니, 받을 엄두가 안 났죠. 가다가 애들과 함께 죽는다며 데려 가대요. 가고나니 전날 밤 내가 꿈속에서 쌍둥이 난 것이 생각나면서 괴롭고, 그 애들이 친자식처럼 보고 싶은 거예요. 4일간 후회하며 ‘다시 그 아이들이 오면 제가 키울게요.’라고 했는데 4일후에 왔어요. 다른데 맡기려고 돌아다녔는데 모두 거절하더래요. 이번에도 안받아주면 진짜로 죽으려 했었대요.” “반갑더군요, 내 새끼를 그 사람한테 맡겼던 것처럼 미안하기까지 했어요. 이 아이들 모두 꿈속에서 배 아파 낳은 내 새끼들이예요.” -당시 쌍둥이 상태는 어땠나요? “정말 아빠가 맡지 못하는 게 이해가 됐어요. 정신, 신체장애 1급은 물론, 둘 다 울면 2시간이상이고, 폐렴으로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했고, 경기(驚氣)가 수시로 일어나곤 했죠. 지금은 잔병이 떠나고 많이 좋아졌어요. 저와 눈이 마주치면 천사 같은 눈웃음을 지어요. ★“고아들을 친자식보다 더 아끼고, 친자식은 늘 뒷전이었던 사람” 전화로 소망의 동산을 9년간이나 매주 돌봐온 ‘동그라미 봉사단’ 서영순 회장을 연결해보았다. “‘소망의 동산’ 아이들은 정말 복 받은 아이들이예요. 친자식도 그만큼 돌볼 수 없지요. 친자식들이 늘 뒷전 이었던걸 기억합니다. 그런 곳 이니까 저희들이 9년간이나 그곳으로 봉사를 나가죠!” -꿈이 있으시다면? “이 아이들을 마당에서 뛰어 놀게 하고 싶어요”
    • 초대석
    2011-09-03
  • 이천.여주가 낳은 ‘라이징 스타’ 가수 조현자’
    이천.여주가 낳은 ‘라이징 스타’ 가수 조현자’ “바보야는 5층 석탑이 이천 시민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깃들인 노래” “여주 출신 저명작사가 정해일씨가 발탁,'작곡가 정진성씨와 함께 국민가수로 양성 중” ‘여주 “아리랑’은 정해일 작사가가 5 년간 독특한 가수를 찾다가, 조현자에게 부르게해...”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가수 조현자씨의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모임 끝 무렵, 산만한 분위기에 순서가 있어 조현자씨가 노래를 불렀다. 깜짝 놀랐다. 첫째는 노래 실력에 놀랐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옛날 ‘바다가 육지라면’을 애절히 부르는 가수 조미미씨의 이미지와 창법은 국내 최정상의 주현미씨의 목소리와 흡사했다.(정말 CD를 구해 그녀의 노래 ‘바보야’와 ‘여주아리랑’을 매일 듣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들을수록 몰입케하는 매력이 있었다. 어느 가수의 노래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닌, 트롯을 자신만의 창법으로 한과 혼을 절규하듯 토해내는 그의 신들린 모습과 목소리 에서 “왜 이런 가수가 묻혀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박수를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프로답게 최선을 다해 부르는 열창에 또 감탄하였고 노래가 끝나고 주변에 인사를 하고 관객을 대하는 그녀의 겸손하고 예의바른 태도에서 또한번 가슴속에 각인되었던 가수였다. 그런 그녀가 자기만의 앨범을 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국내 최고 트롯가수 장윤정의 ‘목마른 사슴’, 나훈아의 ’좋았다 싫어지면‘ ’꿈속의 고향‘ ’너와나의 고향‘ 등 을 작곡하고 문주란의 “이대로 돌이 되어’ 등을 작곡한 대한민국 음악계의 대부인 정진성 작곡가,(한국전통가요진흥협회장, 음악저작권협회 선거관리위원장)...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와 장윤정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한국의 휘트니휴스톤‘이라고 불리는 무서운 신인가수 신혜의 '나 좀 봐요'를 작곡한 최강산 작곡가, 장윤정의 트위스트 REMIX의 송결 작곡가, 그 외 김학진, 정해일, 남일이 작곡가, 국내 최고의 편곡자인 김호남 등 국내 트롯계의 최고의 사단이 참여해 앨범제작에 참여함으로써, 조현자란 신인가수에 대하여 가요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지고 있다. -이번 음반의 특징은? “이번 앨범에 ‘여주아리랑’은 아름다운 여주 8경을 노래한 것이고 ‘바보야’는 일제가 약탈해간 이천 5층 석탑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곡으로, 한국적인 애잔한 정서를 노래해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함이 돋보이는 노래다. -전국무대에 서게 된 계기는? “2002년 KBS 도전 주부가요, 전국노래자랑, 기남방송의 ‘도전가요열전’ 대상 수상이 계기가 되었고 2011년 설봉창작가요제에서 ‘바보야’로 대상을 하게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앨범을 내면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는데? “노래가 좋아 노래에 미쳤었다. 어려움 속에서 노래하며 살아온 지난날이 떠올라 눈물, 아니 통곡이 나왔다. 힘든 인생 여정에서 나를 지탱시켜준 것은 노래였다. 저명하신 음악계의 대선배님들이 저의 노래를 인정해주고 앨범까지 내주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에 감사해서 나온 눈물이기도 했다.” -특히 여주가 낳은 (정진성 작곡가님과 30년 지기로) 국내 최고의 작사가인 여주출신의 정해일 작사가님께서 조연자씨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셨다던데... “5년전 여주 ‘남한강 가요제’ 행사때 심사위원장이셨던 정선생님의 눈에 띄어 그분의 소개로 가요계의 훌룡한 분들을 알게 되었고 그분이 아끼던 곡‘여주 아리랑’을 제게 주셨다. 이번 앨범을 내게 된 것도 그분의 아낌없는 지원덕분이었다. 그분은 여주 가남 출신 ‘각설이 타령왕 만득이’를 배출시키기도 하셨고 여주, 이천을 끔찍이 아끼시고 후배들을 위해 말없이 희생하시는 분이다. 한국 가요계의 잘나가는 분들은 모두 그분과 호형호제 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유명하신 분이다. 이번 앨범제작도 억대가까이 들어가야 하는데 모두 그분의 지인들이 그분의 권유를 받아들여 도와주신 덕분이다. /대담, 이계찬주필
    • 초대석
    2011-09-01
  • 이천.여주가 낳은 ‘라이징 스타’ 가수 조현자’
    이천.여주가 낳은 ‘라이징 스타’ 가수 조현자’ “바보야는 5층 석탑이 이천 시민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깃들인 노래” “여주 출신 저명작사가 정해일씨가 발탁,'작곡가 정진성씨와 함께 국민가수로 양성 중” ‘여주 “아리랑’은 정해일 작사가가 5 년간 독특한 가수를 찾다가, 조현자에게 부르게해...”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가수 조현자씨의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모임 끝 무렵, 산만한 분위기에 순서가 있어 조현자씨가 노래를 불렀다. 깜짝 놀랐다. 첫째는 노래 실력에 놀랐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옛날 ‘바다가 육지라면’을 애절히 부르는 가수 조미미씨의 이미지와 창법은 국내 최정상의 주현미씨의 목소리와 흡사했다.(정말 CD를 구해 그녀의 노래 ‘바보야’와 ‘여주아리랑’을 매일 듣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들을수록 몰입케하는 매력이 있었다. 어느 가수의 노래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닌, 트롯을 자신만의 창법으로 한과 혼을 절규하듯 토해내는 그의 신들린 모습과 목소리 에서 “왜 이런 가수가 묻혀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박수를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프로답게 최선을 다해 부르는 열창에 또 감탄하였고 노래가 끝나고 주변에 인사를 하고 관객을 대하는 그녀의 겸손하고 예의바른 태도에서 또한번 가슴속에 각인되었던 가수였다. 그런 그녀가 자기만의 앨범을 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국내 최고 트롯가수 장윤정의 ‘목마른 사슴’, 나훈아의 ’좋았다 싫어지면‘ ’꿈속의 고향‘ ’너와나의 고향‘ 등 을 작곡하고 문주란의 “이대로 돌이 되어’ 등을 작곡한 대한민국 음악계의 대부인 정진성 작곡가,(한국전통가요진흥협회장, 음악저작권협회 선거관리위원장)...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와 장윤정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한국의 휘트니휴스톤‘이라고 불리는 무서운 신인가수 신혜의 '나 좀 봐요'를 작곡한 최강산 작곡가, 장윤정의 트위스트 REMIX의 송결 작곡가, 그 외 김학진, 정해일, 남일이 작곡가, 국내 최고의 편곡자인 김호남 등 국내 트롯계의 최고의 사단이 참여해 앨범제작에 참여함으로써, 조현자란 신인가수에 대하여 가요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지고 있다. -이번 음반의 특징은? “이번 앨범에 ‘여주아리랑’은 아름다운 여주 8경을 노래한 것이고 ‘바보야’는 일제가 약탈해간 이천 5층 석탑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곡으로, 한국적인 애잔한 정서를 노래해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함이 돋보이는 노래다. -전국무대에 서게 된 계기는? “2002년 KBS 도전 주부가요, 전국노래자랑, 기남방송의 ‘도전가요열전’ 대상 수상이 계기가 되었고 2011년 설봉창작가요제에서 ‘바보야’로 대상을 하게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앨범을 내면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는데? “노래가 좋아 노래에 미쳤었다. 어려움 속에서 노래하며 살아온 지난날이 떠올라 눈물, 아니 통곡이 나왔다. 힘든 인생 여정에서 나를 지탱시켜준 것은 노래였다. 저명하신 음악계의 대선배님들이 저의 노래를 인정해주고 앨범까지 내주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에 감사해서 나온 눈물이기도 했다.” -특히 여주가 낳은 (정진성 작곡가님과 30년 지기로) 국내 최고의 작사가인 여주출신의 정해일 작사가님께서 조연자씨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셨다던데... “5년전 여주 ‘남한강 가요제’ 행사때 심사위원장이셨던 정선생님의 눈에 띄어 그분의 소개로 가요계의 훌룡한 분들을 알게 되었고 그분이 아끼던 곡‘여주 아리랑’을 제게 주셨다. 이번 앨범을 내게 된 것도 그분의 아낌없는 지원덕분이었다. 그분은 여주 가남 출신 ‘각설이 타령왕 만득이’를 배출시키기도 하셨고 여주, 이천을 끔찍이 아끼시고 후배들을 위해 말없이 희생하시는 분이다. 한국 가요계의 잘나가는 분들은 모두 그분과 호형호제 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유명하신 분이다. 이번 앨범제작도 억대가까이 들어가야 하는데 모두 그분의 지인들이 그분의 권유를 받아들여 도와주신 덕분이다. /대담, 이계찬주필
    • 초대석
    2011-09-01
  • 재임 중 마련해준 노숙자시설을 다시 찾은 유승우 전 시장
    주필과 차한잔을 나누며 5. 재임 중 마련해준 노숙자시설을 다시 찾은 유승우 전 시장 비 오는 월요일 오전10시경 ‘노숙자 대부’란 별명을 갖고 있는 ‘이천 작은 사랑의집’(노숙자들을 돌보는 시설)을 운영하는 구준모 목사로 부터 필자에게 연락이 왔다. “잠시 차 한 잔 나누며 상의드릴 이야기가 있어” 평소에 불우한 노숙인 들을 가족처럼 섬기는 목사님 내외분의 희생적 봉사에 늘 감사했던 터라 주저 없이 달려갔다. 가보니 목사님과 유승우 前시장(이하 유시장으로 호칭)이 담소를 나누며 계셨다. “지나가다 노숙자들의 안부나 근황이 궁금해서 잠시 들려봤어요, 그런데 여기 웬일로?”라고 유시장이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속으로 잘됐다 싶었다. 노숙자 시설을 마련해준 유시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늘 갖고 있던 터였기에 차제에 감사를 표하고, 목사님의 수고에 대한 인사도 드리고 싶은 터였기에……. “옛날에 남천 공원자리는 시유지이긴하지만 테니스를 치던 자리였지요. 저는 그 자리를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테니스회원들은 설봉공원에 체육시설을 마련해주기로 하고 공원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노숙자들이 모여들더군요. 라고 유시장이 회고한다. -(구 목사에게) 목사님과 노숙자들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죠? “젊은 전도사시절 추운 겨울, 새벽기도를 가다가 길가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를 보았는데, 예배시간이 다되고 제가 예배 인도자라서 교회 예배를 마치고 와보니 동사하셨더군요. 그때 양심적 괴로움이 있었는데 우리교회 옆 남천공원 노숙자들이 강추위에 그대로 자는 것을 보고 교회 안으로 불러 추위를 피하도록 한 것이 인연이 되었어요. 당시 유시장님께서 교회 내에서도 혹독한 추위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난방, 화장실, 부엌, 목욕실 등을 마련해 주셔서 오늘날 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유 시장에게) 당시 왜 이런 시설을 준비해주셨는지? “미국 백악관 앞에를 가도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서울역에도 있고요. 시설로 인도해 노숙자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들이 있습니다. 사각지대도 인정하고 돌봐야할 책임이 지자체에 있습니다. 미국 정부에서도 백악관 앞에 있는 노숙자들을 식사를 제공하는 등 현실 속에서 돌보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조치를 취한 것이고 이렇게 돌보시는 목사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구 목사에게) 노숙인 들의 근황은? “약 6년 전에 이시설이 열렸는데 지금은 동사무소, 파출소에서 안내해 오기도 합니다. 평균 7-9명이 늘 상주하지요. 술 안 먹고 일해 저축하는 분들만 모시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잘 호응하는 분들은 10-20%정도입니다. 술 먹는 사람들도 부단히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돈을 모아 자립에 성공하는 분들이 있어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유시장에게) 재임시절 어려운 이웃들에게 아낌없는 지원들을 하셨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의 쌀독설치, 러브하우스 건립시 시차원의 여러 협조 등 소외계층에 대한 여러 협조들에 대해서요.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었는데요…….오히려 여기 목사님께 제가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목사님과 사모님의 건강을 기원 드리겠습니다.” 대담 이계찬 주필‘유승우 前시장/구준모 목사
    • 초대석
    2011-08-04
  • 재임 중 마련해준 노숙자시설을 다시 찾은 유승우 전 시장
    주필과 차한잔을 나누며 5. 재임 중 마련해준 노숙자시설을 다시 찾은 유승우 전 시장 비 오는 월요일 오전10시경 ‘노숙자 대부’란 별명을 갖고 있는 ‘이천 작은 사랑의집’(노숙자들을 돌보는 시설)을 운영하는 구준모 목사로 부터 필자에게 연락이 왔다. “잠시 차 한 잔 나누며 상의드릴 이야기가 있어” 평소에 불우한 노숙인 들을 가족처럼 섬기는 목사님 내외분의 희생적 봉사에 늘 감사했던 터라 주저 없이 달려갔다. 가보니 목사님과 유승우 前시장(이하 유시장으로 호칭)이 담소를 나누며 계셨다. “지나가다 노숙자들의 안부나 근황이 궁금해서 잠시 들려봤어요, 그런데 여기 웬일로?”라고 유시장이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속으로 잘됐다 싶었다. 노숙자 시설을 마련해준 유시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늘 갖고 있던 터였기에 차제에 감사를 표하고, 목사님의 수고에 대한 인사도 드리고 싶은 터였기에……. “옛날에 남천 공원자리는 시유지이긴하지만 테니스를 치던 자리였지요. 저는 그 자리를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테니스회원들은 설봉공원에 체육시설을 마련해주기로 하고 공원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노숙자들이 모여들더군요. 라고 유시장이 회고한다. -(구 목사에게) 목사님과 노숙자들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죠? “젊은 전도사시절 추운 겨울, 새벽기도를 가다가 길가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를 보았는데, 예배시간이 다되고 제가 예배 인도자라서 교회 예배를 마치고 와보니 동사하셨더군요. 그때 양심적 괴로움이 있었는데 우리교회 옆 남천공원 노숙자들이 강추위에 그대로 자는 것을 보고 교회 안으로 불러 추위를 피하도록 한 것이 인연이 되었어요. 당시 유시장님께서 교회 내에서도 혹독한 추위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난방, 화장실, 부엌, 목욕실 등을 마련해 주셔서 오늘날 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유 시장에게) 당시 왜 이런 시설을 준비해주셨는지? “미국 백악관 앞에를 가도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서울역에도 있고요. 시설로 인도해 노숙자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들이 있습니다. 사각지대도 인정하고 돌봐야할 책임이 지자체에 있습니다. 미국 정부에서도 백악관 앞에 있는 노숙자들을 식사를 제공하는 등 현실 속에서 돌보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조치를 취한 것이고 이렇게 돌보시는 목사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구 목사에게) 노숙인 들의 근황은? “약 6년 전에 이시설이 열렸는데 지금은 동사무소, 파출소에서 안내해 오기도 합니다. 평균 7-9명이 늘 상주하지요. 술 안 먹고 일해 저축하는 분들만 모시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잘 호응하는 분들은 10-20%정도입니다. 술 먹는 사람들도 부단히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돈을 모아 자립에 성공하는 분들이 있어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유시장에게) 재임시절 어려운 이웃들에게 아낌없는 지원들을 하셨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의 쌀독설치, 러브하우스 건립시 시차원의 여러 협조 등 소외계층에 대한 여러 협조들에 대해서요.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었는데요…….오히려 여기 목사님께 제가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목사님과 사모님의 건강을 기원 드리겠습니다.” 대담 이계찬 주필‘유승우 前시장/구준모 목사
    • 초대석
    2011-08-04
  • 구두 닦는 천사 ‘짱구’ 김문수
    향기 나는 사람 29, 구두 닦는 천사 ‘짱구’ 김문수 한살지능 여동생을 옆에 않히고, 구두 닦는 노총각 아내가 생기면 동생 돌보듯, 정말 잘해줄꺼예요! 복지관 식당에 장애인들 드시게 돼지 한 마리 기부할래요. 오전 일찍 증포동 주민자치위원회 고문으로 계신 이재룡씨 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애를 가진 여동생을 돌보다 장가를 못간 오빠가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필자가 찾던 그런 대상이었다. 주인공은 이천 미란다 호텔, 스파플러스 온천 내 신발장 옆에서 구두 코너를 올 6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김문수(53)씨. 오전 12시경 찾아갔다., 신발장 옆에 2평 남짓 구두 코너가 있었다. 안쪽으로 주인공의 여동생으로 보이는 김명숙(48)씨가 얌전히 않아 있었다. “제 여동생은 돌보기 참 쉬워요. 보세요! 보시다시피 저렇게 얌전히 않아 있잖아요” 정말 인터뷰하는 내내 말 한마디 없이 명숙씨는 구두 닦는 오빠만 바라보며 조용히 있었다. 명숙씨는 보건소(소사로 근무)에 근무하던 부친의 5남2녀 중 막내로 자랐다. 어려서부터 갖은 병을 앓았다. (갑상선암,전신지체,다운증후군.시력장애,가난으로 치아치료를 제때 못해 앞 이도 없다. 지금도 아주대 병원에 매달 가서 암 치료 약을 복용하고 있다.) 가족들 모두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 매일 김치로 멀겋게 죽을 쒀 먹었다. 그나마도 굶는 날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7형제 중 5째인 김문수씨는 초등학교3학년부터 35세경까지 길거리에서 신문팔이, 구두닦이를 했다. “그때 신문 한부에 50원했었어요! 커피 값이 150원정도 했나? 그때 길거리 형들은 대마초도 피우고 했지만 저는 그런 것 안했어요. 담배도 안 합니다” 그 후 부동산사무실에 보조로 다녔다. 명숙 이와 4평 남짓 남들이 공짜로 제공하는 방에 살아왔다. 그러다 1년 전에 LH임대주택 18평형을 월세 10만원에 국가로부터 제공받아 살고 있다. 김문수씨는 매사가 긍정적인 마음의 소유자다. 53세 되도록 결혼도 못했다. 7형제들 중에 잘사는 사람이 많아도 가장 어려운 처지인 자신이 명숙 이를 혼자서 돌보고 있다. 그걸 당연히 여기고 누구에게도 생활비를 요청하거나, 잠시라도 맡아달라고 하소연하지 않는다. “명숙이와 난 운명인가 봐요. 그래서 늘 얘기해요. 명숙아 우리 죽을 때까지 같이 살자!” 형제들이 돌아가며 돌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함께 돌봐요? 어느 날은 아침 일찍 전화가 왔어요.(?)째 형한테서 자기아들 결혼하는데 명숙이 데려오지 말고 혼자 오라고요. 명숙이가 창피하다는 거죠! 마음이 아파서 함께 안갔어요” “오히려 남들이 더 잘해줘요. 김백경 회장님은 회 먹으러 오라고 자주 부르시는데, 그때마다 ‘명숙이도 꼭 데려와 먹여라’라고 하시고, 이태용 농협조합장님 아시죠? 그분은 명숙 이와 있을 때 만나면 꼭 몇 만원씩 용돈을 주세요. ‘명숙이 잘 돌봐줘서 고맙다, 존경한다’ 라고 하시면서요. 송월타올 오도환사장님은 우리가 식당에서 밥 먹는 거 보면 꼭 우리 둘 밥값 내주시고 가셔요” 김문수씨는 자신과 동생에게 밥 한 그릇 사준사람들 모두 다 기억하고 감사해 하였다. “한번은 대명콘도 가다 양평 신내 서울해장국 집에 들어가 해장국을 동생과 같이 먹고 돈을 내려는데 나보고 ‘둘이 무슨 관계냐’고 물어요. 그래서 동생이라고 했더니, 밥값을 안 받겠대요. 받기는 커녕 만원과 엿을 잔뜩 싸주며 동생 잘 보라고 나한테 부탁을 하더라니까요! 처음 보는 사장님이...(김씨는 옛날 차 있을 때 동생을 좋은 물에서 목욕시키고 싶어 자주 대명 콘도 목욕탕에 데리고 다니곤 했다.)그런데 내 형제들은 용돈한번 준적 없어요. 시장에 가면 시장 아줌마들이 ‘명숙이 왔네! 하면서 꼭 떡이나 뭐라도 주고 싶어들 하세요.” 명숙이를 키워준 선한 이웃 최명례(52)씨,13년간 목욕,식사...뒷바라지 “근데 정말 감사한분이 있어요. 명숙 이를 키워준 분이죠. 13년간이나……. 내가 남자라 목욕탕엔 못 데려 가잖아요? 그분은 친딸처럼 목욕, 미용실, 옷가게, 병원 어디든 명숙 이를 데리고 다니며 돌봐줬어요. 목욕시키면 칫솔질까지 해주시곤 했지요. 저와 같이 늘 다니며 도와주니 사람들이 부부냐고 물어보곤 했어요. 그 여인이 궁금했다. 최명래(60년생), 한전 길 건너 LG대리점 안쪽 골목 제일교회 옆에서 ‘청하호프’를 한다고 했다. 한사코 좋은 일 한적 없다던 그녀를 이야기나 들어보자며 간신히 만나보았다. “13년 전에 식당일을 나갈 때 식당에 왔던 김문수씨와 명숙이를 만났어요.” 그때 김씨가 명숙이를 끔찍이 아끼는데 큰 감동을 받았다. 동정심에 그때부터 오빠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주게 되었다. 명숙씨를 집에 맡아 돌보다 저녁에 집에 데려다 주거나,1주에 1-2회 목욕을 시켜주고, 칫솔질까지 해주었다. 김씨가 일할 때는 최씨가 집에서 돌보다가 점심, 저녁을 먹이고 집에 데려다 주곤 했다. “저도 예전엔 땀 흘리는 사람과 밥도 안 먹을 정도로 깔끔 떨던 사람인데 아들 둘 키우다가 변했어요. 처음에 명숙이를 집에 데려오면 어린 자식들이 방으로 도망가곤 했지요. 똥냄새 난다면서...그러나 지금은 명숙이와 함께 밥 먹고 놀아주고 해요. 얼마 전엔 용문산으로 가족 여름휴가를 명숙이 데리고 함께 다녀왔어요. 명숙이 덕분에 자녀들의 인격이 성숙됐으니 감사하게 생각해요.” -명숙씨 돌보다 힘들었던 일은? “걔가 최근에 월경이 멈췄어요. 처음엔 비린내가 너무나 토할것 같아 힘들었어요. 어느 날은 너무 힘이 들어 친정 엄마에게 못 돌보겠다고 하소연 하니 ‘명숙이 잘 돌보면 네 자식들 복받는다. 그러니 참고 돌봐라‘하시데요. 오빠가 너무 동생을 아껴서 어느 날 우리 집에서 목욕이 길어지면 안절부절 못해요? 빨리 데려 나오라고 안달을 하죠. 자신의 예쁜 동생이 아들이 둘이나 있는 제집에 오래 있는게 마치 토끼를 늑대 굴에 둔 것처럼 불안했나 봐요. 우리 아들들이 얼마나 착한데...“ 최씨는 남편 (조병수,52)이 함께 명숙이를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4형제 중 막내인 남편은 효자다. 84세 된 시어머니를 극진히 섬긴다. 아들, 며느리의 만류에도 시어머니는 폐품수집을 한다. 놀면 뭐하냐고...폐품이 쌓이면 건설 일을 하는 남편을 시도 때도 없이 당장 와서 실고 고물상에 넘기라고 호통을 치신다. 방수, 설비 기술자인 남편은 일하다가 바로 올수가 없는 상황임에도 와서 어머니가 모은 고물들을 고물상에 넘겨주고 간다. “시어머님이 편히 쉬시길 원하지만 쉬시라 권하면 벼락이 내려요. 이제 저희가 맞춰서 효도하기로 했어요. 누워서 대, 소변 못 가리는 어른들도 많은데 건강하시니 감사하죠.” “동생을 시설로 보내면 시집 오겠다’던 여자 있었죠” -(김문수씨에게)결혼은 왜 안했나요? “30대에 한번 사귄 적 있었는데 평일에는 매일 술을 사달라고 해서 술을 사주고 했는데 주말엔 다른 남자 만나러 가는 거예요. 양다리 걸쳤던 거죠. 그 후론 못 만나 봤어요.” -결혼하는데 명숙이가 걸림돌은 되지 않았나요? “동생을 시설로 보내야 시집오겠다던 여자도 있었지만...,명숙이를 시설에 보낼순 없어요. 숫깔질도 혼자 못하는 앤데 구박받으며 살게 할 순 없어요. 얼마나 착한데요. 돌보는 거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몰라서 그렇지....이제 집도 생겼으니 결혼을 하고 싶어요. 명숙 이를 이해해주는 여자가 나타날 거예요. 명숙이만 돌봐준다면 내가 혼자 나와 살아도 괜찮아요. 자녀가 딸려도 괜찮고…….” (아마도 집에 들어와서 명숙 이와 잘만 살아준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제가 동생을 돌봐 주는 것 보고 내게도 저런 오빠하나 있으면 원이 없겠다는 아줌마들이 많아요. 동생을 이렇게 돌봐주는 내가, 아내는 얼마나 아껴주겠어요. 아내가 생기면 정말 잘해줄 거예요.” -(2시간 남짓 지나는 동안 구두 닦아 달라는 손님이 1 명밖에 보이지 않아서 물었다) 한 달 수입은? “오늘(오후 1시 반 현재)은 15켤레를 닦았어요. 1켤레에 3천원 이니까,아침 6시부터 근무해 오후 6시20분경 끝내면, 하루 노동판에 나가는 수입이랑 비슷한데, 회사에 월세(70만원)내고, 집세 10만원 내고나면 입에 풀칠하는 정도예요. 회사에 들어간 보증금도 다 빌린 돈이라 갚아야하는데 ...” -이다음에 꿈이 있다면? “(웃으며) 명숙이 잘 돌봐주며 함께 살 부인 생기는 것이죠. 그리고 복지관 내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에 돼지 한 마리 기부하고 싶어요” 대담/정리 이계찬 주필
    • 초대석
    2011-08-03
  • 구두 닦는 천사 ‘짱구’ 김문수
    향기 나는 사람 29, 구두 닦는 천사 ‘짱구’ 김문수 한살지능 여동생을 옆에 않히고, 구두 닦는 노총각 아내가 생기면 동생 돌보듯, 정말 잘해줄꺼예요! 복지관 식당에 장애인들 드시게 돼지 한 마리 기부할래요. 오전 일찍 증포동 주민자치위원회 고문으로 계신 이재룡씨 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애를 가진 여동생을 돌보다 장가를 못간 오빠가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필자가 찾던 그런 대상이었다. 주인공은 이천 미란다 호텔, 스파플러스 온천 내 신발장 옆에서 구두 코너를 올 6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김문수(53)씨. 오전 12시경 찾아갔다., 신발장 옆에 2평 남짓 구두 코너가 있었다. 안쪽으로 주인공의 여동생으로 보이는 김명숙(48)씨가 얌전히 않아 있었다. “제 여동생은 돌보기 참 쉬워요. 보세요! 보시다시피 저렇게 얌전히 않아 있잖아요” 정말 인터뷰하는 내내 말 한마디 없이 명숙씨는 구두 닦는 오빠만 바라보며 조용히 있었다. 명숙씨는 보건소(소사로 근무)에 근무하던 부친의 5남2녀 중 막내로 자랐다. 어려서부터 갖은 병을 앓았다. (갑상선암,전신지체,다운증후군.시력장애,가난으로 치아치료를 제때 못해 앞 이도 없다. 지금도 아주대 병원에 매달 가서 암 치료 약을 복용하고 있다.) 가족들 모두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 매일 김치로 멀겋게 죽을 쒀 먹었다. 그나마도 굶는 날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7형제 중 5째인 김문수씨는 초등학교3학년부터 35세경까지 길거리에서 신문팔이, 구두닦이를 했다. “그때 신문 한부에 50원했었어요! 커피 값이 150원정도 했나? 그때 길거리 형들은 대마초도 피우고 했지만 저는 그런 것 안했어요. 담배도 안 합니다” 그 후 부동산사무실에 보조로 다녔다. 명숙 이와 4평 남짓 남들이 공짜로 제공하는 방에 살아왔다. 그러다 1년 전에 LH임대주택 18평형을 월세 10만원에 국가로부터 제공받아 살고 있다. 김문수씨는 매사가 긍정적인 마음의 소유자다. 53세 되도록 결혼도 못했다. 7형제들 중에 잘사는 사람이 많아도 가장 어려운 처지인 자신이 명숙 이를 혼자서 돌보고 있다. 그걸 당연히 여기고 누구에게도 생활비를 요청하거나, 잠시라도 맡아달라고 하소연하지 않는다. “명숙이와 난 운명인가 봐요. 그래서 늘 얘기해요. 명숙아 우리 죽을 때까지 같이 살자!” 형제들이 돌아가며 돌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함께 돌봐요? 어느 날은 아침 일찍 전화가 왔어요.(?)째 형한테서 자기아들 결혼하는데 명숙이 데려오지 말고 혼자 오라고요. 명숙이가 창피하다는 거죠! 마음이 아파서 함께 안갔어요” “오히려 남들이 더 잘해줘요. 김백경 회장님은 회 먹으러 오라고 자주 부르시는데, 그때마다 ‘명숙이도 꼭 데려와 먹여라’라고 하시고, 이태용 농협조합장님 아시죠? 그분은 명숙 이와 있을 때 만나면 꼭 몇 만원씩 용돈을 주세요. ‘명숙이 잘 돌봐줘서 고맙다, 존경한다’ 라고 하시면서요. 송월타올 오도환사장님은 우리가 식당에서 밥 먹는 거 보면 꼭 우리 둘 밥값 내주시고 가셔요” 김문수씨는 자신과 동생에게 밥 한 그릇 사준사람들 모두 다 기억하고 감사해 하였다. “한번은 대명콘도 가다 양평 신내 서울해장국 집에 들어가 해장국을 동생과 같이 먹고 돈을 내려는데 나보고 ‘둘이 무슨 관계냐’고 물어요. 그래서 동생이라고 했더니, 밥값을 안 받겠대요. 받기는 커녕 만원과 엿을 잔뜩 싸주며 동생 잘 보라고 나한테 부탁을 하더라니까요! 처음 보는 사장님이...(김씨는 옛날 차 있을 때 동생을 좋은 물에서 목욕시키고 싶어 자주 대명 콘도 목욕탕에 데리고 다니곤 했다.)그런데 내 형제들은 용돈한번 준적 없어요. 시장에 가면 시장 아줌마들이 ‘명숙이 왔네! 하면서 꼭 떡이나 뭐라도 주고 싶어들 하세요.” 명숙이를 키워준 선한 이웃 최명례(52)씨,13년간 목욕,식사...뒷바라지 “근데 정말 감사한분이 있어요. 명숙 이를 키워준 분이죠. 13년간이나……. 내가 남자라 목욕탕엔 못 데려 가잖아요? 그분은 친딸처럼 목욕, 미용실, 옷가게, 병원 어디든 명숙 이를 데리고 다니며 돌봐줬어요. 목욕시키면 칫솔질까지 해주시곤 했지요. 저와 같이 늘 다니며 도와주니 사람들이 부부냐고 물어보곤 했어요. 그 여인이 궁금했다. 최명래(60년생), 한전 길 건너 LG대리점 안쪽 골목 제일교회 옆에서 ‘청하호프’를 한다고 했다. 한사코 좋은 일 한적 없다던 그녀를 이야기나 들어보자며 간신히 만나보았다. “13년 전에 식당일을 나갈 때 식당에 왔던 김문수씨와 명숙이를 만났어요.” 그때 김씨가 명숙이를 끔찍이 아끼는데 큰 감동을 받았다. 동정심에 그때부터 오빠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주게 되었다. 명숙씨를 집에 맡아 돌보다 저녁에 집에 데려다 주거나,1주에 1-2회 목욕을 시켜주고, 칫솔질까지 해주었다. 김씨가 일할 때는 최씨가 집에서 돌보다가 점심, 저녁을 먹이고 집에 데려다 주곤 했다. “저도 예전엔 땀 흘리는 사람과 밥도 안 먹을 정도로 깔끔 떨던 사람인데 아들 둘 키우다가 변했어요. 처음에 명숙이를 집에 데려오면 어린 자식들이 방으로 도망가곤 했지요. 똥냄새 난다면서...그러나 지금은 명숙이와 함께 밥 먹고 놀아주고 해요. 얼마 전엔 용문산으로 가족 여름휴가를 명숙이 데리고 함께 다녀왔어요. 명숙이 덕분에 자녀들의 인격이 성숙됐으니 감사하게 생각해요.” -명숙씨 돌보다 힘들었던 일은? “걔가 최근에 월경이 멈췄어요. 처음엔 비린내가 너무나 토할것 같아 힘들었어요. 어느 날은 너무 힘이 들어 친정 엄마에게 못 돌보겠다고 하소연 하니 ‘명숙이 잘 돌보면 네 자식들 복받는다. 그러니 참고 돌봐라‘하시데요. 오빠가 너무 동생을 아껴서 어느 날 우리 집에서 목욕이 길어지면 안절부절 못해요? 빨리 데려 나오라고 안달을 하죠. 자신의 예쁜 동생이 아들이 둘이나 있는 제집에 오래 있는게 마치 토끼를 늑대 굴에 둔 것처럼 불안했나 봐요. 우리 아들들이 얼마나 착한데...“ 최씨는 남편 (조병수,52)이 함께 명숙이를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4형제 중 막내인 남편은 효자다. 84세 된 시어머니를 극진히 섬긴다. 아들, 며느리의 만류에도 시어머니는 폐품수집을 한다. 놀면 뭐하냐고...폐품이 쌓이면 건설 일을 하는 남편을 시도 때도 없이 당장 와서 실고 고물상에 넘기라고 호통을 치신다. 방수, 설비 기술자인 남편은 일하다가 바로 올수가 없는 상황임에도 와서 어머니가 모은 고물들을 고물상에 넘겨주고 간다. “시어머님이 편히 쉬시길 원하지만 쉬시라 권하면 벼락이 내려요. 이제 저희가 맞춰서 효도하기로 했어요. 누워서 대, 소변 못 가리는 어른들도 많은데 건강하시니 감사하죠.” “동생을 시설로 보내면 시집 오겠다’던 여자 있었죠” -(김문수씨에게)결혼은 왜 안했나요? “30대에 한번 사귄 적 있었는데 평일에는 매일 술을 사달라고 해서 술을 사주고 했는데 주말엔 다른 남자 만나러 가는 거예요. 양다리 걸쳤던 거죠. 그 후론 못 만나 봤어요.” -결혼하는데 명숙이가 걸림돌은 되지 않았나요? “동생을 시설로 보내야 시집오겠다던 여자도 있었지만...,명숙이를 시설에 보낼순 없어요. 숫깔질도 혼자 못하는 앤데 구박받으며 살게 할 순 없어요. 얼마나 착한데요. 돌보는 거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몰라서 그렇지....이제 집도 생겼으니 결혼을 하고 싶어요. 명숙 이를 이해해주는 여자가 나타날 거예요. 명숙이만 돌봐준다면 내가 혼자 나와 살아도 괜찮아요. 자녀가 딸려도 괜찮고…….” (아마도 집에 들어와서 명숙 이와 잘만 살아준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제가 동생을 돌봐 주는 것 보고 내게도 저런 오빠하나 있으면 원이 없겠다는 아줌마들이 많아요. 동생을 이렇게 돌봐주는 내가, 아내는 얼마나 아껴주겠어요. 아내가 생기면 정말 잘해줄 거예요.” -(2시간 남짓 지나는 동안 구두 닦아 달라는 손님이 1 명밖에 보이지 않아서 물었다) 한 달 수입은? “오늘(오후 1시 반 현재)은 15켤레를 닦았어요. 1켤레에 3천원 이니까,아침 6시부터 근무해 오후 6시20분경 끝내면, 하루 노동판에 나가는 수입이랑 비슷한데, 회사에 월세(70만원)내고, 집세 10만원 내고나면 입에 풀칠하는 정도예요. 회사에 들어간 보증금도 다 빌린 돈이라 갚아야하는데 ...” -이다음에 꿈이 있다면? “(웃으며) 명숙이 잘 돌봐주며 함께 살 부인 생기는 것이죠. 그리고 복지관 내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에 돼지 한 마리 기부하고 싶어요” 대담/정리 이계찬 주필
    • 초대석
    2011-08-03
  • 여주군수 민선1대 2대 재임 현 시가 100억 원대 재산탕진
    여주군수 민선1대 2대 재임 현 시가 100억 원대 재산탕진 박용국 여주새마을금고 이사장 전, 민선 1대 2대 여주군수 -농촌근대화 역군이자 선구자 역할 톡톡히 했다. -조합장 여주군수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 대담 : 정봉영 발행인 본지에서는 금주의 초대석을 기획시리즈로 연재 하고 있는 바 민선 초대에 이어 2대 여주군수로 재임 한 박용국 여주 새마을금고 이사장의 경영방침과 운영방침아래 조합원 상호 상생으로 토속금융의 상아탑을 이루기까지 과정을 정봉영발행인과의 대담으로 올바른 평가와 검증으로 조합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여주새마을금고의 미래와 발전 방향 문제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듣고자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1,주민들과 하나로 신문 독자 분들을 위해서 간단한 개인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1939년4월15일 여주군 점봉면 점봉리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여 우리나라 6,25사변 혼란기와 격변기에 점봉초교 여주중 여주농고 춘천공과대학(현 강원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 농업 농촌근대화역군이 되고자 농업에 투신하여 연구 개발하면서 농촌 근대화 역군이자 선구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생활하면서 여주농협 조합장에 출마 당선의 영예를 안았고 이어 1995년 민선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여주군수 초대선거에 출마하여 여주초대 군수로 당선 되면서 2대 군수를 역임 하였습니다. 2008년 여주새마을금고 이사장에 취임하여 명실공히 여주지역 토속금융의 대명사로 우뚝 서기 위해 금고 조합원들과 전 직원들이 합심단결 불철주야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박용국이사장 입니다. 2, 초대 민선 여주군수를 역임하셨는데 불구하고 현 여주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재임하시기 까지의 특별한 동기와 계기가 있으시다면 소개 해 달라? 우선 무엇 보다 부모 된 마음으로 자기 자식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죽어 가고 있는 광경에 처해 있을 때 과연 죽어 가는 자식을 바라보고만 있을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조합원들이 여주새마을 금고이사장을 맡아 어려운 시기를 넘겨 탄탄대로가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사장 추대를 하겠다고 하기에 승낙을 하였더니 결국 추대가 아닌 3명의 후보가 선거에 출마 당선되어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다. 3, 여주새마을 금고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운영과 경영 방침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는 진리와 교훈을 되새기며 매일 금고에서 발생되고 이뤄지고 있는 업무에 대해 직접 파악하고 대처하면서 상호 조합원 직원 고객과 함께 대화를 통해 서로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과 고객과 회원들에게 진정으로 감동 받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인사를 하자. 또한 직원들에게 평생직장이라는 신뢰와 믿음 속에 공부하는 자세로 업무에 임하라는 것이 제 방침이자 목표입니다. 4,여주새마을 금고 설립 이래 꾸준한 성장 원동력이 있다면? 여주 새마을 금고는 1980년 10월29일 5명을 규합 설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81년 발기인 총회를 개최 82년3월11일 초대 이사장에 박운한씨를 선임하고 본격적인 영업활동에 돌입하였으며 83년 자산1억원을 돌파하면서 법인설립인가를 받아 꾸준한 성장을 하였다. 물론 여주새마을금고가 오늘날 있기 까지는 무엇 보다 가장 큰 성장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여주군민들의 애향심에서 우러나오는 토속금융에 대한 사랑과 믿음 신뢰가 밑받침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10대 이사장으로 취임하기 전 자산506억원에서 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여주 토속 금융 기관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5, 민선 초대와 2대 여주군수를 역임하였는데 업적과 가장 힘들었던 사안은? 35%가 농업인구라는 점에서 잘사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경지정리사업과 농로포장사업 하천정리를 적극 추진하여 농업기반조성을 하였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취임전320여개 공장을 240여개 유치 실업자 감소에 기여 했으며 아름다운 관광여주를 만들기 위해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쳐 관광기반 인프라를 조성 관광 여주 틀을 마련하였습니다. 군수 재임 기간중에 추진한 강천면 부평리에 쓰레기 매립장 조성을 하기 위해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군청에 몰려와 1여년간 데모를 하면서 군수 화형식과 장례식 등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많은 갈등과 좌절을 느꼈던 순간 순간이 새삼스럽습니다. 6, 현재 부산저축은행권들 각종 탈법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 제2금융권 불신과 믿음에 대해 많은 우려를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한다면? 금융권들이 많이 산재되어 영업행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새마을 금고를 제외한 모든 금융권이 재정경제부 소관 부처의 지도 감독을 받고 있지만 정부의 핵심 부서인 행정안전부 소속의 금융 기관은 단 새마을 금고 뿐이란 점에서 무엇 보다 안전 합니다. 또한 전국 새마을금고 90조원 여,수신이 이뤄지고 있고 특히 각 금고별 여수신 480억원(자산)이상인 금고에 대해선 의무적으로 1억2천만 원씩 새마을금고중앙회에 예치하고 있으며 금고 사고 발생 시 대비하여 현재 6천4백억 원 규모 예치금 확보가 되어 있으며 여주새마을 금고 역시 자체 예치금200억 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회원과 고객들의 안전을 100%보장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규정을 잘 지키는 금고에 근무 한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7, 본인 스스로 농업농촌 근대화 역군이며 선구자로서 농업에 많이 기여 하였다고 자부하는데 구체적인 사항을 소개 해 달라? 참외 농사를 시작 1차 실패의 원인을 찾아 보충하여 본격적 여주에 보급하면서 오늘의 금싸라가 참외의 장본인이며 왜송사과 재배법을 연구 개발 보급하였고 배Y자형조기재배법개발 보급 땅콩 밭작물 재배시 바닥에 비닐(멀칭) 까는 재배법 실시 보급하였으며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시 개발계획에 대해 설립자가 자문과 문의해와 나름대로 경험과 이론을 근거로 한 개발계획을 자문해준 결과 그대로 본인의 뜻과 생각대로 개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8, 여주군수 재임하면서 재산을 많이 탕진 하였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소개 한다면? 본격적인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탄생한 민선자치단체장을 주민들의 선거에 의해 선출하면서 단체장들이 뇌물에 연루되어 패가망신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은 무리한 선거를 치루면서 기하학적으로 소요되는 선거 자금으로 인한 당선 후유증으로 각종 인,허가와 민원청탁의 관련대상으로 뇌물의 유혹에 휘말리면서 문제가 발생 되었다. 본인 또한 여주군수 재임 하면서 골프장 금강유리 부동산 관련대형사업 등 민원과 관련 뇌물을 받았다는 선거 의식한 측근과 근거 없는 소문들로 인하여 얼마나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지만 단 한 번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점은 여주군수를 재임하면서 금전에 관련한 철저한 친인척과 자신관리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군수 3선 출마 초대와 2대는 당선의 영광을 안았고 3선에 도전 실패하여 낙선을 하면서 마침내 군수 재임7년의 성과와 함께 부채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은 청렴결백한 군수의 영광 뒤에 기다리며 산재 되어 있던 것은 선거와 각종 비용들로 인한 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빚 덩어리에 결국 가산을 탕진 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고 빚을 움켜쥐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소유 부동산 매각을 결정 당시 5억여 원에 요지의 부동산을 팔아 부채를 청산하였는데 불과 10여년이 안된 지금 그 땅이 현재 여주에서 거래 되는 매각부동산 인근시세로 하면 약 100억 원대 거래되고 있다고 하니 결론은 여주군수7년 재직 하면서 1백억 원의 재산을 탕진한 결과를 초래 하였다. 9, 여주군수로 재임 하셨는데 앞으로 도시계획과 개발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전직 군수로서 현직 군수가 모든 분야에 걸쳐 탁월한 행정을 펼쳐 나날이 여주의 발전이 되고 있다는 점에 감사를 할 뿐이며 단지 정부의 4대강 개발로 인하여 그 어느 시기보다 여주군은 도약과 약진의 기회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제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여 살기 좋은 여주건설을 해야 한다. 10, 하나로신문 독자와 주민들에게 당부 및 생활신조 대해 간단한 소개 한다면? 여주새마을금고는 그동안 어려운 시련이 닥쳤을 때 회원 조합원들과 여주군민들의 성원으로 인하여 슬기롭게 극복 해 왔습니다. 2002년 금고 직원 실수로 28억 원 손실 2008년 금고 소유의 인천가옥에 화재가 발생 20억 원 손실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이사장 취임 현재까지 매년100억씩 자산증식이 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협조 해 주신 군민 모두에게 감사 말씀 올립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생활신조 아래 항상 스스로 매사에 모범이 되도록 노력을 하고 있으며 여주농협 조합장 여주군수를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주새마을금고 이사장을 마지막 사회에 대한 봉사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과 항상 물심양면으로 성원해 주신 군민 여러분께 감사 하다는 인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정리 장종대기자
    • 초대석
    2011-08-0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