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와 아버지 민치록의 묘
2014/04/27 16:2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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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와 아버지 민치록의 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을 살고가신 명성황후(민자영1851~1895)와 다섯 번이나 이장하게 된 오천육장(五遷六葬)사연을 가진 고종의 국구(國舅)이며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1799~1858)의 묘를 살펴보겠습니다.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은 숙종의 두 번째 왕비인 인현왕후 아버지 민유중의 5대 손으로, 아버지는 개성유수 기현이고 어머니는 정씨이다. 민치록은 민유중의 직계종손으로 장자(長子)승계되어 종산과 종답을 관리하였으며 여주 능현동 명성황후(민자영)가 태어난 집이 그의 소유였던 것이다.
명성황후생가.JPG
                                                                                  <명성황후 생가>
이런 가계를 통해 볼 때 명성황후 집안은 당색으로는 서인계(西人係)였고, 세도정치기인 철종 때 음서로 관직에 오른 것을 보면 그때까지도 꽤 내로라하는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민치록은 음서로 관직에 올라 지방관과 중앙의 중간관리 벼슬을 했으며 훗날 명성황후가 되는 딸아이 하나만 남긴 채 예순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는 민치록이 가난하여 민유중의 묘지기를 했다하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
민치록 대감에게는 2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 번째 부인은 해령부부인으로 추증된 해주 오씨(1788-1833)로 조선말기의 유명한 학자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의 딸이었는데 자녀를 두지 못하고 죽었다. 
두 번째 부인이 한창부부인 한산이씨(1818-1874)로 증좌찬성 이규년(李圭年)의 딸이다.
한산 이씨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는데 형제들이 모두 일찍 죽어 명성황후는 무남독녀로 자랐다. 이 때문에 명성황후가 계모의 손에 자랐다는 설이 등장하게 된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이 53세에 둔 늦둥이 딸이다. 8살에 아버지를 여윈 이후 어머니와 함께 여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 감고당에서 기거 하였다.
감고당.JPG
                                                                                   <감고당>
감고당은 종로구 안국동40번지 덕성여고 본관 옆에 있었는데 도봉구 쌍문동으로 옮겨 갔다가 다시 여주로 옮겨다 지은 것입니다.
감고당(感古堂)은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가 기사환국(己巳換局)때 폐위되어 궁궐에서 나와 5년간 살던 집이며, 영조임금이 자신의 생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던 인현왕후가 고마워 “감고당” 이라는 옥호를 내리고 자주 들렀던 바로 그 집이다. 
당시 벼슬을 하는 양반들은 토지가 있는 향리가 있고 조정에 일을 보기위한 한양의 집이 있었다. 감고당은 6대조 민유중이 지은 집으로 종손인 민치록이 상속받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소종손이지만 종가에  대를 이을 사내아이가 없는 것은 크나 큰 문제가 되는 것이며 집안은 이미 몰락을 예정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12촌인 민승호가 양자로 들어와 집안의 제사를 맡기는 했지만, 사실상 명성황후는 어머니와 단둘이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을 것이 분명하다.
강화도령 원범이 철종으로 왕이 된 것이나 가까운 친척하나 없었던 민자영이 세자비로 간택된 것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바가 있다. 안동권문에서 세도정치를 하기위해 강화섬에서 무지렁이로 살던 원범을 왕족이라는 이유로 허수아비 왕으로 세운 것이나, 흥선군 대원이 대감은 안동김문의 세도정치에 눌려 지냈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 고심하다 명문가이기는 하지만 가까운 친인척이 아무도 없는 사고무친(四顧無親)의 민자영을 세자비로 간택한 것이다.
명성황후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총명하여 주변에 칭찬이 자자하였다.
한번 본 책이나 사람을 잊지 않고 정확히 기억해 내는 솜씨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런 딸에게 아버지 민치록은 일찍부터 글을 가르쳐 주었는데, 명성황후가 공부하던 방이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탄강구리비가 서있다.
특히 훗날 왕비 자리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친척 민씨 부인의 마음에 퍽 들었다. 이 민씨 부인은 바로 아들 고종을 앞세워 조선의 실권을 쥐고 있던 대원군의 아내, 부대부인 민씨였다. 부대부인 민씨는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의 양자로 들어간 민승호의 누나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둘째아들인 고종의 왕비로 자신과 친인척관계이던 명성황후를 적극적으로 대원군에게 추천하였다.
대원군은 명성황후의 친정이 단출한 것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로 외척들의 내정 간섭이 심하고 비리 또한 근절되지 못했다.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흥선대원군은 아무런 외척 세력이 없던 민씨를 고종3년(1866)에 고종의 왕비로 내정해서 간택한다. 몰락하긴 했으나 그녀의 친가 역시 인현왕후의 직계후손이라는 점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민씨의 나이는 16세, 고종은 15세였다.
[ 하나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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